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19 18:54최종 업데이트 25.05.1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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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미국의 정부 부채 증가를 이유로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한 단계에 불과하지만 그 파장은 크다. 이는 1919년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사안으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졌던 미국 국채가 더 이상 절대적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차기 정부는 절체절명의 경제위기 속에서 출범한다. 트럼프발 관세 압박으로 대미 수출도 줄고 있어 내우외환의 형국이다. 여기에 미국발 금융 충격까지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더욱, 준비된 유능한 정부가 절실하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미국 부채

미국 국채시장이 위험한 갈림길에 섰다. 작은 눈덩이가 언덕을 굴러가며 커지듯, 미국의 부채도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있다.


2024년 말,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는 36조 달러, 한화로 약 5경 원에 이른다. 이는 한국 국내총생산(GDP, 약 2300조 원)의 22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2000년대 초 5조 달러에 불과하던 부채는 25년 만에 일곱 배 넘게 늘었고, GDP 대비 부채 비율도 100%를 넘겼다.

더 심각한 건, 이자 지출의 증가 속도다. 2020년 3450억 달러(480조 원)였던 연간 이자 비용은 2024년 8820억 달러(1200조 원)로 2.5배 이상 늘어났다. 올해는 처음으로 1조 달러(1400조 원)를 돌파할 전망이다. 불과 5년 만에 세 배 가까이 뛴 것이다.

이자 비용은 이제 연방정부 지출 항목 가운데 두 번째로 크다. 전체 예산의 12~14%가 이자 상환에 쓰이고 있다. 메디케어나 국방비보다 많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보다 빚 갚는 데 더 많은 돈을 쓰는 기형적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채권 발행 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 4월부터 2026년 3월까지 발행 예정인 국채는 총 11조 달러(1경 5300조 원)에 달한다. 한국 GDP의 6.7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중 9.3조(1경 3000조 원) 달러는 만기 국채의 차환용이고, 2조 달러(2800조 원)는 새롭게 빌리는 빚이다. 말 그대로 빚으로 빚을 돌려 막는 형국이다.

문제는 새로 빌리는 빚이 이전보다 훨씬 '비싼 빚'이라는 점이다. 국채의 만기 구조가 점점 더 짧아졌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재무부는 단기 국채 비중을 늘리며 이자 부담을 줄이려 했다. 그 결과 평균 부채 만기는 약 6년으로 단축됐다. 저금리 시기에는 합리적인 전략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변동금리 대출을 받은 사람이 금리 인상기에 직격탄을 맞듯, 미국 정부도 같은 함정에 빠져 있다.

올해 차환해야 하는 9조 3000억 달러(1경 3000조 원) 어치 채권의 상당 물량이 1~2%대 저금리 시기에 발행된 채권이다. 이 물량을 현재 4~5%대의 고금리로 다시 발행해야 한다. 이는 마치 월 10만 원 내던 대출 이자가 20~30만 원으로 급등하는 것과 같다.

연준의 딜레마와 미국의 신뢰 위기

16일(현지시간) 중동 순방에 나섰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도착해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에서 내리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국채시장은 오랫동안 두 개의 기둥에 의존해 왔다. 하나는 연방준비제도(Fed)의 적극적인 지원, 다른 하나는 해외 투자자들의 흔들림 없는 신뢰다. 그러나 지금은 두 축 모두에서 균열이 생겼다.

연준은 2020년 코로나 위기 당시 '양적완화(QE)'를 통해 전체 국채의 약 20%(5.5조 달러 규모)를 매입하며 정부의 재정지출을 뒷받침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대표적인 경기부양 정책이다. 그러나 2022년 물가가 급등하자 연준은 '양적긴축(QT)'으로 급선회했다. 돈줄을 조인 것이다.

