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제 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이준석 후보가 권영국 후보에게 질문하는 장면. 이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아들 관련 의혹을 거론하기 위해 여성 성기가 언급되는 혐오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였다.
JTBC 갈무리
결정적으로 이준석 후보가 여성 혐오발언을 꺼냈을 때 권영국 후보의 대응이 돋보였습니다. "그거는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걸 묻는 취지를 모르겠다"라고 답한 것입니다. 만약 그 질문을 권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받아서 유도 질문에 넘어갔으면 어땠을지 아찔하기만 합니다.
권영국 후보는 다음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굉장히 불순한 의도로 질문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엄청난 여성혐오 발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날 이준석 후보가 '혐오가 아닌 검증'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무슨 정치입니까? 성폭력을 비판하기 위해 성폭력을 자극적으로 전시해야 합니까? 제발 상식적인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막말을 전시하는 이준석의 나라,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제2의 윤석열의 나라입니다. 박근혜의 후계자, 윤석열의 계승자 이준석이 야당 대표인 세상? 필요 없습니다. 유권자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이제 내란 퇴출에 이어 혐오도 퇴출시킵시다. 약자들과 싸우는 정치 대신 혐오와 싸우는 정치를 선택합시다."
이준석 후보와의 막바지 단일화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김문수 후보는 해당 발언에 대해 아무 말을 하지 못했고, 이재명 후보 역시 아들의 의혹이기에 직접 언급하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분명 이준석 후보의 자충수였지만 권영국 후보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고, 또 강하게 비난했기에 혐오발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 커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새롭지만 문제적인 보수의 세력 확장, 진보의 또 다른 출발
정훈님, 저는 비록 목표치에 다다르지 못했지만, 대선을 완주한 이준석과 권영국 두 후보의 존재는 한국 정치에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다고 봅니다. 두 사람이 대표하는 정치세력의 흥망성쇠가, 어쩌면 한국 사회의 방향성을 좌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하나는 이준석 후보가 젊은 층, 특히 2030 남성들에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37.2%, 30대 남성 25.8%)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입니다. 아직 확장성은 부족하더라도, 2030 남성들을 강력한 지지기반으로 삼아 앞으로도 영향력을 키워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번 TV 토론 발언에서 보았듯, 그가 상당히 '위험한' 행보를 보이는 정치인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안티 페미니스트의 선두주자'(<맥심> 2019년 7월호 인터뷰)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별다른 거부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줄곧 주장하며, 2030 여성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서도 "근거없는 피해의식"(<한국경제> 2021년 5월 8일 인터뷰) 이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해 '비문명적'이라고 하거나, 지방·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외면합니다. 그가 '공정'을 표방하지만, 실상 그것이 '차별적 구조'를 외면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큰 이유입니다.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온라인 커뮤니티의 안티페미니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 반민주당 정서 등을 지렛대로 삼아서 나아가는 '이준석의 정치'는 이제 새 정부와 진보진영에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올 듯합니다.

▲충남 태안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도중 숨진 한전 KPS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50) 씨의 작업 현장이 3일 멈춘 가운데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와 노조 관계자 등이 현장을 찾아 조문하고 상황을 살피고 있다. [사망대책위 제공]
연합뉴스
반면 이준석의 정치와 정반대 지점에 놓여 있는 권영국,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정치는 다시 '출발점'에 놓인 상황이 됐습니다. 분명 0.98% 득표는 제15대 대선에서 국민승리21 권영길 후보가 받았던 1.2% 득표보다 더 낮습니다. 하지만 개표가 시작된 3일 오후 8시부터 4일 오전까지 약 13억 원의 후원금(3만 5천 건)이 모인 것을 보면 희망을 잃기엔 일러 보입니다.
앞으로 2025년의 민주노동당이 2000년의 민주노동당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서서히 얻어갈 수 있을지, '반극우' '반혐오' 전선을 넓게 펼쳐내고,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당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지난 2일 선거유세 마지막 날에 권영국 후보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존의 선거유세 일정을 취소하고 태안으로 가서 유족을 면담했습니다. 심지어 선거 당일인 3일에도 조문과 더불어 '사망사고 대책위'의 기자회견에도 함께 했습니다. 이처럼 그가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은 진보정치의 존재 이유였고, 나아가 '가능성'이었습니다. 전 국민이 보는 토론회에서 그가 한 말들, 대선 후보로서 보여준 행보는 분명 헛되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지금 한화오션 조선 하청노동자 김형수 70일째,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100일째, 구미 한국옵티컬 해고노동자 박정혜 502일째, 아직도 하늘에서 고공농성 중입니다. 식량 주권이 위협받는 농촌 농민들은 자기 결정권과 참여 농정을 요구하며 절규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차별과 배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민주유공자법 유가협 부모님들, 차별과 싸우는 장애인 활동가들, 비동의강간죄를 요구하는 성폭력 피해생존자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고 오요안나 유가족들, 시간이 없어서 다 말하지 못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저 권영국과 민주노동당은 이들에게 기댈 언덕이 되겠습니다. 저에게 힘을 모아 주십시오." - 권영국 후보 2차 TV 토론 발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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