▲'섹 알 마문' 감독과 '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지난 5월 12일 '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 공용 공간에서 섹 알 마문 감독과 만났다. 이 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문화예술 창작을 비롯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용우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 이주노동자 'B' 이야기 |
저는 스물일곱이던 2016년 4월에 캄보디아에서 한국에 왔어요. 우리 같은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하는 일들은 네팔에서 온 'A'랑 비슷했어요. 새벽같이 일어나서 비닐하우스에서 보통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했어요. 점심시간은 30~40분 정도밖에 안 줬어요. 쉬는 날에도 사장님이 일을 시키면 일해야 했어요. 어떤 때는 사장님이 다른 농장에 일하러 보내요.
한국에 취업하려면 돈 주고 배워서 한국어능력시험을 쳐야 해요. 시험에 붙어도 2년 안에 취업 안 되면 다시 시험 쳐야 해요. 그러니 취업이 되면 어떻게 일하는지, 숙소가 어떤지 알기도 어렵지만 알아도 가릴 형편이 아니에요.
2020년 12월 20일, 그날은 제가 살던 포천시에 한파 경보가 내렸어요. 제가 살던 기숙사는 며칠 째 전기 차단기가 내려가서 난방이 안 됐어요. 동료들은 다른 기숙사에서 자고 오겠다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저는 그냥 남기로 했어요.
그날 밤에 저는 피를 토했어요. 다음날인 일요일 오후에 기숙사로 돌아온 동료들은 침실에서 제 주검을 발견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4년 10개월 일했고, 3주 뒤면 비자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2021년 1월 10일에 캄보디아행 비행기표도 미리 끊어 두었는데...
제 이름은 누온 속헹(Nuon Sokkheng)이에요. 한국에서 하늘로 떠나갈 때 제 나이는 서른 한 살이었어요.
|
속헹이 불러온 나비효과
속헹의 부고를 듣고 김달성 목사와 김이찬 대표는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 세상에 알렸다.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한 섹 알 마문 감독과 정소희 감독은 이미 2년 전에 방송에 냈던 독립영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를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했다. 국내외 언론이 '속헹 사망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2021년 1월 12일, 고용노동부는 '농·어업분야 외국인근로자 주거환경 개선' 업무처리 지침을 발표했다. 2021년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 불법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면 이주노동자 고용을 불허하겠다고 했다. 그 뒤, 사업주들이 숙소로 빌라를 얻거나 빈집을 개조해서 제공하는 일이 생겨났다. 일부 지자체들은 이주노동자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조례를 만들었다. 공동기숙사를 새로 지어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지자체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일부 사업주들은 더 나은 숙소를 제공한다며 기숙사비를 배로 올려 임대수익을 챙겼다. 어떤 사업주들은 계약서에는 '기숙사 미제공'에 체크하고, 실제로는 '불법 임시주거시설'을 여전히 기숙사로 제공했다. 그러면 기숙사비를 안 받기도 했지만, 공과금이나 관리비 명목으로 기숙사비만큼 임금에서 제하는 사업주들도 있었다.
빈틈 속에서 편법이 난무했다. 정부의 졸속 행정과 관리 소홀이 낳은 결과였다.
고용노동부는 개선안을 마련하면서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 기숙사는 불허한 반면, '비닐하우스 밖 컨테이너' 기숙사는 허가했다. 비닐하우스 '밖에 있는 가설건축물'은 지자체에 건축허가와 신고필증만 받으면 기숙사로 제공하게 했다. 이주인권 활동가들은 비닐하우스가 있냐 없냐로 주거가 적절한지 판단하는 행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부는 2017년부터 시행한 '외국인 근로자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지침(고용노동부)'은 그대로 놔두었다. 이 지침은 임시주거시설은 통상 임금의 8%, 상시주거시설은 통상 임금의 15%까지 기숙사비를 걷게 해주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임시주거시설인 비닐하우스 숙소에 살 때는 월세로 보통 20만 원(통상 임금의 8%+공과금, 관리비 등)을 냈다.
개선안 시행 후 원룸, 빌라, 아파트, 개조한 빈집 따위에서 살게 된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월세로 거의 40만 원(통상 임금의 15%+α)을 내게 되었다. 한 집에 40만 원이 아니라 한 사람당 40만 원이었다. 빈집을 고쳐 직원 5명에게 기숙사로 제공하면 고용주가 월세를 2백만 원까지도 받게 된 셈이다. 폐가를 대충 고쳐서 외풍이 숭숭 드는 집이라도 그랬다.
- <깻잎 투쟁기(우춘희, 교양인, 2022년)> 30~40쪽 참고하여 재구성 -
또한 이주인권 전문가들은 현행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 노동권과 주거권 개선을 가로막는 벽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해진 기간 동안 지정된 사업체에서만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계약서와 전혀 다른 노동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사업주의 승인 없이는 이직을 할 수 없는 현행 허가제 때문에 부당한 노동 조건에 내몰리고 있다."
- <이주노동자, '임금 체불, 협박' 당해도 이직은 안된다?> 임동현. 2020.6.15. 시사주간 -
2022년,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정의로운 전환을 향하여: 기후위기와 주거에 대한 권리>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기후위기에 취약한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권을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은 한국 국적자의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이 아닌 외국인과 난민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대상에서 배제해 왔다. 주거급여 수급 자격 역시 내국인 미성년 자녀 또는 배우자의 부모를 부양하는 사람으로 한정한다. 독일은 유럽연합 소속이 아닌 국가 출신 외국인 가구도 주거급여와 사회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스웨덴은 1년 이상 체류 자격을 보유한 외국인에게 주택수당 수급권을 인정하고 있다.
덧붙이는 이야기
지난 4월 12일, 토요일 저녁에 연천역 앞에서 A와 만났다. 그는 너무 덥거나 추울 때 힘들지 않았는지, 일이 버겁지 않았는지 물을 때마다 '힘든 줄 몰랐다. 그런 생각은 못 했다'고 했다.
"참고 해야 돼. 우리나라(네팔) 일 없어서 이렇게 일 해면 또 먹고 살고 그렇지 않으면 돈이 모자라요.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거야' 이런 생각은 안 났어요. '이렇게 해야 돼! 안 하면 할 수 없어. 어차피 해야 돼!' 그런 생각이었어요."
▲A가 네팔에 짓고 있는 집네팔 출신 노동자 A가 네팔에 짓고 있는 3층짜리 주택 사진. 그는 내게 핸드폰으로 이 사진을 자랑스레 보여줬다.
A(익명, 네팔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A는 핸드폰으로 자신이 네팔에 짓고 있는 3층짜리 주택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본국에 1억 원 정도를 송금했다. 10년 동안 번 돈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A가 10년 넘게 번 돈을 한국 기업형 농장주들은 한 해에도 쉽게 벌었다. A는 네팔에 아내와 다섯 살 난 아들이 있었다. 네팔에서 1년 만에 벌 돈을 한국에서는 한 달에 벌 수 있었다. 일을 못 하는 상황에 비하면 열악한 숙소와 일터에서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는 일은 대수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A는 어릴 때 길을 내고 아파트를 짓는 '토목 기사(civil engineer)'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랬던 A가 이제는 남에게 세를 놓을 수 있는 큰 집을 짓고 있다. 비닐하우스와 조립식 패널,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살면서 모은 돈으로 말이다. A도 언젠가는 네팔에 돌아가리라. 거기서는 부디 멋진 집에서 아늑하게 살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용우: 공동체은행 '빈고' 조합원. 가난하고 힘없고 경계에 선 이들 편에서 글 쓰고 싶은 사람.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공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