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04 17:31최종 업데이트 25.06.0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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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기자말]
왼쪽부터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가 지난 5월 23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2차 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정훈님, 12.3 비상계엄 이후 숨 가쁘던 반년의 '내란 정국'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의 실정으로 피폐해진 국민들의 마음을 돌보는, '용기' 있는 정치를 하길 바랍니다.

비상계엄 해제에 앞장선 거대 야당의 대표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당선, 고용노동부 장관 재임 당시에 비상계엄을 사과하지 않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낙선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번 대선의 핵심은 어쨌거나 윤석열 정부와 윤석열이 저지른 친위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었으니까요.


오히려 저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와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가 궁금했습니다. 이준석 후보가 국회의원이 세 명밖에 없는 제3당에서 선거비용 절반을 보전할 수 있는 10% 이상 득표율을 기록한다면, 명실상부 '대선후보급'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는 중앙정치에서 인지도가 부족한 데다가 원외 정당 소속이지만, 그가 3%만 얻더라도 진보정치가 다시 살아나는 기점을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양당에 비해 선거운동에 쓸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했던 두 후보는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TV 토론)를 통해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 1차 토론회가 끝난 후 진행된 전국지표조사(NBS) 5월 4주차 조사[1]에서 이준석 후보는 처음으로 지지율 10%를 넘어섰고, 권영국 후보는 처음으로 지지율 1%(이전에는 0%)가 잡혔습니다.

3차 TV 토론 여파일까... "지지율 3%포인트 빠졌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지난 3일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확인한 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 도착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남소연

하지만 이들의 상승세가 계속 가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이준석 후보는 대선 과정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며 10% 득표율을 기록하는 것이 유력해 보였으나, 결국 8.34%의 득표율(291만 7523표)로 마무리했습니다.

이준석 후보의 '득표율 10%' 실패의 원인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사표 방지 심리에서 비롯되는 '쏠림 현상', 그리고 결정적으로 3차 TV 토론의 여성 혐오발언입니다. 앞서 언급한 전국지표조사 여론조사에서 '계속 지지 의향'이 62%로 이재명(86%)-김문수(89%)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준석 후보의 혐오발언이 표를 깎아 먹었을 가능성은 더더욱 큽니다.

실제로 3일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김준일의 뉴스공감>에 출연한 김두수 개혁신당 선거대책위원회 정무특보단장은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여론조사 깜깜이 들어가기전까지 11%, 12% 또 14%까지 나왔거든요. 계속 오르고 있는 추세였는데, 3차 토론회에서의 돌발적 질문 때문에 다음날 일부 여론조사 확인해보니까 3%가 빠졌더라고요. 그 빠진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 거라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11%정도에서 3% 빠져서(...) 그때 우리 당내에서 딱 그날 아침에 토론을 해봤는데 저처럼 시니어그룹과 젊은 그룹의 의견이 딱 갈리더라고요. (...) '오히려 2030이 결집하여서 도움이 될 거다', '아니다 이건 분명히 악재라서 분명히 사과를 하고 가야 한다'. 젊은 친구들이 주도하는 선거니까 우리는 의견만 내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지 않았나."

<주간조선> 기사에 따르면 이준석 후보 측 전략의 핵심은 TV 토론이었습니다. '이준석 대 이재명'의 1대1 구도를 명확히 하고, 이재명 후보의 말실수를 이끌어내는 것이 전략이었다고 합니다. 민주당 연성 지지층이 흔들릴 때 이들을 끌어오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전통적 보수 지지층까지 끌어당기면서 구도를 뒤집는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고요. 그러나 TV 토론은 오히려 그의 정치인생에 계속 꼬리표가 될 혐오발언 하나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권영국이 이준석의 전략을 무력화시켰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지난 3일 서울 구로구 선거캠프에서 제21대 대통령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연합뉴스

그리고 권영국 후보의 득표율은 0.98%(34만 4150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인 1.3% 보다 실제 획득한 표는 더 적었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민주노동당과 권영국이라는 인물을 알렸다는 점에서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권영국 후보는 TV 토론이 이준석 후보가 원하는대로 1:1 구도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TV 토론 중에 김문수 후보를 향해서 "윤석열 지지 선언 받으니 기쁘십니까? (..) 무슨 자격으로 여기 나오셨습니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시고 사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강하게 압박했고, 토론이 끝나고 김문수 후보와 악수도 거부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이준석 후보의 정책이나 생각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준석 후보 측이 내놓은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화'에 대해서 "이렇게 (차등화) 해 놓으면 완전히 수도권으로 다 몰려버립니다. 지방 완전히 망한다"라며 "헌법에 왜 정했겠습니까? 차별하지 말라고. 차등 임금 두지 말라고"라며 일갈하며 눈길을 끌었습니다.

"국회해산권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라는 이준석 후보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서도 "여성가족부 폐지하자고 하고, 최저임금 차등제 두자고 하고, 이제는 국회 해산권까지 두자고 이 이야기를 한 것인지 참 의문입니다. 40대의 윤석열을 보는 것 같아서 매우 유감입니다. 자중해 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이준석 후보가 동덕여대 학생들의 공학 전환 반대 시위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시위를 왜 민주당이 옹호하고 있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이재명 후보는 "주도권 토론에서 답변하겠다"라며 잠시 답변을 보류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곧바로 권영국 후보는 "질문이 잘못됐다. 전장연의 시위가 왜 발생했는지. 동덕여대 여학생들의 시위가 왜 발생했는지 그것을 먼저 물어야 한다"라고 꼬집으며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뒤이어 "이제 쭉 토론하시는 걸 보니까 그동안 남녀 갈라치기, 장애인 혐오, 차별금지법 반대. 이런 걸 가지고 분열을 자꾸 부추기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공세를 높였습니다. 내란 대 반내란의 전선을 그었던 권영국 후보가 여기서 '혐오 대 반혐오'라는 하나의 전선을 더 그은 것입니다. 토론회를 통해 자신의 지지세를 확장하려던 이준석 후보로선 까다로운 상대일 수밖에요.

