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30 22:43최종 업데이트 25.05.3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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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광화문광장 관람 무대에서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지켜보던 중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검찰공화국을 만들 듯하더니 막판에 군을 끌어들여 대형 사고를 쳤다. 이를 통해 그가 환기시킨 메시지가 있다. 군과 정치를 분리시키는 시스템에 허점이 있다는 점이다.

12.3 비상계엄 내란은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출신인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의 합작으로 벌어졌다. 군부와 거리가 먼 민간인 출신이 국방부 장관이었다면,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는 그만큼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6일 아주대학교 간담회 뒤에 "국방장관을 군인으로 임명하는 게 관행이었는데, 이제는 민간인을 보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라고 발언했다.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 임명을 통해 군과 정치의 분리를 한차원 끌어올릴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성일종의 비판, 핵심 잘못 짚었다

헌법 제87조 제4항은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라고 규정했다. 어차피 현역 군인은 국방장관이 될 수 없다. 이재명 후보가 말한 민간인은 장성 출신이 아닌 사람을 지칭한다.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원장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뚱딴지같은 비판을 내놓았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26일 기자회견에서 "국방장관을 민간인으로 임명하겠다는 건 민주당이 비법조인을 대법관으로 임명하겠다는 것의 연장선", "민간인과 현역을 구분 짓는 건 표를 얻기 위한 갈라치기고, 현역을 배제하는 것도 국가 자원 손실", "현역이 국방장관으로 발탁되면 민간인이 되는데, 이런 인사 기본 원칙도 모르는 이 후보에게 국민 생명과 재산을 맡길 수 없다" 등등의 비판을 했다.

성일종 의원의 발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국방부의 의미가 달라진 현실을 외면한 주장이다.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가 2021년에 발간한 <국방연구> 제64권 제2호에 실린 전제국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의 논문 '국방 문민화의 본질에 관한 소고'는 군과 정치의 분리를 중시하는 1945년 이후의 글로벌 흐름을 이렇게 언급한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국방부를 창설한 것은 군통수권자 일인이 군을 직접 통솔하지 않고 행정부를 통해 군을 지휘·통제·감독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계 각국이 국방부를 통한 문민통제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일본과 독일의 군국주의로 인해 전 세계가 미증유의 참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의 재등장을 막기 위해 주요 국가들이 특히 신경 쓴 것은 국방부를 민간인 주도하에 두는 것이다. 위 논문은 미국의 시스템을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국방장관부터 차관보까지 주요 직위에는 상원의 동의를 얻어 민간인을 임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둘째, 군인 출신을 고위직으로 임용할 경우 전역 후 일정 기간(5~7년)이 지난 다음에 임용하도록 법제화하였다. 셋째, 국방 서열은 1위부터 4위, 6~11위까지는 문민 출신이고, 5위(합참의장)와 12~15위는 군인으로 설정되었다.

넷째, 국방장관이 합참·각군 등 국방조직 전체를 조정·통제할 수 있도록 군 인사(진급) 및 사업계획·예산편성 등과 관련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다섯째, 군사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국방부 민간 관료들도 각군 사업을 국방 차원에서 중앙집권적으로 조정·통제하고 제한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할 목적으로 계획예산제도를 도입하였다."

민간인 출신들로 국방부를 채우는 것은 민간인이 일을 더 잘해서가 아니다. 이는 국군이 국민의 군대여야 한다는 당위성에 근거한 것이다. 군대의 주인은 국민이고 군대는 국민의 명령을 받아야 한다는 민주국가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독재자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1961년부터는 그 독재자가 '군부 독재자'였다. 그래서 그 후로 한국의 민주화는 군부 독재로부터의 자유였다. 1987년 6월항쟁 때 국민들이 싸운 대상 역시 전두환을 위시한 군부독재집단이다.

