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26 06:50최종 업데이트 25.05.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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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3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 경의선숲길공원에서 '미국 올랜도 성소수자(LGBT)클럽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가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회원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권우성
지금은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활동가로 일하지만 나 또한 보다 일반적인 직장을 다녔던 시절이 있다. 그 회사는 당시 붐처럼 생기던 스타트업 기업이었고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를 운영했다. 대다수의 직원들이 비교적 젊은 층에 속했고 내 또래였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의 분위기는 꽤나 자유분방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회사는 회사이기에 직급이 있는 사람과의 위계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다른 사무실과 비교가 될 정도조차 안 됐다. 그리고 그들은 소수였고 대부분의 직원은 직급이 없이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늘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지만 서로 눈치를 보거나 딱히 거리낄 게 없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사무실에서 말하지 못한 게 있었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이다.


말해야 할 이유는 특별히 없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많았다. 우선 커밍아웃을 했을 때 실제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예상할 수 없었다. 동료들이 딱히 성소수자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유명한 태도가 있지 않나. 그렇게 살아가는 건 자유지만 자기 옆에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실제로 여론조사를 하면 성소수자의 존재를 긍정하는 비율과 이웃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비율이 꽤 차이가 나곤 한다. 이웃을 친구나 가족으로 바꾸면 괜찮다는 비율은 더 떨어진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회사에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생기는 건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나를 피하거나 따돌리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심지어 표면적으로는 다른 명분을 들이대면서.

커밍아웃을 안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말하지 않으면 해결되는가. 딱히 그렇지도 않다.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성소수자가 일상을 함께 살아가리라는 상상을 잘하지 못한다. 학교 교육부터 법과 제도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힘껏 모른척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상대방을 시스젠더(태어났을 때 사회가 지정한 '지정성별'과 실제 자신이 감각하는 '성별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이 두 가지가 불일치하는 사람이 바로 '트랜스젠더'이다)이자 이성애자라 전제한다. 나는 남성이자 동성애자이지만 끊임없이 '여자친구'는 있는지 결혼할 생각은 있는지 질문받았다. 나는 남자를 좋아하고 한국은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아 혼인신고조차 수리가 되지 않는데 말이다.

가장 최악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혐오 발언을 하거나 혹은 미묘하게 차별적인 언행을 하는 경우였다. 당시 우리 사무실에는 독실한 종교인이던 성소수자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언젠가 서비스 메인 화면에 성소수자와 관련된 콘텐츠를 걸었을 때, 그는 이런 걸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게 괜찮지 않다고 내게 직접 말했다. 내가 그 '이런 걸'임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인종이나 계급, 출신 지역을 놓고도 그는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은 차별하지 않는 사람들도 내 앞에서 '누구는 게이처럼 생겨서 싫다'는 말을 했다. 나 같은 사람처럼 생겼다는 게 뭐였을까. 또래 남자 집단에서 흔히 하는, 동성애자를 성적 약탈자로 묘사하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허황된 이미지로 쉽게 웃음거리가 되어도 되는 존재인지 씁쓸했다.

결국 남는 건 마음의 상처

정체성에 대해 말을 해도 하지 않아도 문제다. 전자의 경우 누군가가 나를 불편해하거나 미워하진 않을지 걱정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끊임없는 거짓말과 인내의 연속이다. 이성에게 관심이 없어도 있는 척하거나 더 이상 질문 받기가 싫어서 없는 여자 친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정교하지 않은 거짓말은 금방 탄로가 난다. 남들에겐 평범하게 일상을 나누는 대화가 내게는 머리 아픈 이야기 꾸미기가 된다.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대놓고 멸시할 때, 오히려 당사자라서 더욱 강하게 반발하지 못하게 된다. 혹시 성소수자라서 저렇게 화를 내는 걸까 의심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소수자가 아닌 비당사자들이 일상에서 혐오와 싸울 때는 더욱 자유로운 면이 있다.

지난 3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와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퀴어동네에서 성소수자 노동자의 노동 실태와 정신 건강에 대한 조사를 발표했다. 이를 취재한 언론에서 '성소수자 노동자 4명 중 1명이 우울 증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놀랍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이 나만의 것이겠는가. 말을 했지만 조직에 포용 되지 못해서 혹은 말을 하고 싶지만 끊임없이 참아야만 해서, 그래서 마음에 병이 드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일터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한 이후 이전 회사에서 겪었던 스트레스는 사라졌다(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이전 회사에서도 커밍아웃을 하긴 했고 사람들의 환대 속에서 안전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의 나와 같이 사무실에서 숨죽이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곤 한다.

노동 약자 모르는 고용노동부 장관, 대통령 되면 잘하겠나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1일 경기도 고양시 MBN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공동취재사진

성소수자로서 나의 회사 생활이 어땠는지 글을 길게 쓴 이유가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는 지난 20일 방송 연설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과거(2017년 3월 8일)에 공공기관, 금융기관에 성소수자가 30%를 넘기도록 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연설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에 특혜를 준다면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발언했다.

그런데 이 후보 측이 당시 성소수자 30%는 "남성에 비해 임금 차별을 받고 있는 여성을 잘못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음에도 그 부분을 생략했다. 김문수 후보의 주장대로 '공공기관, 금융기관에 성소수자가 30% 넘게 채용'되는 소위 '특혜'를 주는 것도 지금 한국 사회에선 불가능한 일이다(당연하지만 일단 차별금지법이 그런 걸 목표로 하는 법도 아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일단 그만한 규모의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나의 경험을 통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성소수자들이 노동에 있어서 약자에 속한다는 점이다. 일터에서 자신을 숨기거나 혹은 드러내도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자신의 존재가 공격당해도 제대로 방어할 수조차 없다. 그 결과가 '성소수자 노동자 4명 중 1명이 우울 증상'이라는 결과다. 마음 놓고 일에만 집중하기가 어려운 형편인데 인사와 고과에 있어서 과연 평등한 상황에 놓여있다 볼 수 있을까. 먹고 사는 문제를 평등하게 해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나.

그리고 이 국면에서 가장 큰 문제는 김문수 후보가 고용노동부 장관이었다는 점이다. 즉 그는 고용과 노동의 전문가여야 한다. 노동 현장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누가 약자인지를 인지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이었어야 한다. 그러나 김 후보는 차별금지법을 놓고, 특히 노동과 관련하여 저런 말을 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결국 이런 질문만 남게 된다. 장관으로서 무능했던 사람이 대통령으로선 유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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