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새정부 첫 인사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석 국정원장 후보자,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이 대통령, 강훈식 비서실장, 위성락 안보실장, 황인권 경호처장 2025.6.4
연합뉴스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주권을 빼앗는 내란은, 이제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됩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합당한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책을 확고히 마련하겠습니다."(국민께 드리는 말씀)
새 대통령은 또 내란의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내란의 재발 방지 대책 중 일부는 헌법 개정 사안이고 또 다른 일부는 법률 개정 사안이라 시간을 요할 수 있지만, 진상규명 관련 특검법 처리는 당장 일정에 올라와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에 부의된 '내란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을 5일 처리할 예정이다.
세 법안 모두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반대하면서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던 것으로, 번번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었던 전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이 '허니문' 기간에 양해해 줄 수 있을까?
"삼권 독재를 막아달라 그런 호소를 했지만(...) 국민들께서 그런 것을 배척을 하고 민주당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과연 삼권 견제와 균형이 어그러지고 무너진 이런 시스템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국민들은 체감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4일 장성호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공보부단장,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김영수입니다> 인터뷰)
새 대통령이 임기를 개시한 이후인데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인사는 한 인터뷰에서 국민에 대한 협박(?)에 가까운 말을 쏟아냈다. 이런 인식은 김문수 후보나 국민의힘의 캠페인 기간 메시지와 궤를 같이한다. 김문수 후보는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 일당 독재를 막기 위해' 투표해달라는 투표 독려 메시지를 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이 된 것도,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이 된 것도 모두 유권자의 선택에 따른 결과지만,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는 이 결과를 '독재'라고 인식한다. 이런 인식에 변화가 없다면, '제1야당이 독재에 저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국민의힘 내부의 복잡한 속사정은 한편으로 '외부의 적'을 설정해 내부 단속을 해야 할 유인과 다른 한편으로 '비결정의 결정' 상태를 지속시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전자는 최소한 세 개 이상의 세력이 당권 경쟁에 돌입하는 상황에서 내부 단속을 위해 '민주당 일당 독재' 프레임을 지속할 유인을 말한다. 후자는 인사든, 추경이든, 법안 심의든 찬반 결정을 만들어낼 동력이 상실된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진심 어린(?) 사보타주가 지속될 가능성을 말한다.
2017년 조기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 당시 자유한국당의 상황이 꼭 그랬다. 문재인 정부가 개헌안을 제출하고 자유한국당의 개헌안이 나오면 협의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자유한국당의 개헌안은 결국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다른 많은 법안들에 대해서도 찬성이든 반대든 결정 불가능 상태로 인한 지연이 지속됐다.
'국민 눈높이' 고려해야

▲4일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에서 한 가게의 TV 화면에 이재명 대통령 취임선서 행사가 생중계로 방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출범하는 민주당 정권 이재명 정부는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가 될 것입니다...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통합을 동력으로 삼아 위기를 극복하겠습니다."(국민께 드리는 말씀)
새 대통령은 '정의로운 통합정부'를 약속했고 '국민통합'을 동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예상되는 국회 안팎의 조건에서 어떤 방법으로 '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까?
우선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국민 직접 소통의 기회를 늘리고, 갈등 사안일수록 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통령 1인이 다 하는 게 아니라 총리, 장관, 집권당의 리더십이 모두 나서 하나하나 설명하고 또 설득해야 한다. 코로나19 당시 방역 정책에 대해 일일 브리핑을 했던 모델을 참조할 수 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숙성된 의제이니 제도적 절차만 남았다'는 판단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국민 소통의 기준점은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 아니라 이번 대선에서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들의 눈높이여야 한다.
다음으로 국민의힘 리더십과 의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에 다양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영수회담'이나 '여야정협의체'를 제안하고 하염없이 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여론을 통해 비난전을 반복하는 고답적인 방식은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집권당 의원도, 장관이나 차관도, 대통령실 인사들도 부단히 찾아가서 부딪쳐야 한다. 우리 언론이 '예전에 미국 대통령들은 야당 의원들을 이렇게 설득했다더라'는 에피소드를 기사화하곤 하는데, 새 정부와 집권당은 이를 뛰어넘어야 한다.
협상에 성공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와 집권당이 야당을 대하는 태도를 지켜보는 유권자의 눈이다. 국민의힘을 설득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설득하는 게 목표여야 한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대국민 약속의 파기나 절충을 합리화하는 핑계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지, 일이 안 되는 것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우선순위가 급한 일일수록 프로세스 디자인에 대국민 설득과 국회 설득 과정을 꼭 포함해야 한다.
안팎으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는 새 정부가, 목표와 과정 사이에 놓인 위태로운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한발 한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소셜 코리아 편집위원)
서복경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서복경은 1995년부터 정치학을 공부했고, 2003년 한국 정당과 선거를 주제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글로벌 수준에서부터 읍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당대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5년 동안 국회 공무원을 했고, 16년째 강의를 하고 있으며, 꽤 긴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생활을 거쳐 2020년부터 더가능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 부소장, 소장을 거쳐 다시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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