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왼쪽부터)·김문수 국민의힘·권영국 민주노동당·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3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2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준석은 1차 토론에서부터 유권자들을 오도하는 주장을 폈다. 최저임금을 자율화해서 지역이 기업 유치를 놓고 경쟁할 수 있게 하겠다며 텍사스주의 사례를 든 것이다. 미국은 각 주가 자율적으로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도 중앙정부가 결정한 최저임금에서 지방자치단체가 30%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주는 최저임금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없다. 50개 주 모두 중앙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에서 더 줄 수는 있어도 깎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로, 워싱턴주와 캘리포니아주는 이의 두 배가 넘는 16.66달러와 16.50달러를 최저임금으로 정하고 있고, 50개 주 가운데 30개 주 이상이 연방정부가 정한 액수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지불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텍사스의 규제와 세금이 적기 때문에 그곳에 기업이 몰린다'는 주장도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세계 최대 테크기업 1~6순위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알파벳(구글), 아마존, 메타인데, 모두가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에 있다. 다시 말해, 최고의 테크기업들이 미국에서 가장 엄격한 노동자 권리 보호와 까다로운 환경 규제 그리고 가장 높은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곳에 몰려 있다.
7위의 테슬라도 캘리포니아에 적을 두고 있다가 텍사스로 이전했지만, 이것은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의 정치적 선택에 가깝다. 2021년 캘리포니아 보건당국은 코로나 방역을 위해 테슬라 공장가동 중지를 요구했고, 머스크가 이에 반발하면서 민주당 의원과 충돌한 뒤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쿠팡이 텍사스에 있다면 적자 때도 수백 억 세금 내야
텍사스가 캘리포니아나 워싱턴에 비해 노동자 권리와 환경 보호 제도 등이 느슨한 것은 맞지만, '세금이 적다'는 말이 꼭 사실은 아니다. 텍사스는 전통적으로 소득세를 물리지 않았고, 기업에도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더불어 세계 최대의 석유 생산국인 데다가, 텍사스가 미국 전체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같은 중동 산유국들이 소득세 없이 국가를 운영해 올 수 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텍사스가 세금 무풍지대는 아니다. 텍사스는 기업과 개인에 갖가지 세금을 부과하는데, 재산세와 소비세가 다른 주에 비해 높고, 이 세금에는 주소지에 따라 카운티, 시, 학군별로 지역세가 이중 삼중으로 따라붙는다. 게다가 기업들은 매출에 따라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텍사스에는 법인세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텍사스에는 이익을 기준으로 내는 법인세는 없지만, 매출액에 따라 부과하는 법인 영업세(franchise tax)가 있으며, 업종에 따라 총매출의 0.375%에서 0.75%에 이르는 세금이 부과된다.
텍사스의 법인영업세는 총매출을 기반으로 하므로, 매출이 크고 이익률이 낮은 업체들은 막대한 세금 부담을 지게 된다. 예컨대 쿠팡 같은 기업은 막대한 매출을 자랑하지만 영업이익률은 1~2% 정도로 낮고, 한국의 중소기업들 역시 평균 이익률이 3%대 수준에 머문다. 이 기업들에 '텍사스 모델'을 적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2021년에 쿠팡은 2021년에 처음으로 매출 22조 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이익은 마이너스여서 1조 8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이익에 세금을 매기므로, 적자의 경우 최소법인세 800달러(약 110만 원)만 내면 되지만, 텍사스에서는 높은 매출 때문에 수백억 원에 이르는 세금을 내야 한다.
이준석은 인하대 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텍사스와 플로리다를 비교하면서, 텍사스의 최저임금이 플로리다보다 낮은데도 평균임금은 텍사스 쪽이 더 높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최저임금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면서도, 이 제도의 목적과 기능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하한선일 뿐이다. 고소득자를 포함한 평균임금이 높다고 해서 저소득층의 처우가 개선되지는 않으며, 최저임금이 낮고 평균임금이 높다는 것은 오히려 소득 불평등의 증거가 될 수 있다.
텍사스의 평균소득이 높은 이유는 석유, 가스 등 에너지 산업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높고 노동자의 평균 연령이 낮아 다수 노동자들이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당연히 이곳에도 저임금 노동자들이 있고, 이들에게 연방 최저임금이 충분한 소득을 제공하지 못하는 탓에, 텍사스는 플로리다보다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 안고 있다. 비록 공화당의 반대로 실패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가 연방 최저임금을 현재의 두 배가 넘는 15달러로 인상하려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텍사스와 달리 플로리다는 은퇴 인구가 많아 평균 연령이 높고, 주요 산업도 관광·호텔·오락·외식 등 임금 수준이 낮은 산업구조를 지닌다. 게다가 거주 비용은 높아, 최저임금을 인상해서 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 따라서 주민들이 매년 1달러씩 인상되도록 2020년 주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그 결과 내년 9월 말까지 연방 최저임금의 두 배가 넘는 시간당 15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준석이 말하는 미래는 낡은 과거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22일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제임스 김 암참 회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과 '경쟁' 담론으로 재미를 본 이준석은 이제 전기요금 등 공공 필수재까지 경쟁 체제 속에 편입시키겠다며 벼르고 있다. 그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연설을 한 뒤 "법인세뿐 아니라 전기요금 같은 다른 요소들도 '경쟁 체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작은 정부'라는 이름의 대규모 감세, 그리고 이로 인한 복지 축소가 민영화된 공공서비스와 결합할 때 어떤 미래가 찾아올지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난 3년간 한국을 괴롭혀 온 고용불안, 저임금화, 사회적 안전망 해체의 가속화로, 이는 이명박에서 윤석열로 이어진 극단적 신자유주의 체제의 완성이다.
"저는 경제가 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죠. 즉, 세금이 낮은 곳으로 자본은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갑니다. 규제가 낮은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준석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반대의견을 드러냈다. '기업은 노동자들이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모든 걸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까지 받는 건 지나치다"는 것이다. 작년 한 해만 해도 589명이 중대재해로 사망했는데, 그조차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매년 감소해 처음으로 500명 대에 진입한 것이다.
이렇듯 '텍사스 경제'는 얄팍한 지식으로 포장한 '석열노믹스'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준석 발언이 입증하듯 스스로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준석은 최근 저서 <이준석의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에필로그에 "지도자는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썼다. 과연 그는 책임지는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사람의 미래 행동을 예측하는 가장 좋은, 그리고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그가 과거에 어떤 행동을 해 왔는지 보는 것이다. 양립할 수 없는 행태를 반복한 뒤 아무런 해명이나 반성이 없는 사람을, 아직 영향력이 제한적인 '정치 초년생'이라는 이유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그 사람이 대통령 후보라면 말이다.
이준석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말하기 앞서,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무책임하고 공감 능력이 결여된 지도자는 자신이 만든 전임 대통령 하나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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