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현장에서 퇴근 줄을 서고 있는 근로자들 모습.
나재필
'화병'은 노동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살과 뼈를 깎는 수고로움을 통해 돈을 벌지만 그 내면에는 말 못 할 눈물이 한 짐이다. 그것을 어찌 문장의 힘으로, 말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곳에도 버럭하는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특별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버럭 화를 내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혼나지 않기 위해, 아니 '덜' 혼나기 위해 신경을 바짝 쓴다. 조금 실수하면 불벼락이다. 물론 휘발성 강한 폭발이라고는 해도 경멸의 눈초리를 받으면 눈물이 찔끔 맺힐 정도로 참혹하다. 나이 먹고 노동 하는 건 가히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대접 받을 생각은 없지만 나이가 쪼그라들 정도로 어린 사람에게 혼쭐나는 일은 비참하다. 사람의 그릇은 타고난 만큼의 물밖에 담지 못하는 저급한 담수율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화병 난 사람을 대하면 화병이 생긴다. 이는 신체 증상에서도 나타난다. 두통, 얼굴 화끈거림, 어지럼증, 입 마름, 가슴 두근거림, 목과 가슴에 덩어리, 답답함, 소화불량 등이다. 특히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육체가 정신에 의해 침식당한다.
무턱대고 투덜대는 건 아니다. 부족함을 안다. 오십 줄 넘도록 사무실에 앉아 일하다가 노동판에 뛰어든 지 3년 차이니 아직도 어리바리다. 흔히 말하는 '똥손'이다. 그러니 답답할 것이다. 못마땅할 것이다. 괜히 뽑았다고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욕 직전까지 부라리는 건 섭섭하기 그지없다. 일이란 것이 재촉한다고 해서 잘되고 느슨하다고 엉망이 돼버리진 않는다. 길어봤자 1년, 짧으면 1개월 인연 아닌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는 게 노동판이다. 안보며 살 수도 있으니 화내지 말고 조금만 참아주길 바라는 것 욕심일까.
가까운 사람과 절연한 이유도 불같은 성정 때문이었다. 그는 툭하면 버럭 했고 핏대를 세웠다. 칭찬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고 비난과 원망, 남 탓만 했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늘어놓고 히스테리를 부리면 분노조절 장애를 앓는 것 같았다. 자기 잘못은 없고 자기반성도 없으며 자기애만 강했다. 왜 화를 내는지, 화를 낼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 많았다.
그의 주변엔 사람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고립무원이다. 처음엔 호의적이다가도 본모습을 들키고 나면 하나둘 떠났다. 그나마 이해타산에 얽힌 자들만이 서성거릴 뿐이었다. 화낼 때는 화낼 충분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분노는 감정의 완급 실패다. 노회한 삶은 우회할 수 없다. 일단 직진하다 보니 사람들과 부딪친다. 일단 내지르다 보니 적만 생긴다. 겸손하게 살아도 행복할까 말까 인데 총질을 해대니 잠잠할 리 없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그 기운이 삼투압처럼 번진다. 괜히 우울해지고 기분이 나빠진다. 악한 영향력이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보여주는 거울

▲퇴근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있는 게이트 앞의 근로자들
나재필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이 보고한 정신건강조사에 따르면 54.9%가 울분 고통이 지속되는 장기적 울분 상태라고 한다. 지난해 6월 조사 때보다 5.7%포인트 높아진 수치다(케이스탯리서치 4월 15~21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남녀 1500명 대상). 또 10명 중 7명은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답했다. 입법·사법·행정부의 비리나 잘못 은폐,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 등을 이유로 꼽았다. 공정에 대한 믿음이 낮을수록 울분 정도가 높았다. 울분은 정의, 공정함 등 기본적인 믿음이 예상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국가의 파행은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긴다. 무형의 직격탄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도 울분을 강화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국가가 국민을 치유하지 못할망정 화병을 안기는 게 정상인가. 요즘 같은 이상한 시국엔 담벼락에라도 대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싶어진다. 반장 선거 같은 대통령 선거 등등 세상 돌아가는 꼴도 이상하고,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어야 절망을 뛰어넘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으니 세상의 분노가 내 몸속으로 투영된다.
최근 몇 년 사이 화를 내본 기억이 없다. 아주 선한 인간도 아니건만 남에게 분노를 드러낸 적이 없다. 분하고 억울해도 그냥 참는다. 진짜로 화가 나면 이를 앙 깨물고 견딘다. 착하지도 않은데 착한 척하는 건 아닌지 자조할 때마저 있다. 본디 참을성이 많고 다투는 걸 싫어하는 성격 탓이 크다. 참는 게 능사는 아닐 텐데 가끔은 화를 내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한다. 세상에 화 안 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화내는 모습을 보기 싫다. 어쩌면 화내는 자들이 주변에 득실하니 화내는 법을 잊은 건지도 모른다. 그들의 분노가 나의 분노를 억누르는 기제가 된 것이다.
노동자로 살면서 죽자 살자 돈을 버는데 돈은 모이지 않고 이자만 늘고 주름만 는다. 언제까지 뼈와 살을 팔아 희망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할까. 다만, 분노하지 않는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 일보다 사람이 무서워서야 되겠는가. 요즘은 폭언이나 성추행을 하면 곧바로 퇴출되는 시스템이지만 음성적으로 그런 일이 없진 않다.
결국은 일터가 삶터다. 웃으며 일할 수 있는 터전이 필요하다. 화를 내는 사람은 자신의 화 때문에 불행을 자초한다. 최소한 웃지는 못해도 남의 웃음까지 빼앗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 누군가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이다. 또 누군가의 딸이고 어머니이고, 아내이기도 하다. 무시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언어공동체의 수준이나 문화적인 성숙도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게다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고 했다. 화병은 생각의 굴절에서 비롯된다. 왜곡된 기억,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 우리는 하나의 소중한 존재다. 고로 사랑받아야 하고, 동시에 미움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분노하지 않는 세상, 화내지 않는 사람이 그립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시민미디어마당 협동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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