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21 17:18최종 업데이트 25.05.2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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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휴게소는 세계의 자랑입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휴게소장과 우리나라에서 휴게소를 가장 많이 운영하는 회사의 본사팀장, 휴게소 납품업체 등 다양한 업무를 거치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는 네이버 카페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자의 글을 통해 아무도 말하지 않는 도로공사와 휴게소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편집자말]
도로공사가 직영으로 운영 중인 주유소에서 또 다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번엔 과잉금 횡령입니다.

도로공사는 현재 3곳의 휴게소와 8곳의 주유소를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로공사가 입찰을 통해 운영사를 정하지 않고 굳이 직영으로 휴게소와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유는 임대시설을 모니터링하고 경쟁을 통해 가격인하 및 고객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명분일 뿐 실상은 도공 직원에 의한 납품비리, 부실운영, 근태불량, 배임 등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발생한 과잉금 횡령 사건 내막은 이렇습니다.

도로공사가 운영중인 M주유소셀프주유기는 '가득 주유'를 눌렀을 때 결제오류로 인한 과잉결제 및 미환급금이 발생할 수 있다.K휴게소

도공이 직영중인 M주유소에는 셀프주유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셀프주유기는 '가득 주유'를 눌렀을 때 결제 오류에 따른 미환급금이 발생할 수 있는데, 지난 4년간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발생한 결제오류는 3만 1294건이었으며, 고객에게 돌려주지 못한 돈은 2023년에만 6천만 원이었습니다(2024년 국정감사).

도로공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유소 결제오류 방지 및 과잉금 관리강화 대책(2016. 9)'을 시행하고 2023년에는 카드사에 부분취소 기능을 도입하였으며, POS(Point of Sale)에서 결제 취소가 감지되면 즉시 비상벨을 울려 고객에게 알려주는 등 다양한 조치를 시행중입니다.


야간 시간대나 근무자 부재 중 발생한 결제오류는 차후에 카드사에 통보하여 환불하게 하고 이를 서류대장으로 관리하게 하였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일단 대장관리로는 주유소 관리자가 실제 카드사에 연락하여 환불을 조치하였는지 아니면 가짜로 작성한 문서인지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많은 소비자들은 본인의 카드 내역을 확인하지 않고 자동이체 방식으로 카드 대금을 결제합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결제오류 금액의 횡령은 생각보다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전국에 설치된 셀프주유소가 6075개 소임을 고려할 때 이 문제는 고속도로 주유소만의 문제도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2016년부터 지적된 이 문제는 왜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것일까요? 거기에는 숨겨진 이유가 있습니다.

셀프주유기 결제오류

셀프주유기에서 결제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는 카드 사용한도, 체크카드 잔액 부족과 관련이 있습니다. 보통 운전자가 '가득 주유'를 누를 경우 카드는 15만 원으로 선결제를 합니다. 그리고 실제 주유를 마치고 금액이 결정되면 그 금액으로 재결제를 하고 최초 결제된 15만 원은 취소합니다.

그런데 재결제할 때 한도가 남아있지 않으면 재결제가 안 되고, 선결제 상태로 거래가 종료됩니다. 결국 운전자는 실제로는 5만 원만 주유했더라도 15만 원의 결제 금액을 카드사에 납부하게 되고, 카드사는 주유소에 15만 원의 결제 대금을 송금하게 됩니다(과잉결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선결제 → 재결제 → 취소가 아니라 선결제 → (선결제)취소 → 재결제로 순서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미 도로공사도 결제시스템 변경 권고 공문(2016. 9)에서 이와 같은 개선안을 공지한 바 있습니다.

주유소 결제오류 방지대책(2016.9)한국도로공사는 2016년부터 주유소 결제오류를 예방하고 과잉금 관리를 강화하는 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한 바 있다.K휴게소

그런데 이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만약 재결제하기 전에 카드를 뽑아버릴 경우 결제가 안 된 상태에서 주유가 마무리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의가 아니어도 주유를 마치자마자 카드를 회수하는 운전자들로 인해 이와 같은 '0원 결제' 사례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주유소 운영사들은 환불 절차가 귀찮더라도 '0원 결제'보다는 낫기에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 도로공사도 이를 그대로 둘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것 때문이었을까요?