지금 연준은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고금리와 긴축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국채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국채시장을 지키기 위해 다시 돈을 풀면 물가가 또다시 치솟을 것이다. 연준이 어느 쪽을 택해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연준의 통화정책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리면 장기금리도 함께 내려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11조 달러(1경 5300조 원) 규모의 국채가 시장에 쏟아지면 오히려 장기금리가 더 오를 수 있다. 채권 공급 과잉으로 매수가 부족해 가격은 하락하고 그 결과 금리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말쯤 10년물 국채 금리가 5%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가 멈추지 않는 공포가 현실이 될 수 있다. 물론 연준과 월가의 주요 금융기관, 미국 정부가 총력으로 사태를 막으려 들 것이다. 그러나 채권시장발 금융 불안정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대규모 부자 감세안을 밀어붙인다. 향후 10년간 4.5조 달러(6300조 원) 규모다. 2017년에 단행한 법인세 인하(35→21%)와 부유층 소득세 감면을 아예 영구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논리는 낙수효과다. 부자와 기업의 세금을 줄이면 투자와 고용이 늘고 그 혜택이 서민에게도 흘러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로널드 레이건의 감세는 국가 부채를 세 배로 불렸고, 트럼프 1기의 감세는 7.8조 달러(1경 900조 원)의 추가 적자만 남겼다. 약속했던 투자와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재정적 환상'이라 부른다. 부족한 재정수입을 메우겠다며 관세를 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상 세금을 수입업자와 소비자에게 전가하겠다는 발상이다.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106년 만에 강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방만한 재정운용이 계속될 것이라는 경고다.

트럼프 정부 들어 미국은 '신뢰 추락'이라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등을 돌린다. 2011년 외국인의 미국 국채 보유 비중은 49%에 달했지만, 지금은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은 보유량을 1.3조 달러(1800조 원)에서 7600억 달러(1100조 원)로 줄였고 러시아는 이미 전량을 매각했다. 일본도 지난 4월 트럼프의 고율 관세 발표 직후 200억 달러(27조 9000억 원) 이상을 매도했다.

이대로 간다면 외국인들이 '미국 국채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해 대규모 매도에 나설 수 있다. 그 순간 금융시장은 순식간에 패닉 상태로 빠질 것이다. 국채 금리 폭등, 주식시장 붕괴, 은행 유동성 위기, 기업 파산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충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제적 대응이 있다면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미국발 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기 전에, 그 파고를 최소화할 수 있는 준비와 실행력이 절실하다.

미국발 이중 위기와 차기 정부의 과제

1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3.17포인트(0.50%) 내린 2613.70에, 코스닥은 3.80포인트(0.52%) 내린 721.27에 개장했다.연합뉴스

미국발 경제 충격은 두 갈래로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하나는 고관세로 인한 수출 감소라는 '실물 경로', 다른 하나는 국채시장 불안이 불러올 '금융 경로'다. 이 두 위기가 동시에 덮치면 한국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차기 정부는 관세 협상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미국 장기금리가 5%를 넘기면 한국의 부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원화약세에 따른 물가 충격도 커질 것이다. 미국발 금융 불안에 대한 대응은 관세 문제만큼이나 시급하고 중요하다.

지난 4월, 트럼프의 관세 발표가 미국 국채시장에 불러온 혼란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시장이 크게 요동치자 그는 며칠 만에 90일 유예를 선언했다. 시장의 반응을 의식한 조치였다. 유예가 끝난 7월 초 이후에도 고율 관세를 강행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충격이 되살아날 수 있다. 설령 더 강하게 밀어붙이더라도 시장의 반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관세 완화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 미국 금융시장의 흐름을 면밀히 살피며 협상 일정과 전략을 조율해야 한다. 수출뿐 아니라 자본시장 안정까지 고려한 입체적 통상·금융 전략이 절실하다. 특히 이미 가계와 기업 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금리 상승에 따른 취약 부문 보호 대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미국의 부채 위기는 단기간에 끝날 사안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오랜 시간 불안정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긴 호흡으로 차분하고 치밀하게 대응할 때다. 위기를 관리하는 정부의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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