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9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한국기독교학교정상화추진위원회-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 교육정책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기독교 극우세력에 SOS 신호를 보냈다. 그런 그를 불교계가 성토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사학법인 미션네트워크 정책협약식에 참석한 그는 "저는 기독교가 깜깜한 조선 말기부터 우리나라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해오신 것을 배재학당 이승만 대통령의 전기와 그 각성의 과정을 보면서 깊이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라고 한 뒤 이렇게 이어갔다.
"3·1운동 33인의 대표 중에서 열여섯 명이 기독교 관계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의 전 과정과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도 우리가 지정학적 위치로 봐서는 마땅히 공산화가 되어야 할 대륙의 끄트머리에 있습니다만, 공산대륙의 이 끄트머리에서 자유의 대한민국을 세우게 된 것은 바로 이승만 대통령과 기독교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운동과 정부수립 과정에서 이승만과 기독교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평가한 그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대한민국 만세"라고 한 뒤 "지금 이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세계가 모두 '불가능하다',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기적적으로 해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현대사를 이렇게 기적의 역사로 평한 뒤 이런 말을 했다.
"저 또한 모든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고), 저 자신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지금 이렇게 대통령 후보로서 '이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라', '국민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라' 하는 사명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김문수 후보의 발언에 대해 조계종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는 위원장인 선광 스님 명의의 22일자 입장문을 통해 비판적 시각을 표시했다. 위원회는 "기독교만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발전에 기여한 종교처럼 말했다", "대통령 후보가 기독교 편향적으로 국가를 규정하고 자신을 '신의 사명'으로 포장하는 것은 지극히 종교 편향이며 국민 분열과 갈등의 불씨를 키우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회는 "국민의힘은 김 후보의 발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정교분리원칙을 철저히 지킬 것을 공식적으로 약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향문 스님 명의의 입장문을 낸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김 후보가 특정 종교에 치우친 소신을 자명하게 드러내며 종교 편향적인 발언을 거리낌 없이" 했다며 후보의 사과를 요구했다. 태고종 전국종무원장협의회는 22일자 성명을 통해 "김 후보의 발언은 민주주의국가의 지도자가 가져야 할 균형감각과 공공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며, 불교를 포함한 다수 종교의 역사적 기여와 국민적 신앙의 다양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종교편향적 망언"이라고 지적했다.
기독교의 역할이 더욱 부각된 것은 해방 이후
서양 제국주의 국가 출신의 초창기 선교사들은 일본제국주의의 한국 침략을 대체로 지지한 반면, 한국인 신도들은 민족대표 33인의 구성에서도 나타나듯이 제국주의를 막기 위한 항일투쟁에 대거 참여했다. 여타 종교들의 독립운동도 대단했다. 민족대표 15인을 배출한 천도교와 2인을 배출한 불교는 물론이고 대종교·유교·가톨릭 등의 항일운동도 일본제국주의에 타격을 줬다.
김문수 후보는 19일 행사에 기독교 신도 자격으로 참여한 게 아니라 대선후보 자격으로 참여했다. 기독교의 항일투쟁뿐 아니라 여타 종교들의 헌신도 함께 부각시키는 것이 대선후보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김문수 후보는 항일투쟁기와 해방 이후의 두 시기를 언급했다. 두 시기에 이승만과 더불어 기독교가 큰 역할을 했기에 대한민국이 자유국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그가 언급한 두 시기 중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더욱 부각된 것은 해방 이후다. 일제 강점기 때는 기독교와 여타 종교가 함께 부각된 반면, 해방 이후에는 기독교가 단연 압도적으로 부각됐다. 이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인적 구성으로도 증명된다.
해방 2개월이 조금 못 되는 1945년 10월 5일, 미군정 고문위원회가 구성됐다. 중도 성향인 여운형과 보수 성향인 조만식·송진우·김성수를 비롯해 한국인 11명이 이에 포함됐다. 이 중에서 조만식·김동원·윤기익·이용설·전용순 5인은 기독교인이었다.
기독교인의 우세는 문교부장·재무부장 같은 미군정 행정관청 부서장들에서도 나타난다. 김영모 중앙대 명예교수의 <한국 권력지배층 연구>는 "행정부장 중에 기독교도와 한민당 출신이 가장 많다"고 말한다. 이승만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대 비서관들의 종교는 기독교가 많다", "초대 각료의 종교는 기독교가 가장 많고(23.5%), 나머지는 대부분 비신자이다"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기독교 극우세력의 과오 미화
이처럼 기독교인들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주도했지만, 이 시기 기독교에서 분출되는 정치적 에너지는 극우진영으로 응집됐다. 기독교는 대표적 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서북청년회)을 움직이는 힘이었고, 이 힘은 4·3 제주 등지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교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평화위원회는 2018년 4월 3일 발표한 '제주 4·3 70년, 아픈 역사의 정의로운 화해와 상생을 위하여'라는 성명서에서 "이 질곡의 역사 속에 교회는 분단과 냉전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면서 빛을 잃고, 일부는 신앙의 이름으로 자매·형제·부모 그리고 이웃을 총칼 앞에 서게 하였습니다"라며 "싸늘한 주검 위에 흙 한줌 뿌릴 시간마저 빼앗긴 수난의 역사 앞에서 교회는 침묵하였습니다"라고 참회했다.
이승만은 5·10총선 3주 뒤인 1948년 5월 31일의 국회 개원식에서 임시의장으로 선출됐다. 국회사무처가 작성한 <국회 속기록 제1회 제1호>에 따르면, 연단에 올라선 이승만의 첫마디는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였다. 그런 뒤 그는 평양 남산현교회 목사 출신인 이윤영 국회의원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기독교는 분단과 냉전을 조장하고 민간인 학살을 방조하는 등의 방법으로 해방공간의 권력을 쥐었고, 이를 배경으로 이 같은 종교 편향적 장면이 국회 개원식에서 연출될 수 있었다.
김문수 후보의 19일 발언은 기독교 편향적인 측면을 띠었다. 지나치게 기독교 위주로 한국 근현대사를 해석했다. 그래서 불교계가 성토에 나섰다.
그의 발언은 역사 왜곡적인 측면도 함께 띠었다. 기독교 극우세력이 분단과 냉전을 조장할 목적으로 해방공간에서 벌인 악행을 신의 섭리로 포장했다. 이 부분은 일반 기독교인보다는 전광훈 같은 극우세력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 극우세력의 과오를 미화하는 이 부분은 김문수 캠프의 수준 낮은 선거 전략을 보여준다. 극우세력을 자극하고 이들의 결집을 촉구하기 위한 구조 요청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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