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29 11:15최종 업데이트 25.05.2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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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선을 열하루 앞둔 23일 서울 마포구 공덕오거리에 대선 후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연합뉴스

정치에서 젊음은 늘 희망으로 간주된다. 무기력한 정치 현실에서 가장 손쉽게 동원되는 새 카드이기 때문이다. '세대교체', '미래세대', '기성 정치의 탈피' 같은 말들은 젊음을 무조건적 만능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구호로 작용한다.

그러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전면에 등장한 수많은 젊은 정치인들은 새로움보다 피로를, 기대보다 허탈함을 안긴다. 그들은 어느새 '젊은 얼굴, 낡은 정치'라는 역설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언어의 영역이다. 말은 정치인의 철학을 드러내고, 말의 품격은 그 정치인의 시대 감수성과 윤리 감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때로 젊음은 말의 경쾌함만을 앞세운다.

문장의 속도는 사유의 깊이를 앞질러 버리고, 표현은 공감이 아니라 반응을 겨냥한다. 말은 대화의 도구가 아니라, 이슈를 점유하기 위한 도발로 기능하고, 책임은 자극적인 문장의 그늘에 숨는다.

그들에게 젊음이란 태도나 상상력이 아니라, 존재감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만 소모된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빠르지만 얕고, 공격적이면서 책임이 없다. 그들에게 젊음은 태도도, 상상력도 아닌 마케팅의 전략일 뿐이다.

그 결과, 우리는 '나이의 혁신과 언어의 퇴행'이라는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의 언어는 '세대교체'를 말하면서도, 이전 세대의 조롱과 적대의 문법을 되풀이한다. '미래'를 말하지만, '과거'의 낡은 대본에 젊은 목소리를 얹고 있을 뿐이다.

혐오에 기댄 존재감

지난 4월 6일(현지시간)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파리에서 열린 국민전선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프랑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의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정당 대표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언어는 1980년대 극우 담론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청년 리더'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이민자 혐오와 사회 분열의 레퍼토리를 되풀이할 뿐이다.

오스트리아의 세바스티안 쿠르츠는 31세에 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는 언어를 진심이나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통제와 이미지 관리를 위한 도구로 삼았다. 언론을 조작하고, 메시지를 정교하게 통제하며, 당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발언을 전략적으로 연출했다. 결국 말의 윤리를 무시한 정치적 행위는 그 자신과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미국의 젊은 트럼프주의 정치인 매트 게이츠, 마조리 테일러 그린, 로렌 보버트 등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조롱과 밈, 짧고 자극적인 표현만으로 정치적 존재감을 키웠다. 이들은 말의 구조나 책임보다 반응과 도발에 집중했다.

신세대 정치인들은 논리보다 모욕, 대화보다 혐오에 기대 정치적 존재감을 키웠다. SNS를 통해 조롱과 자극을 반복하며 반응만을 노렸고, 정치는 성찰 없는 퍼포먼스로 변질됐다. 매트 게이츠는 자극적 언행으로 시선을 끌었지만, 사생활에서는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정치적 언어에 윤리가 빠질 때, 젊음은 기대가 아니라 위선으로 전락한다.

우리는 종종 젊음에 막연한 기대를 걸곤 한다. 더 선하고, 더 정의롭고, 더 열정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을 과잉 소비하게 만든다. 하지만 정치에서 젊음이 자동으로 덕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높은 책임과 더 낯선 실험을 요구받는다.

정치적 젊음이란 기성의 문법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단이고, 기존 구조를 낯설게 보는 상상력이다. 젊음을 전략처럼 소진해 버리는 정치는 필연적 실망으로 이어지고, 정치를 혐오의 대상으로, 시민을 집단적 허무주의로 빠뜨리고 만다.

정치적 젊음이란

2020년 2월 21일(현지시간)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이사회 특별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물론 모든 젊은 정치가 무의미하게 소진되거나 표피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낡은 문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언어와 태도로 시대를 설득해 낸 이들도 있다. 그들은 '젊다'는 사실에 기대지 않고, 젊음이라는 시간적 자산을 정치적 감각과 책임으로 전환해냈다.

2019년 핀란드의 산나 마린은 34세의 나이로 총리직에 올랐다. 불안과 혼란이 언어를 자극하던 시기에도, 그는 침묵과 절제로 리더십의 무게를 보여주었다.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 앞에서 감정적 선동이 아니라, 신중한 설명과 투명한 책임으로 국민을 설득했다.

그는 젊어서 튄 것이 아니라, 젊기에 감당해 낸 사람이었다. 말은 신중했고 행동은 단호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결정은 누구보다 빠르고 분명했다. 젊다는 이유로 기대받기보다, 젊기 때문에 버텨낸 리더였다.

2021년 가브리엘 보리치는 36세의 나이로 칠레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광장의 분노를 단순히 자신을 위한 권력의 동력으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를 제도 속으로 이끌려는 성숙한 정치를 이끌었다.

'정치는 현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다시 설계한다'는 신념을 가진, 열정적이면서도 노련한 젊은 정치인이었다. 비록 그가 야심 차게 추진한 개헌 국민투표는 부결됐지만, 기성의 질서를 답습하는 대신, 더 나은 구조를 향해 도전하는 태도만큼은 정치적 젊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준 좋은 예였다.

그런 젊음은 위협이다

진짜 젊은 정치는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미래를 감당하려 한다. 말은 전략이 아니라 사유의 결과여야 하며, 말의 경박함은 곧 정치의 품격을 드러낸다. 젊은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젊은 정치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낡은 방식과는 결이 다른 상상력, 기성의 틀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 시대의 감각에 맞는 윤리적 책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말의 기술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로 입증되는 일이다. 혐오와 갈라치기로 존재감을 키우며, 정치를 자기 무대 연출을 위한 소품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기만이다.

말은 넘치지만 사유는 얕고 조롱은 빠르지만 책임은 실리지 않는다면, 그 젊음은 혁신이 아니라 파괴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젊음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라 위협이다. 이제 우리는, 젊음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기만의 정치를 단호히 멈추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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