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30 12:03최종 업데이트 25.05.3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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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간)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이 스페인 빌바오의 산 마메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승리한 후 동료들과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5년 손흥민은 잉글랜드 프로축구(EPL) 토트넘의 주장으로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인 EPL에서 비유럽권 아시아 선수가 그 정점에 섰다는 사실은 단순한 스포츠 뉴스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를 감동시켰다.

손흥민은 한 명의 축구선수가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질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는 어떻게 그 자리에 섰을까. 그리고 그를 따르기 원하는 차세대 유망주들을 위한 길은 존재하는가.


손흥민은 성공했다. 그러나 그가 지나온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2024년 이적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7만 8000건의 국제 이적이 발생했고, 그중 상위 2.5%가 전체 이적료의 40%를 차지했다.

한국 선수 중 유럽 진출에 성공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이들의 진출도 대부분 조기 계약 해지, 문화 적응 실패, 제한된 출전 기회 등의 장벽에 부딪힌다. 스포츠 이주는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철저히 선별되고 통제되는 구조다.

엘리트 스포츠를 지원하는 국가 정책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지역과 생활체육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해 올라오는 경로와는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한국은 여전히 '스타 만들기' 중심의 정책 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기회'보다 '선택'을 중시하는 체계다.

프랑스는 학교 체육과 지역 스포츠 클럽이 국가대표로 이어지는 다층적 구조를 통해, 생활 속 스포츠가 곧 엘리트 스포츠로 연결되는 통로를 갖춘다. 이런 차이는 국제 경쟁력뿐 아니라, 시민 주체로서 스포츠인의 문화적 외교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제 관계에서 문화외교의 중요성은 점점 부각되고 있지만, 한국의 전략은 여전히 K-콘텐츠 중심에 머무른다. K팝과 드라마, 영화는 주요 전략 자산이지만, 스포츠는 여전히 개인의 성취에만 의존한다.

손흥민이 영국 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바꾸었고, 김연아가 국제 스포츠 윤리의 상징이 되었지만, 이들은 국가 정책의 결과물이 아니라 우연히 발현된 개인의 성취였다. 그들 뒤에는 제도적 뒷받침도, 정책적 투자도 충분하지 않았다.

반면 프랑스는 문화부와 외무부가 공동으로 스포츠 외교 전략을 수립하며, 파리올림픽을 계기로 클뢰브 프랑스(Club France) 같은 문화외교거점 공간을 운영해 선수와 팬, 미디어를 연결하고 있다. 스포츠를 통한 소프트파워 강화가 명확히 제도화된 구조다.

일본은 외무성 산하 국제문화교류과를 통해 스포츠인을 민간 외교사절로 파견하며, 스포츠를 통한 국제이해 증진 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스포츠는 문화적 외연을 넓히는 실천의 장으로 활용된다.

미국은 국무부 산하에 스포츠외교 부서를 두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미국 스포츠인들은 스포츠 사절단(Sports Envoy Program), 스포츠 방문단(Sports Visitor Program) 등을 통해 세계 각국에 파견되어 외교 전략의 선봉에 서고 있다.

중국은 스포츠인을 민족 이미지의 상징으로 적극 활용하며, '스타디움 외교'라 불리는 전략을 통해 아프리카 등지에 체육 인프라를 제공함으로써 자국 브랜드의 확산을 시도하고 있다. 스포츠는 정치와 외교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해외 진출 스포츠인 포괄하는 통합적 구조 필요

25일(현지시간)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이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토트넘 홋스퍼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 후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흐름과 달리, 한국은 아직 스포츠인을 외교 자산으로 공식 인식하는 틀을 갖추지 못했다. 손흥민은 뛰어난 선수였지만, 동시에 우연히 외교 최전선에 서게 된 인물이었다.

2025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권영국 등 주요 대선 후보들은 문화정책 공약을 내세웠다. 이 중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세계 5대 문화강국 실현"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K-콘텐츠 지원 강화, 문화 예산 확대, 창작 환경 개선 등을 공약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인공지능(AI) 콘텐츠 특구와 지역 문화 균형을 강조했고,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문화부 개편과 다문화 문화 적응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생활 문화 확충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네 후보 모두 스포츠를 문화외교 전략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체적인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손흥민과 같은 존재는 전략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우연의 산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문화강국 비전과 콘텐츠 산업 전략 면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정책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문화외교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며, 특히 재외공관을 문화 전파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방침과 콘텐츠 수출 확대, 국제 공조대응 등은 문화외교로 확장 가능한 기반을 담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 외교, 특히 해외 진출 엘리트 스포츠인의 문화외교적 활용과 관련된 전략은 여전히 부재하다. 이는 문화외교의 범위를 콘텐츠 산업에만 한정 짓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스포츠와 같은 비정치적 매개를 통한 외교 전략을 보완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콘텐츠 수출에 관한 비전은 있으나, 스포츠인은 여전히 정책 바깥에 머문다. 정책의 산업화 논리는 갖췄지만, 국민 외교사절로서의 주체 육성이라는 문화외교의 본질은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한국의 스포츠 정책은 경기력 향상, 메달 획득, 국제대회 유치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스포츠를 도구화하는 전통적 프레임으로, 외교 자산으로 활용하는 문화외교 전략과는 방향이 다르다.

해외 리그에서 활동하는 스포츠인이 문화적 대사로 기능하고, 팬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현지 커뮤니티에서 국적의 이미지를 체현할 때, 그는 실질적인 외교 수행자가 된다. 그것이 곧 공공외교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제도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계약과 체류, 언어와 정서적 지원, 귀국 후 커리어 전환까지 포괄하는 통합적 구조가 필요하다. 한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그 성취가 반복 가능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문화외교 국가의 기반이다. 한국도 이제 스포츠인을 단순한 경기 참가자가 아니라, 외교 자산으로 육성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문체부와 외교부가 공동으로 스포츠 문화외교 전략을 수립하고, 전담 조직과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 진출 스포츠인을 위한 언어, 법률, 심리, 생활 적응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고, 은퇴 후에는 국제 교류를 위한 외교 사절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단지 스포츠 정책이 아니라, 외교 전략의 확장이다.

우리는 마침내 우승 트로피를 높이 쳐든 손흥민의 환한 웃음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웃음이 혼자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손흥민이 상징이 되었다면, 우리는 그를 따라 세계로 나아가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문화외교는 단지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는 일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게 되는 개인들이 외롭지 않게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외교의 포장지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맺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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