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형 다구획 방목
FAI farms
맥도날드는 앞으로 더 많은 첨단 실험을 발굴할 계획이다. 혁신 공간을 통해 공급망 내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실험하고, 실패하고, 배우는 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전 세계 매장의 10% 이하만 직접 운영하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맥도날드가 식품 공급망 내 실질적인 실험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기술 기업과 농민을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실험은 제약회사 신젠타(Syngenta), 감자 브랜드 매케인(McCain), 그리고 동물복지 기반 식품 시스템 전문기업 FAI팜즈 등이 주도하고 있다.[17] [18]
맥도날드는 실험 결과를 적극적으로 외부에 공개하고, 그 통찰을 '오픈 소스' 형태로 공유하고 있다. 변화는 맥도날드 혼자 힘으로 이뤄질 수 없다. 공급망의 농민의 참여가 필수지만, 농민은 새로운 기술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때가 많다. "그래프를 들고 프레젠테이션 한다고 농민이 움직이진 않기에" 맥도날드는 '농민 간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영국에서는 유기농 우유 생산 농가 54명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유제품 공급사 아를라(Arla)와 함께 운영하며, 이들은 분기마다 모여 재생농업 실천 사례를 공유한다.[19]
하지만 기술적 접근만으로는 전환을 이끌어낼 수 없다. 농민 네트워크를 조직해 자발적 확산을 유도하고, 농민 간 경험 공유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농민 스스로 재생농업의 효과를 체감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접근이 핵심이다. 하트 CSO는 "이러한 전환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며, "수많은 실험을 기획하고, 그것을 적절한 속도로 키워 나가며 그 과정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단계는 '측정과 모니터링'이다. 언젠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통해, '소 한 마리당 탄소 배출량'이나 '지역별 목초 생장률' 같은 실질적인 데이터를 농민이 쉽게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를 주고, 네트워크를 통해 이해와 통찰을 공유하면, 농민은 감각적으로 그것을 확인하고 현장에 적용하기 마련이다.[20]
최근 맥도날드와 매케인 푸드는 영국 식료품 체인 웨이트로즈(Waitrose & Partners), 6개 금융기관과 함께 영국 동부에 재생농업 시범농장을 개설했다. 농민의 재생농업 전환에 따른 리스크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함께 부담하며 구조적인 해결책을 찾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21]
다양한 재생농업 프로그램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가 주관하는 최초의 민간 부문 재생농업 이니셔티브 중 하나인 '생물다양성을 위한 원 플래닛 비즈니스(OP2B)' 연합은 시장 가치가 모두 8930억 달러에 달하는 네슬레, 펩시코, 다논 등 식음료 기업과 유니레버, 케링, 마이크로소프트, 이케아 등 26개 회원사로 구성되어 있다. OP2B에 따르면 2019년 출범 이후 회원사의 약 60%가 2022년 이전에 총 72개의 재생농업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30만 명 이상의 농부가 OP2B 프로그램에 등록했으며, 2030년까지 재생농업 면적을 1250만 헥타르로 만드는 게 목표다. 2023년엔 390만 헥타르였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농부들은 재생농업을 통해 토양 건강이 증진되고, 투입 비용이 절감되며, 비료 유출이 감소하고, 생물 다양성이 증가했으며, 극한 기후에 대한 회복력이 향상되는 효과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OP2B 회원사의 47%는 재생농업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투자된 재생 금융 전환자금은 총 36억 달러에 달했다.[22]
식품 기업 네슬레는 재생농법을 활용해 코코아를 재배하는 서아프리카 지역 농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재생농업을 도입할 곡물과 시리얼, 커피 농가를 모집 중에 있다. 펩시코와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는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200만 에이커 규모의 재생농업 시행을 목표로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이를 통해 140만 톤 이상의 온실가스 감축을 기대하고 있다.
