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왼쪽부터)·권영국 민주노동당·김문수 국민의힘·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회'가 경제와 사회, 정치를 주제로 세 번 열렸다. 문화정책은 사회 분야에서 다루어질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경제 분야의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답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후보가 문화 분야 대표 공약을 경제 분야 토론회에서 밝혔다는 점에 양가감정이 들었다. 소위 '기타 등등'으로 분류되어 왔던 문화 분야를 중요하게 다뤘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 후보는 장기적으로 성장 동력을 높이기 위하여 문화산업 육성과 인공지능(AI) 중심의 첨단 기술 산업 투자를 언급했다. 그러나 문화예술을 K-콘텐츠 상품으로서 일면만 강조하고 예술인을 마치 70년대의 '산업역군'처럼 국가와 자본의 이윤을 창출하는 수단으로서 호명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미 이 후보는 한 간담회에서 문화정책(지원, 복지)이 아닌 '문화산업' 정책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예술인과 문화산업 종사자들을 문화적 가치를 바탕으로 창조적 생산자로 보는 정책적 전환을 전제로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재명 후보의 '소프트파워 Big5 문화강국' 공약은 그리 낯설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콘텐츠산업 5대 강국 진입' 목표로 융합형 콘텐츠산업 등 콘텐츠의 연구 개발(R&D) 발굴·지원 사업에 투자했던 것처럼 이 후보의 공약은 AI와 같은 고도화된 기술환경에서 문화산업을 발판으로 경제 도약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전문 인재 양성과 전담 조직 신설 추진 공약 또한 이명박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정책 집행 방향과 유사점이 보인다. 기존의 문화정책 전달 체계로는 예산을 소수정예에 집중하기 쉽기 때문이다. 예술 현장과 협력하기보다 병리적인 관료 행정이 독점적으로 관리했던 것처럼 펼쳐질 수밖에 없다. 지난 경험을 비춰봤을 때 효율과 수월성이 강조되면서 문화예술생태계 파괴,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 위축 등 문화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재명 후보 공약을 중심으로 서술한 이유는 타 후보에 비해 문화 분야 공약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고 내용상 동시대 문화예술의 위상과 관련한 쟁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들의 문화 분야 공약이 나왔지만 부수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이념에 치우친 불통과 무능으로 평가 받는 윤석열 정부의 '블랙리스트' 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공약으로 그마저도 급조한 것 같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지방 분권과 청년 지원, AI 관련 공약을 발표했으나 내용상 가장 허술하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의 공약은 예술인 검열, 차별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블랙리스트 특별법' 제정, 지역별 문화 공공성 확대, 지자체 및 예술감독 인선에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공인선제도' 확립 등 윤석열 정부에서 초토화된 문화예술 환경과 주권자 국민의 문화 권리 보장을 중심으로 한 문화정책 방향을 잘 세우고 있다. 그러나 선언적인 의미로 읽힌다. 권 후보의 발언에서 한 번도 문화 분야 공약이 언급된 바 없었고, 당 내부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문화산업은 문화예술을 신자유주의에서의 이윤 추구의 장으로 소환하면서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는 탈각시킨다. 소위 K-컬처로 대표되는 콘텐츠 상품이 초국적 기업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생산-거래-촉진-소비되는 환경에서 발생한 경제효과를 공공으로 환원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에이전시나 창작 노동자 착취에 대한 문제 해결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문화정책은 후보들의 공약처럼 단순히 여가를 즐기기 위한 복지 서비스이거나 예술가를 위한 창작 지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에 기대하는 문화예술은 내란을 넘어 다양하고 평등한 존재들의 자유로운 삶을 바탕으로 건강한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를 형성하고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힘'이다. 새롭게 열릴 문화정책은 시민들의 삶에 조응하고 문화적, 사회적 가치를 바탕으로 주권자의 참정권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며 공적 가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광장의 예술인들이 제안하는 새 정부의 과제

▲지난 5월 23일 127개 문화예술단체가 '21대 대통령선거 문화정책 대전환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블랙리스트 이후
기후위기와 전쟁, 불평등의 양극화, 차별과 혐오의 일상화, 지역 소멸과 극우 보수화 등 인류 문명사의 위기, 윤석열의 내란과 탄핵이라는 사회적 혼란 속에서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 '내란 청산'과 '사회대개혁'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소명을 기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3년은 '블랙리스트 시대'로의 퇴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반민주적이고 병리적 관료 행정의 토대에서 퇴행적이었다. 12.3 내란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유인촌 장관)는 비상계엄령이 내려지자마자 몇몇 예술대학교를 폐쇄 조치했고, 내란 정부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동조해 왔다.
