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10 12:07최종 업데이트 25.06.1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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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공간이 생각보다 많이 차지한 2층 구상안김동의

나도 그랬지만 주택 신축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는 이들은 '설계'를 '시공사에서 그냥 그려주는 것' 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실제로 '설계비 무료'라고 홍보하는 시공사들도 보았다. 아마도 이런 곳은 설계비가 건축비에 녹여져 있거나 주택 표준설계 도면같은 표본을 보유하고 있어 설계 공수가 덜 들어가서 그런 것 아닐지 추측해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집이 시공될 부지의 상황은 다 다를 텐데 기초나 구조설계는 누가 하며 책임의 주체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나의 경우 설계비는 900만 원가량 들었다. 실제로 벽이 들어서고 지붕이 되는 시공이 아니라 2D로 표현되는 비용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니 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건축, 구조, 기계, 전기 도면과 구조계산서 등의 도서량을 고려하고 이 중 상당량은 외주(한 설계사무소에서 모든 도면을 다 그리지 않음) 의뢰를 해야 해 그 비용을 제하면 많은 비용은 아니라고 한다.


주택 신축을 생각한다면 무조건 좋은 건축사를 만나 협의하고 어느 정도 비용을 들일 것을 권하고 싶다. 건축사가 건축주와 긴밀히 소통해 요구를 파악하고 협의한 도면을 근거로 감리 계약까지 할 수 있다면 시공사가 독단적으로 공사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을 지불하고도 마냥 을이 되는 외로운 건축주를 조금이나마 방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허가방'이라고 불리는 설계사무소도 있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우리 동네의 경우 450만 원 정도)으로 인허가에 문제만 없게 도면을 생산해 주는 곳이라고 한다. 도면에 표기되지 않거나 애매한 세부 사항은 시공사가 알아서 진행하는 듯하다. 건축주가 전문 지식이 있고 신뢰하는 시공사를 만나 소통이 잘 되는 경우에는 이런 설계사무소를 찾아 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겠으나 이 분야에 문외한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 건축사는 설계 비용만 해도 훨씬 높을 것이고 의뢰량도 많아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는 건축주라면 고려 대상이 되긴 어려울 것이다.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세부적으로 명확하게 정리해서 꼭 찾고자 하는 건축사를 만나 첫 단추를 잘 끼우라고 당부드리고 싶다.

설계단계에서 건축주가 마주한 벽

집 평면에 따른 각 기초별 개략적 형상김동의

내가 의뢰한 시공사에서는 주로 전라북도 지역에서 공사를 수주해 왔는데 그곳에서는 통상 400만 원 정도의 설계 비용이 발생한다고 했다. 우리 집 신축이 타 지역 첫 진출이라며 함께 일해온 건축사에게 도면을 의뢰했지만 거리가 멀고 지자체마다 건축 조례가 상이해서인지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시공사에서는 건축 예정지에 있는 설계사무소에 의뢰해야 한다며 몇 군데 연락해 시세도 알아봐 줬다. 그런데 시세가 900만 원이라고 했다. 예상했던 설계비보다 500만 원 증액되는 데다가 처음 보는 건축사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한단 말인가. 이때가 1월이었고 2월에 도면 작업을 해서 3월에 착공할 계획이라 서둘러 설계 계약을 해야 했다.

문득 명문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한국과 프랑스 건축사 자격을 보유한 친구가 떠올랐다. "제일 친한 친구가 건축사인데 왜 시공을 먼저 찾아가냐"라며 서운함인지 답답함인지 한마디 했던 친구다. 예전부터 주택을 짓게 되면 너에게 설계를 의뢰하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떠들었는데 이참에 내 기획 설계를 보완해 집을 멋지게 그려주면 인허가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일을 맡기려고 하니 엄청 귀찮아했다. 시공 현장이 지구단위계획 지역이고 행정구역상 '읍'이지만 건축 관련 규정은 모두 도시로 취급되는 곳이라 도면 일은 많고 돈은 안된다며 투덜대는 것을 조르고 졸라 계약했다.

열교 차단 측면에서는 내단열(중단열)보다 외단열이 유리하다.김동의

건축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기초공사였는데 이 비용을 아끼고 싶었다. 건축 부지가 약간 경사졌고 단층 주택인데 매트기초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으로 느껴져 독립기초로 설계해 시공되길 원했다. 또한, 바닥부터 벽체 지붕까지 단열선을 끊김 없이 연결해 열교(실내의 따뜻한 공기나 열기가 건물 구조체를 타고 빠져나가는 현상)를 최소화함으로써 구조재 쪽 결로 발생을 차단하기 위해 외단열을 하고 싶었다.

