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23 15:41최종 업데이트 25.05.2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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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최고기온이 25도 가까이 올라간 27일 녹음이 짙은 강원 강릉시 경포저류지 일원에서 달리기 동호회원들이 운동하고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거리를 줄지어 달리는 무리가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셋 정도의 소규모 무리가 또 지나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림새가 범상치 않다. 대체로 그들은 깃털처럼 가벼운 옷차림에 역동적인 디자인의 신발을 신었다. 중간중간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한다. 어느 순간에 익숙해진 도심지 풍경이다.

달리기 전성시대다. 요즘 말로는 러닝이라고도 하는데 '달리기'라는 우리 말이 더 좋다. 어감이 더 역동적이지 않은가. 10년 전에 풀마라톤 42.195km를 뛰어본 적이 있다. 그때도 많은 취미 마라토너가 있었지만 젊은 층 인구는 많지 않았다. 요즘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국내 3대 마라톤으로 알려진 동아국제마라톤, 춘천마라톤, JTBC마라톤은 접수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한다.


42.195km 완주 당시, 기록은 4시간 48분. '마라톤을 한번 완주했다'는 훈장을 몸에 새겼다. 이게 뭐라고 어깨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동시에 절뚝거리는 고장 난 다리도 함께 얻었다. 아직도 그 고통의 기억이 선명하다.

마지막 후반부 5km였나. 거의 발을 질질 끌면서 좀비처럼 결승선에 도착했다. 어리석다고? 그 정도 몸 상태면 포기하는 게 낫지 않냐고? 한번 도전해 보시라. 구르기를 해서라도 통과해야겠다는 심정이 든다. 30km 넘게 뛰었는데 5km를 두고 포기한다면 평생 후회로 남을 테니 말이다.

내 삶에 달리기가 침투했다

허세로만 가득했던 마라톤 완주였으니 달리기의 진면목을 알아갈 새가 없었다. 달리기는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은 과일과도 같았다. 그러던 내 삶에 자연스럽게 달리기가 침투했다.

바야흐로 지난 2월 23일, 생활복싱대회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생활복싱대회 패배의 원인을 스스로 진단해 본 결과 기술적 실력 부족도 있었겠지만 체력적 부족도 있었다. 기술의 부족은 채우기 쉽지 않지만 체력적 부족은 시간만 들이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복싱 체력을 늘리는 대표적인 훈련이 달리기다.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가는 달리기의 구조와 지면을 강하게 차면서 체중을 실어 주먹을 뻗는 복싱의 구조가 닮아있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몸 전체를 사용하는데, 특히 하체 근육은 물론이고 코어 근육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움직이면서 주먹을 내는 복싱 동작을 하기 위해서 하체와 코어 근육은 필수다.

복싱은 원초적인 싸움과 닮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곤 한다. 지구력보다는 순간적인 파괴력이 더 필요하다고. 그러나 이는 반만 맞다. 복싱은 강한 근력도 필요하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발을 움직이면서 주먹을 연속적으로 뻗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지구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밤이 아닌 아침에 달리는 이유

아침 달리기를 하는 산책로이현우

세계적인 복싱선수 마이클 타이슨과 세 체급을 석권한 세계 챔피언 바실 로마첸코는 저녁이 아니라 아침에 달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그들은 아침에 달렸을까.

아침에 달리면 몸이 이완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운동선수들은 하루에 여러 차례 운동을 하는데 주로 아침에는 가벼운 달리기 후에 회복 시간을 가진 다음 오후와 저녁에는 강도 높은 중량 운동이나 기술 훈련을 한다고 한다. 경험상으로도 저녁에 복싱과 달리기를 이어서 하는 날과 아침 달리기, 저녁 복싱으로 나누어서 훈련하는 날을 비교해 보면, 같은 시간이어도 후자가 피로도가 덜 했다.

해가 짧아진 탓일까. 신기하게도 이른 아침 눈이 떠졌다. 아침잠이 많아서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자라왔던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체육관 형들은 노화의 신호란다.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지만, 내 아침잠을 깨운 건 패배의 아픔 아니었을까.

챔피언을 꿈꾸는 자는 챔피언처럼 훈련해야 한다. 세계챔피언을 꿈꾸는 건 아니지만 생활복싱챔피언을 꿈꾸는 자로서 조금이라도 흉내 내보기로 했다. 어느덧 3월에는 약 40km, 4월에는 약 30km를 달렸다. 달리기가 취미라고 하기엔 짧은 거리지만 적금을 붓듯 꾸준히 달려봐야겠다.

올해는 생활체육보다 수준이 좀 더 높은 신인선수권대회에 도전하는 게 목표다. 엄연히 아마추어선수로 등록하고 시합을 뛰게 될 것이다. 전적이 남는 진짜 복싱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왕이면 승리하는 복싱선수가 좋겠지만 패배하더라도 과정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과거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나를 탓하고 후회하는 것만큼 더 부끄러운 패배는 없을 테니까.

