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23 17:48최종 업데이트 25.05.2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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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무소속 대선후보가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권우성

"우리가 좌파를, 민주당을, 이재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부정선거로 돌파하는 것.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어요. 시간이 없으니까."

지난 21일 부정선거 음모론을 다룬 다큐멘터리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함께 보고 나온 무소속 황교안 대선 후보의 소감은 선뜻 그 뜻을 알아듣기 힘들다. 이 발언에서 "우리"가 자신의 선거 캠프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국민의힘을 포함하는 반이재명 진영을 염두에 둔 것인지 분명치 않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를 이길 방법이 "부정선거로 돌파하는 것"이라는 표현도 그렇다. 부정선거 의혹을 만들어 판세를 뒤집자는 것인지, 6.3 대선을 부정선거로 일찌감치 규정해 놓겠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의도라도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사고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선거운동이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까지 어느 진영에서도 심각한 불법 탈법 선거로 선거판을 뒤흔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치러지지도 않은 선거를 아예 부정선거로 단정한다면 이는 내란에 버금가는 국기 문란 행위다. 있지도 않은 부정선거 의혹을 생산해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은 민주당과 싸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87년 이후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키워 온 국가의 선거 시스템을 파괴하겠다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대선 후보로 나섰다. 이해할 수 없는 모순적 상황이다. '내가 당선되지 않는 선거는 인정할 수 없는 부정선거'라는 확증편향이라는 표현이 맞아 보인다.

광장 세력 끌어안기 위한 포석인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 받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한 뒤 나오고 있다.권우성

"6월 3일 부정선거 확신한다!"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 포스터에 선명하게 걸린 글귀다. 영화에 나올 수 있는 수사적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일어나지도 않는 6월 3일의 일을 먼저 "부정선거 확신한다"니. 이 건 확신이 아니라 대선이나 개표 과정에서 부정선거라 일어날 것이라는 예단일 뿐이다.

포스터의 문구는 근거가 있는 확신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맹신이다. 설혹 다큐의 일정 부분에 사실적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미래의 대선을 부정선거로 확신한다는 건 성립될 수 없는 논리적 오류다.

윤석열이 이 다큐를 관람했다. "윤 어게인"이 새겨진 옷을 입은 지지자들은 "부정선거"가 찍힌 풍선을 들고 12.3 계엄을 선포하는 장면에서 환호와 박수가 보냈다. 극장 안에서 내란범 윤석열은 여전히 대통령이었다. 헌법과 국민의 의식 속에서 폐기 처분된 부정선거와 12.3 내란이 여기에서만큼은 여전히 '계몽령'으로 살아 꿈틀거렸다. 6월 3일 선거가 끝난 후 생겨날 대선 불복의 위험한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기우일까?

"영화도 많이 보시고 사람도 많이 만나시는 게 좋은 것 아닌가?"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윤석열의 다큐 관람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의 선거관리위원회가 일부 불신을 받는 점도 있고 다툼도 있다"며 "전반적으로 선관위가 더 공정하게 잘할 수 있도록 제가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김문수 후보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과 손잡으면 안 된다"는 한동훈 전 대표, "본인 때문에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 반성은커녕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한심하다"고 직격한 조경태 의원, "제발 윤석열, 다시 구속해달라"는 김근식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의 비판과 큰 거리를 둔 모양새다.

윤석열의 다큐 관람이 국민의힘에 도움 될 게 없음은 분명해 보이지만 정작 심각한 건 따로 있다. 내란을 일으켜 재판 중인 전 대통령이 다가올 선거마저 부정하는 음모론 다큐를 관람하는 걸 대선 후보가 '영화 보고 사람 많이 만나면 좋지 않냐'는 말로 눙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광장 세력을 끌어안기 위한 포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선거 시스템을 여전히 믿지 못하나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현장 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공동취재사진

김문수 후보는 지난 21대 총선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전력이 있다. 2020년 4월 29일 국회에서 기독자유통일당과 함께 기자회견을 연 그는 선거 투표함 등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을 냈다고 밝혔다. 같은 해 5월 11일에는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민경욱 전 의원이 개최한 '4·15총선 의혹 진상규명과 국민주권회복 대회'에 참석해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선관위 서버와 관련 증거를 즉시 압수수색 해서 수사에 착수할 것을 촉구"했다.

부정선거 의혹은 2022년 7월 대법원에서 기각되었으나 선거 시스템을 부정하며 거리로 나섰던 누구 하나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부정선거 의혹이 있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선관위 서버 압수를 주문했던 김문수 후보와 몇 년 뒤 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한다며 선관위 침탈을 지시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인과관계로 바로 연결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부정선거 확신한다"는 주장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이유로는 충분해 보인다.

"피청구인은 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하여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하였다고도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 중대한 위기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중앙선관위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전에 보안 취약점에 대하여 대부분 조치하였다고 발표하였으며, 사전·우편투표함 보관 장소 CCTV 영상을 24시간 공개하고 개표 과정에 수검표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도 피청구인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대통령 윤석열 파면 당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부정선거 음모론이 계엄선포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김문수 후보는 여전히 "선거관리위원회가 일부 불신을 받는 점도 있고 다툼도 있다"고 한다. 국민이 불안해하는 지점이 여기다. 국가 선거 시스템 의심이 선거 이후 대선 불복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지, 내란과 탄핵 과정에서 있었던 혼란이 선거 이후 재현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새 정부의 경제회복 바람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 말이다.

본인이 승리했던 대통령 선거에서 왜 근소한 차이밖에 나지 않았느냐며 부정 선거론을 주장했던 윤석열이다. 김문수 후보의 대답을 듣고 싶다. 자신과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정권 재창출은 어떤 정권을 다시 세우겠다는 것인가? 헌법재판소에서 문제없다고 한 선거 시스템이 여전히 의심스러운가? 선거 시스템은 믿지 못하겠고 그래도 대통령은 되겠다는 모순에 대해 국민에게 합당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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