내단열(목조에서는 중단열이라고도 함)시 단열재가 채워지지 않은 부분은 열교가 된다. 안쪽에 추가 단열 시공을 할 경우 단열재 두께만큼 실내 면적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 부분은 전기나 통신선 등의 설비가 지나는 구간이 될 수 있어 단열 시공에도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외단열의 경우 골조 전체로 열교를 차단할 수 있고 벽체나 지붕을 지나는 설비 시공 시 단열층과 충돌이 없다.

내부는 비용도 아끼고 B급 감성 혹은 상업 공간 느낌을 주는 샛기둥이나 서까래가 노출되게끔 마감용 석고보드 없이 전선관과 설비 배관을 보이게 설계하고 싶었다. 또한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 시멘트나 콘크리트는 최소한으로 사용해 건식 난방으로 시공될 수 있게 도면에 반영되길 원했다.

그러나 이 부분부터 시공사와 이견이 있었다. 시공사는 독립기초의 경우 인건비가 많이 들고, 내부 노출 마감이나 건식 난방은 일반적이지 않아 반대했다. 세부 항목을 나열하지는 않았으나 외단열 시공 역시 비용이 더 들 거라고 했다.

주택 내부는 구조용 샛기둥과 합판, 각종 배선과 배관이 노출된 채 시공되길 원했다.ChatGPT

건축주 취향과 요구에 공감해 주는 건축사 만나야

이처럼 건축주와 시공사가 의견이 나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시공사는 정보와 경험이 많으므로 건축주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터무니없는 방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반론을 펴거나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시공사 사장은 나에게 건축사 친구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설계 도면이 한시라도 빨리 나와야 하는데 비전문가인 건축주가 독립기초나 내부 노출 마감 같은 어려운 요구로 건축사를 방해하고 출도 작업에 혼선을 빚는 것을 우려해서였을까? 그럼에도 지나고 보니 참 웃긴 말 같다. 건축주를 건축사와의 소통에서 배제한 채 시공사 요구대로만 도면에 반영되게끔 유도하는 것 말고 달리 해석할 수 있을까?

건축사 친구는 시공사 사장으로부터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는 연락을 받았다며 매트기초로 설계를 진행했다. 독립기초로 절감되는 콘크리트 비용과 추가되는 목재류, 슬라브 쪽 단열재와 기밀층 비용이 어느 정도일지 여전히 궁금하다.

원했던 벽과 지붕 실내 노출도 도면에 반영되지 않았다. 시공사의 반대도 있었지만 배우자의 우려도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내 의견을 주장할 수 없었다. 노출된 전기 배관이나 콘센트 하우징, 골조에 쓰이는 철물류 마감이 날카로울 텐데 아이가 편히 지내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내부 마감용 합판과 석고보드 그리고 벽지 비용까지 절감하려던 시도는 무산이 됐다. 그나마 건식 난방 요구만 도면에 반영되었는데 훗날 이로 인해 수차례 시공사 사장의 불만을 들었다.

건축사 제안으로 변경된 지붕 형상. 일조량 개선을 위해 ㄷ자 형상을 추가했다.김동의

2월 설 연휴가 지나서야 각종 도면과 내진설계까지 완료되어 시청에 착공 신고를 했고 3월에 착공신고 필증을 교부받았다. 건축사 친구는 평면도를 살짝 손봐 연면적을 100㎡ 미만으로 떨어뜨려 건축물 '허가' 대상에서 '신고' 대상으로 바꿔주었다.

신고 대상이면 시청에서 요구하는 항목들이 완화되어 감리 계약은 선택사항이 되었다. 고민 끝에 감리 계약 비용 300만 원은 절감하기로 했다. 이것 외에는 내가 3D 모델링 프로그램인 스케치업으로 제작한 기획 설계 거의 그대로 건축 도면에 반영했다.

내심 친구의 경험과 감각으로 지붕각이나 개구부, 마감 등 건축물의 선을 손봐 미적으로 개선해 주기를 기대했는데 특별한 게 없었다. 왜 그랬냐 물어보니 "너한테 하나하나 설명하고 설득하기가 너무 귀찮고 피곤해서"란다. 여러분은 꼭 건축주의 취향과 요구에 공감해 주는 건축사를 만나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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