유통기업 가운데는 2016년 월마트가 오는 2050년까지 최소 20가지 주요 상품의 지속가능한 조달을 약속한 바 있다. 월마트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5000만 에이커의 경작지를 재생농업을 통해 보존, 관리, 재생할 것을 약속하며, 월마트와 협력업체, 공급업체가 목표 달성을 위해 실질적인 방법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소비량이 많고, 소비자 건강과 영양에 기초가 되는 밀, 옥수수, 콩, 쌀 같은 곡물 재배에 농업 재생 노력을 집중할 계획이다.[23]
케링과 국제보존협회는 2021년에 '자연을 위한 재생 기금'을 출범시켰으며, 2023년에는 인디텍스가 이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이들은 패션 원료 공급망을 재생하기 위해 2026년까지 100만 헥타르를 재생 농업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2023년까지 1500만 유로가 투자됐다.
이 외에 소규모 농가의 삶을 개선하고 개발도상국의 자연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재생 농업 투자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OP2B의 재생농업 프로젝트의 성과는 2026년 1월에 발표되며 보다 긍정적인 결과가 기대된다.[24]
한국, 아직 걸음마 단계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발표한 '농업전망 2025'에 따르면 한국 농업은 기후변화와 인구 감소, 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재생농업이 활성화하지 않은 상태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저탄소 농업 전환과 농촌 재생 정책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25] [26]
특히, 농촌진흥청은 지속가능한 미래농업 실현을 위한 연구를 강화하고 있으며, 스마트 농업 기술과 결합한 재생농업 모델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농업인 교육과 지원을 통해 재생농업의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재생농업에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으나 기존 상업적 농업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게 근본적 한계다. 재생농업이 생소한 소비자가 이러한 방식으로 재배된 제품에 더 비싼 값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또한 회의적이다.
대규모 관리가 어렵고, 토지를 전환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선행 투자 필요한 것 또한 걸림돌이다. 몇몇 토양학자가 재생농업의 탄소 감축 능력이 과대평가되었다고 경고한다. 퇴비를 주는 등 토양 유기물 증대 방식으로 진행되는 재생농업은 토양의 지속가능성에는 도움이 되지만, 단기간 내 기후위기 완화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토양학자 스테판 헤펠레가 글로벌 변화생물학 저널(Global Change Biology)에 보낸 기고에서 "유기물을 경작지에 투입하면 첫해에 탄소의 3분의 1 정도만 토양에 흡수되고 나머지는 토양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 대기로 되돌아간다"며 축산업의 분변 관리, 산림 보존 등 현실적인 기후 대응책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27]
재생농업의 한계 극복은 농업정보기술(agtech)에 기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민간기업과 협업을 통해 SDGs를 실현하는 단체인 IDH는 재생농업 전환을 위한 핵심 기술과 적용 분야를 ▲통신 채널을 사용한 생산 원칙 표준화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전 예측을 적용한 생산 리스크 완화 ▲소싱의 경제성 개선을 위한 디지털 통합과 시장 연계 도입 ▲데이터 기반 금융 및 결제를 통한 경제적 탄력성 구축 ▲가격 프리미엄을 제공하는 글로벌 바이어와 연결될 수 있는 디지털 추적 솔루션 ▲작물 상태, 토양 구성 변화, 휴경지 변화 등을 살펴 경로를 수정하는 원격 모니터링 기술 등을 꼽았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 선보이는 중이다. 2022년 영국 정부로부터 100만 달러의 시드 머니를 받은 베르나(Verna)는 지리 공간 데이터를 분석해 재생농업 최적지를 식별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기반으로 한 트위스티드 필즈(Twisted Fields) 자율 주행 로봇을 활용해 정밀파종, 제초작업, 수확 등을 자동화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2021년 창업해 지난해 9월 6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한 클림(Klim)은 재생농업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농부들에게 금융과 훈련 지원을 연결해 주고, 농업 분야의 공급망 점검 서비스를 제공한다.[28]
재생농업 전환은 온실가스 감축과 마찬가지로 선택보다는 당위의 문제에 속한다. 기업, 농민, 정부가 협력하여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도전 과제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농업 모델로 자리잡게 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부작용 없는 빠른 전환을 도모하면서 전환 실패가 더 큰 부작용이 될 것이라 명제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글: 이윤진 ESG연구소 대표,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