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28 11:36최종 업데이트 25.05.2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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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관저비용 은폐, 대통령비서실 규탄 기자회견’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앞에서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주최로 열렸다.권우성

02-000-0000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녹음된 목소리가 들린다. 이 전화번호는 대통령비서실이 알려준 번호다. 얼마 전 대통령비서실은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공문과 다름없는 정보부존재통지서를 보내며, 없는 번호를 기입했다.


지난 4월 11일,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는 대통령비서실에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된 날부터 퇴거한 4월 11일 사이에 관저에서 머무르며 사용한 비용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탄핵된 이후 윤석열 내외가 관저에 머물며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나고, 전한길씨(전 한국사강사)를 초대하는 등 외부 인사들을 불러들여 환송 만찬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조리사를 관저로 불러들인 사실도 드러났다.

전직대통령예우에관한법률에 따르면 재직 중 탄핵 결정을 받아 퇴임한 대통령은 경호와 경비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다. 만약 윤석열의 환송 만찬 비용이 세금으로 쓰였다면 이는 형법상 횡령·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환수조치가 필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려면 관저에서 쓰인 일주일간 비용의 용처가 무엇인지, 액수는 얼마나 되는지가 우선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 정보공개청구였다.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은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공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통령비서실은 이 청구에 대해서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있다.

파면된 대통령 보호 위해 '정보부존재' 통지한 대통령비서실

하지만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대통령비서실은 '정보가 부존재한다'는 단 한 줄짜리의 통지서를 보내왔다. 국가시설을 사용하고, 사람이 거주하고, 만찬까지 열었는데도 관련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그 돈의 출처가 국민 세금이라면 당연히 해당 정보는 있어야 하고,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 만약 돈의 출처가 세금이 아니라면 대통령실 조리사를 불러들인 근거와 관저의 사적 이용에 대한 근거 기록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관저비용 사용처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는 형법 제122조에 따라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만약 관저비용 기록이 있음에도 허위로 부존재 통지를 한 것이라면 형법 227조에 따라 허위공문서 작성죄, 대통령비서실이 직권을 남용하여 국민의 알권리를 방해한 것으로 형법 123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에 해당한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이 정보부존재로 공개를 회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 대통령비서실은 '윤석열의 450만 원 상당의 외부 식사비용 및 영수증'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서도 영수증이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 건은 소송으로 이어졌는데, 서울고등법원은 '외부 식당에서 저녁식사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와 관련해 당연히 식사비용이 지출되었을 것인데, 그 비용지출과 관련한 정보가 부존재한다는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 불투명하고 모호하게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침해이며, 예산지출을 감시받지 않겠다는 것으로 헌법상 법치주의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판결에 비추어볼 때, 파면 이후 관저에서 생활과 식사를 한 것에 대해 비용 지출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도 부존재로 정보를 은폐한 것은 대통령비서실이 그 자체로 불법, 위법을 행사한 것에 다름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비서실은 왜 법을 어기면서까지 정보를 은폐하는 것일까.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정보공개법은 위법한 공개 거부나 회피 등 부당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위반하더라도 관련 규정이 없어, 처벌을 받지 않는다. 더욱이 이제 6월 3일이면 대통령비서실의 모든 기록들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비서실 기록들이 지정기록으로 보호된다면 대통령실이 은폐하고 있는 이 정보는 15년에서 최장 30년간 봉인되어 버릴 수도 있다.

문제는 시민들이 대통령비서실의 정보은폐에 대해 문의조차 할 수 없도록 담당 공무원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가렸다는 것이다. 대통령비서실은 불과 몇 달 전에 대법원 판결을 통해 대통령실 직원명단은 비공개할 수 없다는 처분을 받기도 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일반적인 문서에 기본적으로 적혀있는 담당 공무원의 이름을 '행정관 전OO, 총무운영관리팀장 최OO' 으로 가렸다. 전화번호마저 실제 있지도 않은 02-000-0000으로 통지해 버렸다.

2025.04.04~2025.04.11 관저 집행 예산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정보부존재 통지서. 담당공무원의 이름이 지워져있고, 전화번호와 팩스번호가 가려져있다.정보공개센터

대통령비서실은 위상으로 보나 지위로 보나 정부 행정기관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국가기밀도 아니고, 개인정보도 아닌 지극히 공개 대상인 정보에 대해서 법을 위반해가면서까지 은폐를 한다면, 다른 공공기관들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애쓸 리 만무하다. 심지어 02-000-0000 따위의 거짓 안내에서는 행정기관이 가져야 할 일말의 설명책임성도 찾을 수 없다. 대통령비서실이 보호해야 할 것은 파면된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알권리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답게 투명하고 책임 있게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정보 은폐 일삼던 윤석열 정부 반면교사 삼아야

이를 위해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는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정보공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새 정부에서는 대통령비서실 및 주요 대통령직속기구의 조직도, 직원명단 및 주 업무를 대통령비서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보안이 불필요한 대통령비서실의 용역계약 내역 역시 나라장터를 통해 공개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 시기 대통령실 및 관저 리모델링 공사 등과 관련한 의혹, 대통령 측근의 비서실 사적채용 논란이 계속되었고, 관련한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서는 차제에 적극적인 공개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대통령의 일정을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일정 등을 적극적으로 공개하지만 임기 중반 이후 특히 국정지지율이 하락하면 더욱 공개가 잘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계속돼 왔다. 이런 관행은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만 부추길 뿐이다. 대통령의 일정은 국정지지율이나 여론의 평가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공개해 국민들의 기본적인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적 업무 수행의 과정이 체계적으로 기록되고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도록 대통령기록관리가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불법계엄과 내란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제대로 이뤄지고, 명백히 진상규명될 수 있도록 법개정 등을 통해 파면된 대통령 기록 보호에 대한 예외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책임 있는 정부, 투명한 정부는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제 며칠 뒤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국민에게 거짓말까지 해가며 정보를 은폐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정부는 이제 끝나야 한다. 우리는 출범 당시부터 정보은폐를 일삼다, 표현의자유와 민주주의를 짓밟는 불법 계엄으로 파면된 윤석열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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