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왼쪽부터)·김문수 국민의힘·권영국 민주노동당·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3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2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일부 유권자는 "어차피 공약은 못 지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공약은 단지 이행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각 후보의 가치관과 정책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정치적 나침반이다.
AI와 첨단산업 투자로 경제 강국을 원한다면 이재명, 규제 철폐와 대규모 감세를 통한 급진적 변화를 원한다면 김문수, 여가부·통일부·공수처 폐지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다면 이준석, 불평등 해소와 증세를 통한 재정 확충에 공감한다면 권영국을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건, 공약집에서는 경제정책의 차이가 분명함에도 TV 토론에서는 이런 차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재명과 김문수 후보는 상투적인 말만 반복했고, 이준석 후보는 대부분의 시간을 중국과 이재명 후보 비판에 썼다. 유권자 입장에선 경제정책 실종 선거를 보고 있는 셈이다. 특히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 기후위기 정책의 부재다. 이재명 후보는 기후 정책을 10대 공약 중 10번째에 배치했지만 내용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립"이라는 모호한 표현뿐이다. 그러나 목표 수립은 대통령의 과제가 아니라 이미 합의된 약속을 이행해야 할 책임이다.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선 2035년 중간 목표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김문수·이준석 후보는 기후위기나 온실가스 관련 언급이 아예 없다. 김문수 후보가 언급한 재생에너지나 기후 관련 내용도 AI 산업이나 재난 대응 용도에 한정돼 있다. 권영국 후보만이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70%)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둘째, 재원 마련 대책이 부족하다. 대다수 후보들이 총 재원 규모도, 조달 방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후보들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선관위의 10대 공약 작성 양식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형식은 각 공약별 재원 조달 방법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국세 수입을 모두 일반회계로 통합해 다양한 사업에 사용한다. 사업별 재원 조달을 따지는 형식은 현실과 어긋난다. 결국 후보들은 '지출 구조조정', '자연 세수 증가' 같은 모호한 답변만 내놓게 된다.
선관위는 각 공약이 '얼마가 드는지'부터 묻고, 그 다음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개별 공약별이 아니라 총 재원 규모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유권자는 실질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말은 같아도 예산 규모가 다르면 전혀 다른 공약이기 때문이다.
공약은 좋은 말의 나열이 아니라 가치 판단과 후보자 선택의 기준이다. 이재명은 방향은 맞지만 책임이 부족하다. 김문수는 일관되지만 과격하다. 이준석은 신선하지만 틀렸다. 권영국은 정직하지만 비현실적이다.
이런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정확한 예산 규모를 명시하는 것이다. 거대한 말보다 중요한 건 작은 숫자의 진실이다.
▲이상민 /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소셜 코리아 편집위원)
이상민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 예산서를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이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일을 합니다. 재정 관련 정책이 법제화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덕업일치 타이핑 노동자입니다. 주요 저서로 <경제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가 있고 공저로 <한국의 신복지체제의 재정전략>, <지방의정백과>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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