지난달 27일 제 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이준석 후보가 권영국 후보에게 질문하는 장면. 이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아들 관련 의혹을 거론하기 위해 여성 성기가 언급되는 혐오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였다.JTBC 갈무리

결정적으로 이준석 후보가 여성 혐오발언을 꺼냈을 때 권영국 후보의 대응이 돋보였습니다. "그거는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걸 묻는 취지를 모르겠다"라고 답한 것입니다. 만약 그 질문을 권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받아서 유도 질문에 넘어갔으면 어땠을지 아찔하기만 합니다.

권영국 후보는 다음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굉장히 불순한 의도로 질문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엄청난 여성혐오 발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날 이준석 후보가 '혐오가 아닌 검증'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무슨 정치입니까? 성폭력을 비판하기 위해 성폭력을 자극적으로 전시해야 합니까? 제발 상식적인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막말을 전시하는 이준석의 나라,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제2의 윤석열의 나라입니다. 박근혜의 후계자, 윤석열의 계승자 이준석이 야당 대표인 세상? 필요 없습니다. 유권자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이제 내란 퇴출에 이어 혐오도 퇴출시킵시다. 약자들과 싸우는 정치 대신 혐오와 싸우는 정치를 선택합시다."

이준석 후보와의 막바지 단일화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김문수 후보는 해당 발언에 대해 아무 말을 하지 못했고, 이재명 후보 역시 아들의 의혹이기에 직접 언급하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분명 이준석 후보의 자충수였지만 권영국 후보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고, 또 강하게 비난했기에 혐오발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 커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새롭지만 문제적인 보수의 세력 확장, 진보의 또 다른 출발

정훈님, 저는 비록 목표치에 다다르지 못했지만, 대선을 완주한 이준석과 권영국 두 후보의 존재는 한국 정치에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다고 봅니다. 두 사람이 대표하는 정치세력의 흥망성쇠가, 어쩌면 한국 사회의 방향성을 좌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하나는 이준석 후보가 젊은 층, 특히 2030 남성들에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37.2%, 30대 남성 25.8%)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입니다. 아직 확장성은 부족하더라도, 2030 남성들을 강력한 지지기반으로 삼아 앞으로도 영향력을 키워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번 TV 토론 발언에서 보았듯, 그가 상당히 '위험한' 행보를 보이는 정치인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안티 페미니스트의 선두주자'(<맥심> 2019년 7월호 인터뷰)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별다른 거부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줄곧 주장하며, 2030 여성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서도 "근거없는 피해의식"(<한국경제> 2021년 5월 8일 인터뷰) 이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해 '비문명적'이라고 하거나, 지방·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외면합니다. 그가 '공정'을 표방하지만, 실상 그것이 '차별적 구조'를 외면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큰 이유입니다.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온라인 커뮤니티의 안티페미니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 반민주당 정서 등을 지렛대로 삼아서 나아가는 '이준석의 정치'는 이제 새 정부와 진보진영에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올 듯합니다.

충남 태안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도중 숨진 한전 KPS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50) 씨의 작업 현장이 3일 멈춘 가운데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와 노조 관계자 등이 현장을 찾아 조문하고 상황을 살피고 있다. [사망대책위 제공]연합뉴스

반면 이준석의 정치와 정반대 지점에 놓여 있는 권영국,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정치는 다시 '출발점'에 놓인 상황이 됐습니다. 분명 0.98% 득표는 제15대 대선에서 국민승리21 권영길 후보가 받았던 1.2% 득표보다 더 낮습니다. 하지만 개표가 시작된 3일 오후 8시부터 4일 오전까지 약 13억 원의 후원금(3만 5천 건)이 모인 것을 보면 희망을 잃기엔 일러 보입니다.

앞으로 2025년의 민주노동당이 2000년의 민주노동당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서서히 얻어갈 수 있을지, '반극우' '반혐오' 전선을 넓게 펼쳐내고,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당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지난 2일 선거유세 마지막 날에 권영국 후보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존의 선거유세 일정을 취소하고 태안으로 가서 유족을 면담했습니다. 심지어 선거 당일인 3일에도 조문과 더불어 '사망사고 대책위'의 기자회견에도 함께 했습니다. 이처럼 그가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은 진보정치의 존재 이유였고, 나아가 '가능성'이었습니다. 전 국민이 보는 토론회에서 그가 한 말들, 대선 후보로서 보여준 행보는 분명 헛되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지금 한화오션 조선 하청노동자 김형수 70일째,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100일째, 구미 한국옵티컬 해고노동자 박정혜 502일째, 아직도 하늘에서 고공농성 중입니다. 식량 주권이 위협받는 농촌 농민들은 자기 결정권과 참여 농정을 요구하며 절규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차별과 배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민주유공자법 유가협 부모님들, 차별과 싸우는 장애인 활동가들, 비동의강간죄를 요구하는 성폭력 피해생존자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고 오요안나 유가족들, 시간이 없어서 다 말하지 못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저 권영국과 민주노동당은 이들에게 기댈 언덕이 되겠습니다. 저에게 힘을 모아 주십시오." - 권영국 후보 2차 TV 토론 발언 중
덧붙이는 글 [1]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5월 19~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총통화 3751명, 응답률 26.7%)에게 휴대전화 가상번호(100%)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조사.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NBS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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