최근까지도 이승환과 하림 같은 대중가수들을 배제하고, 보수 인사나 공무원을 알박기하는 인사 전횡을 일삼고, 수직적 정책 하달과 자원의 독점화를 진행 중이다. 이렇듯 소수의 문화 관료와 권력 집단은 '공정'이란 이름으로 문화정책을 사유화하고 검열과 배제를 통해 시민들을 길들여왔다.
'윤석열' 내란 사태와 극우 보수 세력의 준동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태로운 토대 위에서 버티고 있는지를 증명했다. 우리 사회가 회복을 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해 내지 못하고 대전환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언제든 유사한 비극을 다시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비상계엄 이후 문화예술인들은 윤석열 퇴진과 내란 청산을 위해 힘을 모아왔다. '윤석열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에 참여해 사회대개혁 문화 분야 과제를 대통령 후보와 정치권에 제안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21대 대통령 선거 5대 문화정책' 과제를 127개 문화예술 단체와 공동으로 제안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루어진 문화예술계 표현의 자유 억압과 권리 침해에 대한 진상조사 및 재발 방지, 유인촌 문체부 장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 활동에 대한 전면 부정과 허위사실 유포, 이명박-박근혜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에 대한 법률적인 진상규명 등을 위해 '블랙리스트 특별법'이 필요하다.
블랙리스트 특별법은 ▲ 블랙리스트와 표현의 자유 침해 관련 국가범죄에 대한 정의 및 목적 규정 ▲ 철저한 진상규명 및 피해자 회복을 위한 위원회 설치 ▲ 회복적 정의 실현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으로 구성해야 한다. 또한 공소시효 재설정을 통해 윤석열 정부를 비롯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에 대한 진상규명이 될 수 있도록 법제를 구성해야 한다.
지난 5월 8일 더불어민주당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회의원들과 문화예술계, 시민사회, 비상행동이 함께 '블랙리스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대토론회'를 열었다. 국회 차원에서 정부의 문화·예술 검열과 블랙리스트 정책 재가동에 대한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감시와 대응을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 특별위원회'(가칭)를 구성해 관련 법 제도를 개혁하고 보완하기로 했다.

▲지난 5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화예술상임위원회 국회의원들과 '블랙리스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대토론회'를 열었다.
블랙리스트 이후
예술인의 노동 권리 보장 및 사회안전망 확대 적용
블랙리스트 이후,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호하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했으나 보편적인 '노동권'의 범주의 권리는 획득하지 못했다. 사업을 주관하는 국가 및 공공기관은 공공에서의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문화예술산업 원청 및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는 책임을 회피한다.
법 제정 취지와 달리 예술인이 적정한 임금을 받고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일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고용보험 예술인특례의 제도 개선 역시 윤석열 정부에서 공론화되지 못하고 문재인 정부 후반 추진되던 예술인 산재보험 전면 적용 논의 역시 연구보고서만 몇 차례 발표되고 중단된 상태이다.
따라서 예술인이 자유롭게 창작하고 사회적 주체로서 정당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하여 시혜적이고 단발적인 지원사업이나 재정적 지원책이 아닌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자체에 대한 사회적 보장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예술의 사회적 노동으로서의 특성을 정책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인의 권리와 보호를 체계화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정책적 키워드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시민을 중심에 둔 지역문화정책의 가치와 원리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지역문화 정책 수립을 촉진하기 위해 추진되어 온 '문화도시' 사업은 대대적인 예산 삭감과 함께 'K-문화도시' 사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사실상 지역관광 특성화 정책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지역문화 정책은 문화 예술 활동에 대한 참여와 경험을 통해 시민들의 건강한 삶과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정책이다. 지역분권과 자치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적 복원을 위해 중요한 정책이지만 윤석열 정권에서 토대가 무너진 상태라 이를 되살리기 위한 정책적 혁신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 코로나19로 인한 감염병 사태 등을 경험하며 한국의 예술 창작 환경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가를 새삼 확인 할 수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그나마 있던 안전한 창작 환경 조성을 위한 사회적 논의조차 사라져 버렸고 형식적인 '공정' 담론 하에 지원정책의 줄세우기와 과도한 관료집단의 개입, 공공영역에서의 검열과 배제가 일상화되었다.
자유롭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예술 창작 생태계는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 보장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건강한 문화적 토양을 만들고 공동체의 창조적이며 민주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다. 지속가능한 창작 환경을 위한 지원책의 다각화와 성평등한 창작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그리고 문화예술인의 직업적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예술기본법' 제정을 통한 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병리적인 관료주의 문화행정 문제가 문화정책 전반의 파행으로 드러났고 블랙리스트 사태로 그 구체적인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내란과 같은 시대적 비극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단순히 이전으로의 회복이 아니라 삶과 사회의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문화의 힘을 인정하는 사회, 정책과 공적 자원 분배에 관여하고 결정하는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것이 내란의 시간을 넘어서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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