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02 14:48최종 업데이트 25.06.02 14:48
  • 본문듣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7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데이비드 퍼듀 신임 주중 미국 대사 취임 선서식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타코(TACO)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에 야채나 고기를 싸 먹는 멕시코 음식 타코(taco)와는 무관한 이야기다. 그가 관세 위협을 가하면 주가가 급락하다가 물러서면 급등하는 양상을 두고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Trump Always Chickens Out)'라는 풍자적 표현이 회자되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을 최우선으로 겨냥하는 관세전쟁에서는 '타코'한 모습을 보였지만, 중국과의 대결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다.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진 듯이 중국과의 신냉전 구도에는 변함없이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그런 태도는 무엇보다 한국의 안보 환경을 위험한 지경으로 내몰고 있다. 2018년 6월 북미정상회담 당시 트럼프의 숙소였던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지난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사흘간 진행된 샹그릴라 대화(아시아 안보회의)는 지금의 신냉전전략이 해리 트루먼의 원조 냉전전략 때보다도 한국에 불리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 견제에 총력 쏟는 트럼프 정부

미국 국방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피터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연설문에 따르면, 헤그세스 장관은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주최한 샹그릴라 대화에서 '유럽보다 인도태평양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러시아보다 중국을 견제하는 데 총력을 쏟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헤그세스는 "우리는 유럽의 동맹국들이 그들의 안보를 더 많이 확보하고 그들의 국방에 투자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토의 N이 북대서양을 의미한다고 여전히 믿고 있으며, 우리의 유럽 동맹국들이 이 대륙에서의 비교우위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등등의 발언을 통해 미국보다는 유럽이 지역 안보에 더 적극성을 보여야 할 필요성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중국이라는 키워드에 방점을 찍었다. "우리는 공산 중국의 침략을 억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라고 한 그는 미국의 미래가 인도태평양과 연결돼 있다면서 "우리는 여기에 머물 겁니다"라고 힘을 줬다.

그는 "중국은 아시아에서 패권국가가 되고자 합니다", "우리는 동맹국과 파트너국가들이 종속되거나 위협당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등등의 말로써 위기를 부각시켰다. 자국의 우방들이 중국의 위협을 받지 않으려면 미국과 함께 공동 전선에 나서고 국방비 등을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는 게 그의 강조점이다.

헤그세스는 우방들이 절대로 한눈팔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동가식서가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그에게서 나왔다. 그는 "많은 국가들이 중국과의 경제협력과 미국과의 방위협력을 함께 추구하는 발상의 유혹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한 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그들의 악의적 영향력을 심화시키고 긴장 국면에서 우리의 방위 결정 공간을 복잡하게 할 뿐입니다"라고 경고했다.

편히 잠자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고 밥 먹기 위해 중국과 협력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식의 줄타기 외교로 인해 중국의 영향력이 팽창되고 미국의 안보 구상에도 혼선이 빚어진다는 발언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버리고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을 택하라는 주문이다.

1947년 3월 12일 발표된 트루먼 독트린과 함께 본격화된 냉전전략은 유럽과 아시아라는 두 지역을 무대로 했다. 미국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그리스 내전과 제주 4·3항쟁을 두 지역의 냉전정책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이때 미국 대외정책의 무게 중심은 소련 견제에 있었다. 미국은 유럽에서도 소련 견제에 치중하고, 아시아에서도 소련 견제를 1순위에 뒀다. 이는 소련의 본거지가 있는 유럽 지역에 대해 미국이 최대 에너지를 투사하는 원인이 됐다.

이 점은 아시아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89년 11월에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1991년 크리스마스 때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미국의 냉전전략은 소련과 유럽에 방점이 찍혔다.

이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여유를 누렸다는 점은 아프리카와 더불어 이 지역에서 비동맹운동이 활발했던 데서도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요구에 떠밀려 소련과의 직접적 대결에 노출됐다면 미·소 패권 양쪽을 다 거부하는 운동이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나듯이, 트럼프는 러시아와의 긴장관계를 하루빨리 털어내고 싶어 한다. 그가 추구하는 신냉전의 무대는 유럽이 아니다. 이는 이 지역 국가들의 판단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 5월 31일자 영국 <텔레그래프>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뗄 것이라는 전제하에 영국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 문제를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중 대결에 의해 고조되는 한반도의 안보 리스크

2022년 8월 18일 한미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의 사전 연습이 진행 중인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K-200 장갑차가 훈련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미국의 신냉전전략이 인도태평양에 집중되는 것은 아시아 지역이 냉전 때보다 훨씬 위험한 환경에 놓이게 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이 지역이 긴장이 원조 냉전 때보다 더 고조되리라는 전망을 갖게 만든다. 특히 동북아와 남중국해 지역은 중국 및 괌 미군기지와의 지리적 인접으로 인해 한층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새로운 안보 환경에 직면하게 됐다는 점은 미국에서 나온 '한반도 항공모함'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현지 시각 지난달 15일 하와이에서 열린 미국 육군협회(AUSA) 태평양지상군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이나 고정된 항공모함 같다"는 말로 설명했다.

주한미군 주둔이 계속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 발언은 미국이 한반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드러낸다. 미군을 한반도에 계속 주둔시켜 중국 견제용 항공모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발언은 앞으로 한반도의 안보 리스크가 남북한이나 북미 간의 대결뿐 아니라 미중 대결에 의해서도 고조될 것이라는 전망을 갖게 한다.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 분산되던 자국의 군사 역량을 가급적 중국 견제에 올인하려 하고 있다. 그런 미국이 한반도를 중국 견제를 위한 항공모함 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냉전시대의 미국은 한국을 소련이나 중국과의 직접 대결로 내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그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안보 환경은 1990년대 이전보다 분명히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대만 문제를 이유로 충돌하면, 대만만큼이나 한국·일본도 위험해진다.

중국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대상이 대만일지라도, 대만을 차지하려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물리쳐야 한다. 미국이 두 기지를 근거로 중국과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은 대만을 놓고 벌어지는 쟁탈전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트럼프는 무역전쟁에서는 '겁쟁이 치킨'의 모습을 보일 때가 있지만, 중국과의 신냉전 자체에 대해서는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중국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를 갈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등을 더 세게 떠밀고 있다. 안보뿐 아니라 경제마저 미국과만 하자며 한국과 중국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국익에 입각한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한국이 엉뚱한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은 점차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