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학자 전영애 교수
최은경
-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어느 구간에서도 바르다'라는, 교수님께서 자주 들려주시는 괴테의 명언이 생각나는데요. 저는 때때로 제가 지금 가는 길이 옳은지, 아니면 쉬운 길을 택하려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됩니다. 삶의 여정에서 목표가 흔들릴 때 어떻게 다시 방향을 잡으셨어요?
"저도 늘 흔들립니다. 하지만 '내가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지만, 매일 내리는 작은 결단들이 쌓여 큰 힘이 되고, 나를 단단히 세워줍니다. 산에 오를 때도 쉬운 길을 찾고 싶어 지지만, 그러나 어디로 이르든 간에 산은 꼭 넘어야 되잖아요. 중요한 건 큰 목표만 바라보기보다, 작은 일부터 바른 선택을 쌓아가는 것, 그것이 결국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 믿습니다."
- 나이를 먹어가도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일이 정말 어렵다고 느낍니다.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사랑이 살린다'는 괴테의 말이 그래서 더 와닿았는데요.
"'사랑이 살린다'라는 말은 노년에 이른 괴테의 지혜가 응축된 표현이죠. 사랑은 결국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엔 미워도 참고 견디면 결국 아끼는 마음으로 바뀌게 돼요. 나와 다른 상대를 향한 연민과 편견 없는 시선을 키우는 게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저도 제가 한 말을 다 실행하지는 못하지만요(웃음)."
- 이번엔 교수님이 좋아하는 시에 대해 여쭤볼게요. 교수님은 시를 '삶의 부근'이라 표현하실 만큼 깊이 아끼고 사랑해오셨습니다. 책 <시인의 집>을 집필하시며 역사적인 시인의 공간을 직접 찾아다니신 여정 또한 감동적이었습니다. 교수님께 시란 어떤 존재인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시를 많이 썼지만, 대학 교지에 발표한 이후 부끄러움에 20년간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39살에 독일로 갈 기회가 생겼고,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두 달간 250여 편의 시를 썼습니다. 귀국 후 시집도 냈지만, 여전히 제 시가 부끄러웠습니다.
결국 독일의 라이너 쿤체 시인을 찾아갔고, 선생님은 제 시를 밤새 필사해주며 "당신을 교수에서 시인 동료로 격하시키겠다"는 따뜻한 말을 해주셨습니다. 그 덕에 독일에서 첫 시집을 출간했지만, 제 시에 만족하지 못해 더는 시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시를 쓰는 것도 좋지만, 시를 '삶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지금은 그렇게 시를 제 삶의 일부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듣는 내내 교수님의 시에 대한 사랑이 깊이 전해지는데요. 인생의 황혼기에도 여백서원과 괴테마을을 통해 쉼 없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시는 교수님에게 항상 '다음'을 꿈꾸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평생 '2인분'의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어머니는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컸지만, 학교 문턱도 못 가고 종갓집 며느리로 힘겹게 사셨습니다. 여러 머슴이 있어도 부엌일은 항상 어머니 혼자 맡으셨고, 늘 단정하셨죠. 연탄가스 중독으로 산소호흡기를 쓸 때야 비로소 버선 벗은 맨발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글씨가 적혔다고 전단지도 함부로 밟지 않으셨어요. (어머니 글씨가 담긴 액자를 가리키며) 열두 살 때 쓴 글씨인데, 참 정성스럽고 곱지요. 결국 많이 배운 게 무슨 소용일까요?"

▲어머니가 열두 살 때 쓴 글씨, 여백재 천장에 걸려 있다.
최은경
사람이 한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장하 선생님과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두루 회자되는 이유는, 아마 지금 우리 사회가 진정한 '어른'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선생님에게 시대가 요구하는 '어른의 모습'에 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제가 감히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요즘 가장 안타까운 건 '염치'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독일어로 'Ein Mann, Ein wort'라는 말을 자주 되새기는데요, 영어로 하면 'A man, a word'입니다. 사람이 한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뜻이죠. 순간의 이득 때문에 말을 바꿀 수는 있어도, 끝까지 지킬 때 얻는 이득은 훨씬 큽니다.
몇 달 전, 그러니까 12월 초요. 여의도 탄핵 집회에서 휴대폰 배터리가 다 돼 옆의 여학생들에게 충전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네~!" 하며 핫팩까지 건네주더군요. 저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이렇게 밖에 세상을 못 만들어 놓은 것 같아 어른으로서 미안하다고요. 그러자 그 여학생들이 "이제 저희들이 할게요"라고 말했는데, 얼마나 부끄럽고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결국 어른이라면, 크고 작은 일에서 늘 바른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지키는 '버릇'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버릇이 서로에게 전해져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백재 전경.
차유진
두 시간여 걸친 인터뷰를 마치고 짐을 챙겨 나서는 길에 "제가 남들에 비해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에 가끔 고뇌할 때가 있어요, 교수님"이라고 했더니, 교수님께서는 "세상엔 또 바보의 쓰임새가 있어요. 바보처럼 살아도 괜찮아요"라며 코를 찡긋하고 웃으셨다. '바보처럼 살아도 괜찮다'는 말은, 어쩌면 '늘 방황해도 좋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교수님을 찾아뵌 것은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안'을 얻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향한 작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결국 자신을 키우고 세상을 살리는 길이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전영애 교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진정한 삶의 태도'라면, 교수님의 말과 삶이 전해준 그 빛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언젠가 나도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길을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걸어가고 싶다.
여백재 문을 나서자 굵어졌던 빗소리가 멎고, 멀리 숲 사이로 '시정'의 기와가 인사하듯 모습을 보였다. 그 평온함 속에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이 내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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