​좀만 생각해보면, 이 문제는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실시간 결제라 하더라도 결제 과정에서 주고 받는 데이터는 생각보다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즉, 결제 중간에 카드를 뽑든, 뽑지 않고 두든 결제 당시 데이터를 보관해 처리하면 될 일입니다. 이는 전혀 어렵지 않고 기술 개발도 이미 되어 있습니다.

해당 회사는 이미 해당 결제 로직을 상용화하였고 고속도로 주유소에서도 시범운영한 바 있습니다. 시스템은 안정적이었고 절차도 매우 간소하였습니다. 시험 결과를 지켜본 도로공사도 만족감을 표현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도로공사의 대책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2024년 11월, 한국도로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과잉금 개선 대책은 별도로 중개서버를 구축하고 주유소 포스사에 과잉금을 추출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카드사와는 자동환불하는 시스템을 연계해 도입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도로공사 국회답변 자료(2024.11)한국도로공사는 주유소 결제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중개서버를 구축하고 과잉금 자동 추출 프로그램 개발하며, 카드사와 연계한 자동환불시스템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K휴게소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사용하는 카드가 몇 종류나 될까요? 카드만 있나요? 페이는요? 지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애플페이 결제가 안 되는데, 주유소에서 얼마 되지도 않을 결제를 위해 카드사마다 연계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을까요?

기술개발 비용은요? 카드 결제 1건 당 카드사가 가져가는 수수료가 고작 10~50원 정도인데, 전체적으로 수십~수백 억 원이 소요되는 기술을 도로공사 정보시스템과 연계하기 위해 누가 개발할까요?

도로공사가 굳이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VAN수수료입니다.

VAN수수료

VAN이란 카드사를 대신해 결제에 관계된 업무를 처리하고 일정 수수료를 카드사에서 받아 운영하는 회사를 말합니다. 휴게소, 주유소에서는 POS단말기를 관리하고 영수증을 발행하며 통신망을 연결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고속도로 휴게소, 주유소는 결제건수가 워낙 많다 보니(50만 건/1일) 한 건에 10원, 20원을 받아도 돈이 됩니다. 보통 휴게소의 경우 건당 10~20원, 주유소의 경우 건당 30~40원의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이는 개인 수입으로는 꽤 큰 돈입니다. 게다가 VAN사 대리점을 차리는 건 진입 장벽이 낮은 분야로 영업력만 있다면 투자비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너도 나도 힘있는 관계자들이 VAN사 대리점을 세우고 인맥을 이용해 고속도로 휴게소, 주유소를 장악했습니다. 도로공사가 만든 자회사도 있고, 도로공사 퇴직자가 만든 회사도 있으며, 휴게소 본사에서 만든 VAN사도 있고, 휴게소와 인맥이 좋은 개인이 만든 VAN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VAN사들은 직·간접적으로 도로공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 VAN사에 도로공사 퇴직자가 근무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해당 VAN을 교체하려고 시도하면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올 것입니다. 처음엔 도로공사 퇴직자에게 오다가 나중에는 현직 도로공사 임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현직 임직원들은 모두 휴게시설 평가업무를 했거나 이에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그 상황에서 VAN사를 바꿀 수 있을까요? 단지 고객을 위해? 결제취소 민원해결을 위해? 지금 도로공사부터 국회 답변자료로 엉뚱한 해결방안을 내놓은 상황에서, 개별 주유소 운영사가 과연 혁신에 나설 수 있을까요?

특정기업만이 갖는 정보처리 기술이 문제가 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사용료만 지불하고 기존 VAN을 이용하면 됩니다. 하지만 셀프주유기 결제오류 문제가 10년째 해결되지 못한 이유는 관련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존 시스템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이들을 가리켜 도공OB, 도피아라고 부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카페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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