아침 달리기를 하며 본 새로운 풍경

아침 달리기를 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장점을 발견했다. 아침에는 저녁과는 다른 풍경을 관찰할 수 있다. 목적지가 있는 출근길과는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일까. 똑같은 길을 걸어도 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달라진다. 매번 지나는 아파트 정원에 핀 꽃도 자세히 보게 된다.

천변에서 볼 수 있는 오리 가족이현우

아파트 숲을 지나 횡단보도를 몇 번 건너면 천변에 다다른다. 그곳부터는 출근길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펼쳐진다. 여유만만 오리, 백로, 왜가리도 보인다.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저녁 시간과는 빛도 다르다. 어두운 저녁에는 인공적인 조명에 의지해 달리지만 아침에는 햇볕을 맞으며 달린다. 밤이슬을 맞으며 달리는 즐거움도 분명 있지만 햇볕 아래 달리는 즐거움이 더 크다. 게다가 아침에 쬐는 햇볕은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달리다 보면 공기도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상쾌한 공기가 내 몸 구석구석을 충분히 적신다. 영양제가 따로 없다. 치열한 삶의 전쟁터로 나가기 전 충전을 한달까.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몸에서 비롯된다. 상쾌한 공기 때문인지, 활성화된 신체 상태 때문인지 아침 업무 시간도 달라진다. 아침 달리기를 한 날은 집중력도 높아지고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깨어있게 된다.

나만의 달리기 코스를 만들어보자

같은 시간에 같은 코스를 달리는 게 지루해질 수도 있다. 이럴 땐 코스를 바꿔보자. 마치 레이싱 게임처럼 말이다. 꼭 육상트랙이나 산책로처럼 걷거나 달리기 좋은 곳이 아니더라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가끔 급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섞인 언덕 코스를 달리곤 한다. 속도가 잘 나진 않지만 평지를 달릴 때와는 다른 자극이 신체에 전해진다. 코스 중간에 무인과자점에 들러 비건 과자를 사 오는 건 덤이다. 한 손에 과자를 쥐고 달리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

코스에 산이 섞이면 난도가 올라간다. 돌멩이를 비롯해 바닥에 있는 장애물을 잘 피해 가며 달려야 한다. 꼭 높은 산일 필요는 없다. 우리 집은 뒤편에 작은 산이 하나 있는데 한 바퀴 도는데 10분이면 된다. 숲에서 달리다 보면 도시에 조성된 길을 달릴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는다. 뭐랄까, 자연인이 된 느낌이랄까.

혼자 달리던 사람은 여러 사람과 함께, 늘 함께 달리던 사람은 혼자서 달려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평소엔 혼자 달리지만 지난 3월 독서모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달리기를 함께한 적이 있다. 경복궁을 세 바퀴 도는 코스였다. 코스가 새로워서 즐겁기도 했지만 함께 달리면서 서로 힘이 되어주는 유대감이 새로웠다. 물론 달리기보다 달린 이후에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가 훨씬 더 재밌었다. 아마도 달리기 모임이 인기 있는 이유가 달리기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달리기 빌런이 되지 않기 위한 필수 에티켓

봄바람이 따뜻해지면서 퇴근 후 달리기하고 산보하는 인파가 급격히 늘었다. 그나마 아침은 저녁에 비해 덜 붐빈다. 대다수 달리기 모임(러닝 크루)은 저녁에 운영된다. 요즘 같은 날이면 달리는 사람, 걷는 사람에 산책 나온 강아지까지 산책로에 모여든다.

언젠가부터 달리는 사람이 거리의 '빌런'이 되기도 한다. 고함을 치거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달리면서 이런 무리를 직접 보진 못했다. 하지만 무리를 지어 달리는 모임은 자주 봤다. 무리를 지어 달리게 되면 산책로나 인도의 일부를 차지하게 되고 다른 이들이 추월하기 어려워진다.

더욱 큰 문제는 일렬로 달리지 않아서 넓지 않은 장소에서는 반대편에서 오는 이들과 충돌할 위험도 있다. 여러 명이 무리 지어 달리는 즐거움이 있다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산책하는 보행자에게 피해가 돼서는 안 된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공장소 아닌가. 일부 지자체에서는 달리기 인파가 몰리는 장소에 일렬로 달리기, 5인 미만 규모로 달리기와 같은 안내를 적어 놓은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필자도 천변을 달리다가 '일렬로 달리는 문화'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특별히 어려울 게 없다. 일렬로 달리고 5인 미만으로 달린다면 크게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천천히 산보를 걷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잡고 대화를 나누면서 걷는 가족과 연인, 나처럼 체력을 위해 달리는 이, 바깥바람 쐬러 나온 강아지까지. 모두 안전하고 즐거운 산책 그리고 달리기 문화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brunch.co.kr/@rulerstic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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