그런 경험의 산물인 현행 헌법은 국민과 군부의 관계에 민감하다. 현행 헌법은 군부가 국민을 이기려는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문민우위원칙을 곳곳에 심어놨다. 위의 제87조 제4항과 비슷한 내용이 제86조 제3항에도 있다. 이 조문은 현역 군인의 총리 취임을 금지한다.

또 제60조 제2항은 대통령이 중요 문제에 관한 국군통수권을 행사할 때 국민 대표자인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제89조는 군사에 관한 중요 사항을 결정할 때 민간인으로 구성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제82조는 대통령이 군사에 관한 행위를 할 때는 민간인인 총리와 관계 국무위원(국방부 장관)의 서명(부서)을 받도록 했다.

이런 장치들을 해놓았지만, 1987년 이후에도 세계 각국은 한국을 걱정했다. 언제라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는 나라라고 염려했다. 32년 만에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배출된 1993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 상권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르몽드지를 비롯하여 전 세계 대부분의 외신이나 외국 정부에서는 '김영삼 씨가 문민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앞으로 군과 동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내용의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에는 언제라도 쿠데타를 통해 정치 구도를 바꾸어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강력한 군부가 존재하고 있으며,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이러한 시각은 안타깝지만 내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 작업을 완결할 때까지는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김영삼은 박정희가 만들고 전두환 등이 운영한 하나회를 숙청함으로써 군부의 정치 개입 가능성을 떨어트렸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그 가능성은 세기를 넘어 21세기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여전히 근심거리였다. 노무현은 군부 출신이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는 관행을 우려했다. <문재인의 운명>은 노무현의 인식을 이렇게 들려준다.

"대통령은 '본격적인 국방개혁은 문민장관으로 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전통적 방식의 인사를 하고 임기 후반쯤 민간 출신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려고 구상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우리는 첫 국방장관으로 준비된 카드가 없었다"라고 <문재인의 운명>은 말한다. 노무현이 임명한 세 명의 국방장관은 모두 장성 출신이다.

장성 출신 대신 민간인이 국방부 장관 해야 하는 이유

국방부. 자료사진.연합뉴스

국방부를 민간인으로 채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국방부가 발간한 <국방조직 변천사>를 근거로 위 전제국 논문이 정리한 통계에 따르면, 정부수립 4개월 뒤인 1948년 12월 7일 국방부 직원 22명 중 군인은 하나도 없었다.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7월에도 직원 391명 중에 군인은 전무했다. 1955년 2월 17일에도 전체 직원 411명 전원이 민간인이었다.

이런 구도를 뒤바꾼 것이 5·16 쿠데타다. 위 논문에 따르면, 군사정변 4개월 보름 뒤인 1961년 10월 2일 현재의 국방부 전체 직원 935명 중에 현역 군인은 600명이었다. 이는 현역 군인들이 국방부로 파견되는 전통의 시작이 됐다.

박정희는 하극상 방식으로 군내 권력을 장악한 데다가 남로당 출신이자 '빨갱이' 동생이라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현역 군인의 국방부 파견은 그가 군부를 틀어쥐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는 그해 11월 1일에 전역한 그가 군부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핵심 도구가 됐다. 그의 행동은 장관직을 포함해 국방부 전체를 민간인으로 채우는 것이 군과 정치의 분리에 얼마나 긴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국방부는 군대의 위에 있는 기구가 아니라 군대의 활동을 돕는 기구다. 그러므로 민간인이 있어야 할 구역이다. 이곳을 민간인 출신이 이끌어야 국민과 군대의 관계가 헌법 규정대로 유지될 수 있다.

국방부 장관은 정부와 군대를 매개하는 창구다. 이 자리에 민간인 출신이 배치되면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뿐 아니라 정치가 군대를 악용하는 것도 상당부분 막아낼 수 있다. 윤석열 같은 비군인 정치인이 군인들을 정치로 끌어들이는 것을 어느 정도라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의 임명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제도화시켜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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