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활동명)이 윤석열 퇴진 광장에 들고 나갔던 깃발과 집회 굿즈들.
이슬기
솔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동덕여대 집회에 다섯 차례 참가했다. 그에게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은 '페미니스트로서 당연히' 연대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혹여 트랜스젠더로 조명을 받게 되면 투쟁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참가가 저어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 공식적으로 외부인 참여가 가능하다고 알려진 12월 27일의 혜화역 집회에 처음 나갔다. 발목을 절뚝이면서도 갈 만큼 절박한 심정이었지만, 트랜스 배제적 입장인 '랟펨'(래디컬 페미니스트)의 존재를 상기하며 혹여나 성 정체성이 드러날까 두려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의 집회 이후로, 솔은 어떤 '가능성'을 봤다.
"집에 와서 저 말고도 다른 트랜스 분들도 참여를 많이 하셨다는 내용들을 봤어요. 어떤 분은 트랜스 상징을 가지고 참여를 하셨는데도, 공격을 받거나 적대적인 건 느끼지 못했다는 후기를 남기셨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저도 '공격받지 않고 참여를 할 수 있겠다'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아무튼 여성 사회 안에서는 크게는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동료 여성주의자로도 볼 수 있는 거잖아요. 충돌하는 부분에선 충돌을 하더라도, 좀 '흐린눈' 하면서 느슨하게 같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여러 번 참가한 후로는, 국회 앞을 꼬박 지키던 때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덧 동덕여대 투쟁 당사자들이 아는 얼굴이 되어버려서, 외면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참여를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까, 주최 측도 알게 되고 학생들도 알게 되잖아요. 동덕여대 집회에서도 그렇고, 다른 현장에서도 만나 개인적으로 얘기를 나누게도 되고요. 그러다 보니 시위 당사자들이 개인적인 관계로 들어오게 되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되어 버리니까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참가를 해야 겠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자주 나가다 보니 내 일도 아닌데 내 일처럼 느끼게 되더라고요."
"남성이라는 성별과 스스로를 동치시킬 수 없다는 감각"
탄핵 광장에서는 스스로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 소개하는 퀴어들이 많았다. 논바이너리는 여성·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서 벗어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반면 솔은 'X'에 "나는 어쩌다 바이너리 트랜스가 됐지?"로 시작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가 가진 성 정체성에 관한 의문은, 남성이라는 성별과 불화하는 감각에서부터 왔다.
"설명하는 게 항상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도 명확하지 않은데, 저 같은 경우는 남성 집단, 남성이라는 성별과 저를 동치시킬 수 없는 감각을 갖게 돼버렸어요. 어릴 때 남성으로서 기능할 것을 기대받고 그렇게 양육을 받았지만, 자라면서 지속적으로 남성으로 호명되거나 남성으로 집단화되고 분류되는 것들이 맞지 않는다는 기분을 느꼈거든요. 그런 위화감이랑 이질감이 제일 컸어요."
성 정체성과 관련된 위화감이란 그가 일상에서 연속적으로 겪는 일이었다. 남성 호모 소셜(Homo social·동성 사회성)이 향유하는 문화나, 사고방식에 대한 이질감 같은 것들이다. "예를 들자면 여성들을 성애적이고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거나, 그들을 손쉽게 물화해서 바라보는 것, 젠더 간 위계나 성 역할 등을 손쉽게 분류하고 그걸 진리인 것처럼 따르는 분위기 같은 것"이라고 그는 부연했다.
오랜 고민 끝 그는 고등학생 때 안드로진(성별 이분법을 거부하는 행동 양식인 젠더퀴어 중 흔히 '중성'으로 불리는 성별 정체성)으로 정체화를 했다.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3년 전부터의 일이다.
"처음에 사실 여성으로 정체화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먼저 안드로진으로 정체화를 했고, 호르몬 치료를 MTF가 아니라 젠더퀴어로서 진행을 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사회적으로 여성으로 읽히는 삶을 살게 되고,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시간이 쌓였어요. 예전에 남성으로서 여겨지고, 남성으로 사회생활을 했던 게 너무 오래전 일이 돼버린 거죠. 그때쯤 스스로를 걸플럭스(girlflux·대체로 여성이라고 느끼지만 때에 따라 강도가 바뀜)로 정체화했고, 그 뒤로는 젠더에 대해 고민하거나 특별한 의식을 갖지 않고 살았어요. 나중 가서는 그냥 '나는 여성으로 읽히는 몸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스스로를 여성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네, 그러면 바이너리 트랜스 여성인건가 보다' 라고 여기게 됐어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정치를 꿈꾼다
내란 국면의 광장에서 2030 여성이 광장에 주축이 된 것은 그들이 사회적 약자이자, 계엄의 가장 직접적인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솔은 말한다.
"계엄 당일 제가 느꼈던 것처럼, 사회에서 여성들이 약자잖아요. 계엄은 자신의 강함을 근거로 해서 '방해되는 집단을 조직적으로 청소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인 거고요. 그래서 계엄이 일어난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진 집단이 여성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세대의 여성들은 교육을 받기로는 '평등하다'는 얘길 들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걸 느꼈고 거기에 순응하지 않기로 한 세대들이잖아요. 계엄도 그것의 연장선으로 보고, 거기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겠다는 게 체화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들이 광장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맥락 또한 이와 비슷하다. 그들이 스스로를 적극 가시화할 수 있었던 것은 광장의 포용적인 분위기 때문일 것이라고 솔은 짐작한다.
"퀴어라는 집단이, 결국 계엄의 칼끝이 향할 것이 분명한 집단 중 하나니까 '저항을 하든가, 유린을 당하든가'라는 선택지 안에서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수적으로 적지 않았을 것이고요. '알아두겠다'거나 '괜찮다, 문제 없다'라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어서, '이 자리는 (퀴어임을) 밝혀도 괜찮은 공간이구나' 라는 감각을 많이 느꼈을 거예요. 그런 것들이 다 같이 기능을 해서 발언할 수 있는 토양을 형성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바라는 파면 이후의 정치란,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환경을 만드는 정치'다.
"가장 근본적으로 돼야 하는 게,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여성혐오라는 것도 여성을 동료 시민이 아니고 감정적이고 이성이 결여된, 뭣 모르는 이등 시민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고요. 성소수자도 '이상한 사람들' '변태들' 이런 식으로 보는 거죠. 서로를 사람으로 바라본다면 충분히 서로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타협안을 내놓는 식으로 한 발씩 발전을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서로의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는 게 제일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하고요. 정치가 이게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고 봐요."
▲지난 3월 17일 광화문 앞 집회에 참여한 솔(활동명).
김남희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