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에서 볼 수 있는 오리 가족
이현우
아파트 숲을 지나 횡단보도를 몇 번 건너면 천변에 다다른다. 그곳부터는 출근길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펼쳐진다. 여유만만 오리, 백로, 왜가리도 보인다.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저녁 시간과는 빛도 다르다. 어두운 저녁에는 인공적인 조명에 의지해 달리지만 아침에는 햇볕을 맞으며 달린다. 밤이슬을 맞으며 달리는 즐거움도 분명 있지만 햇볕 아래 달리는 즐거움이 더 크다. 게다가 아침에 쬐는 햇볕은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달리다 보면 공기도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상쾌한 공기가 내 몸 구석구석을 충분히 적신다. 영양제가 따로 없다. 치열한 삶의 전쟁터로 나가기 전 충전을 한달까.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몸에서 비롯된다. 상쾌한 공기 때문인지, 활성화된 신체 상태 때문인지 아침 업무 시간도 달라진다. 아침 달리기를 한 날은 집중력도 높아지고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깨어있게 된다.
나만의 달리기 코스를 만들어보자
같은 시간에 같은 코스를 달리는 게 지루해질 수도 있다. 이럴 땐 코스를 바꿔보자. 마치 레이싱 게임처럼 말이다. 꼭 육상트랙이나 산책로처럼 걷거나 달리기 좋은 곳이 아니더라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가끔 급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섞인 언덕 코스를 달리곤 한다. 속도가 잘 나진 않지만 평지를 달릴 때와는 다른 자극이 신체에 전해진다. 코스 중간에 무인과자점에 들러 비건 과자를 사 오는 건 덤이다. 한 손에 과자를 쥐고 달리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
코스에 산이 섞이면 난도가 올라간다. 돌멩이를 비롯해 바닥에 있는 장애물을 잘 피해 가며 달려야 한다. 꼭 높은 산일 필요는 없다. 우리 집은 뒤편에 작은 산이 하나 있는데 한 바퀴 도는데 10분이면 된다. 숲에서 달리다 보면 도시에 조성된 길을 달릴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는다. 뭐랄까, 자연인이 된 느낌이랄까.
혼자 달리던 사람은 여러 사람과 함께, 늘 함께 달리던 사람은 혼자서 달려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평소엔 혼자 달리지만 지난 3월 독서모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달리기를 함께한 적이 있다. 경복궁을 세 바퀴 도는 코스였다. 코스가 새로워서 즐겁기도 했지만 함께 달리면서 서로 힘이 되어주는 유대감이 새로웠다. 물론 달리기보다 달린 이후에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가 훨씬 더 재밌었다. 아마도 달리기 모임이 인기 있는 이유가 달리기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달리기 빌런이 되지 않기 위한 필수 에티켓
봄바람이 따뜻해지면서 퇴근 후 달리기하고 산보하는 인파가 급격히 늘었다. 그나마 아침은 저녁에 비해 덜 붐빈다. 대다수 달리기 모임(러닝 크루)은 저녁에 운영된다. 요즘 같은 날이면 달리는 사람, 걷는 사람에 산책 나온 강아지까지 산책로에 모여든다.
언젠가부터 달리는 사람이 거리의 '빌런'이 되기도 한다. 고함을 치거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달리면서 이런 무리를 직접 보진 못했다. 하지만 무리를 지어 달리는 모임은 자주 봤다. 무리를 지어 달리게 되면 산책로나 인도의 일부를 차지하게 되고 다른 이들이 추월하기 어려워진다.
더욱 큰 문제는 일렬로 달리지 않아서 넓지 않은 장소에서는 반대편에서 오는 이들과 충돌할 위험도 있다. 여러 명이 무리 지어 달리는 즐거움이 있다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산책하는 보행자에게 피해가 돼서는 안 된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공장소 아닌가. 일부 지자체에서는 달리기 인파가 몰리는 장소에 일렬로 달리기, 5인 미만 규모로 달리기와 같은 안내를 적어 놓은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필자도 천변을 달리다가 '일렬로 달리는 문화'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특별히 어려울 게 없다. 일렬로 달리고 5인 미만으로 달린다면 크게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천천히 산보를 걷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잡고 대화를 나누면서 걷는 가족과 연인, 나처럼 체력을 위해 달리는 이, 바깥바람 쐬러 나온 강아지까지. 모두 안전하고 즐거운 산책 그리고 달리기 문화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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