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16 14:06최종 업데이트 25.05.1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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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을 비롯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은 더 이상 '경쟁'이 아니라 '전쟁'이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는 기존 국제질서를 무력화하며, 기술 자립을 국가안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곧 출범할 차기 정부는 바깥으로는 미중 기술 전쟁, 안으로는 저성장과 인구감소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채, 경제 회복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제를 돌파할 핵심 수단은 첨단 과학기술을 통한 산업 주도권 확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압도적 자본과 기술력, 인재 풀을 보유한 미국과 중국에 비해, 자원과 인력이 제한된 우리는 어떤 전략으로 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예컨대, 연 매출 175조 원의 중국 화웨이는 작년 한 해 36조 원을 R&D에 투자했다. 이는 한국 정부 전체 R&D 예산을 넘는다. 'R&D 투자 확대'만으론 부족하다. 복지, 세수, 재정 여건 속에서 우리는 같은 자원으로 몇 배의 승수를 내야 한다. 쉴 새 없이 달리는 토끼와의 경주에서 이기려면, 더욱 정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혁신 자산, 연결이 전략이다

글로벌 기술 전쟁의 승부는 자원의 총량뿐만 아니라, 혁신 자산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실행력으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은 자원의 양에서는 열세지만, 기술·산업 기반과 우수 인력, 축적된 경험 등 질 높은 혁신 자산을 폭넓게 갖춘 나라다. 따라서 산·학·연·관 전반에 걸친 우리의 혁신 자산이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정부는 이를 연결하고 집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연 30조 원에 달하는 국가 R&D 투자는 산·학·연의 혁신 자본으로 작동해야 하며, 산업 기반과 제도는 인재가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혁신 관련 정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교육부 등 부처별로 개별 최적화에 머물러 있고, 이를 국가 차원의 통합 전략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제도적·기능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그간 부처 간 정책 분절과 중복, 비효율의 문제를 인식하고 여러 범부처 협의체 등을 운영해 왔지만, 조정 권한이 없는 구조 속에서는 실질적 시너지를 만들지 못했다. 예산 편성과 조율 권한 없는 체계로는 부처 간 협력이 형식에 머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재정, 기술, 산업기반, 제도, 인재 등 국가가 보유한 혁신 자산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집결시킬 전략적 실행 체계이자, 분절된 정책 시스템을 통합할 '혁신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실제로 정책 현장 곳곳에서 통합형 정책 시스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차기 정부에서 첨단기술 기반의 국가 혁신의 핵심 수단으로 다루어야 할 AI, 기술사업화, 인재 정책을 예로 살펴보자.

AI, 범정부 거버넌스로 추진해야 할 전략 기술

자료사진tinkerman on Unsplash

차기 정부는 AI를 국가 성장의 중심축으로 확산시키고, 구체적 성과로 연결해야 할 시대적 책무를 안고 있다. AI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영역을 넘어 산업, 문화, 사회, 보건, 복지, 교육 등 전 사회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범용 혁신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기술 개발·인재 양성·창업 촉진·산업 융합·기업 지원·인프라 구축·제도 개선 등 여러 부처에 흩어진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AI 기반 혁신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통합 거버넌스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AI 기반 신산업 육성에는 과기정통부, 산업부 등 진흥 부처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규제 부처 간 균형 잡힌 조율과 협업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의료나 금융 분야에서 AI를 활용한 신산업을 촉진하려면, 민감 정보 활용에 대한 신뢰와 책임의 기반 위에서,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면서도 국익을 우선하는 전략적 규제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으로 조율할 역량과 권한을 갖춘 강력한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 AI 확산을 위해 관련 기능을 한 부처에 집중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정책 범위의 지속적 확장성과 도메인별 융합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조정 권한을 갖춘 범정부적 거버넌스 체계가 더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해법이다.

기술개발에서 시장까지, 분절을 잇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공공 R&D 투자는 확대되고 있지만, 기술이전과 상용화로 이어지는 실질적 성과는 여전히 낮다. 한국의 공공 R&D 과제 기술사업화율은 약 15~20% 수준에 머문다. 선진국들 역시 상용화율 자체는 낮지만,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양적 승부 전략'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원이 제한된 한국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할 수 없으며, 핵심은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혁신성과'로 연결하느냐에 있다.

기술의 생애 주기는 기초연구에서 상용화까지 연속된 흐름이지만, 현실에서는 기초·원천 단계는 과기부, 실증·사업화 단계는 산업부와 중기부로 나뉘어 담당하면서 단계 간 연결이 구조적으로 단절되고 있다. 특히 기술사업화는 성과를 시장으로 전환하는 핵심 고리임에도, 어느 부처도 이를 전략적으로 총괄하지 못해, 추진 동력 부재와 중복 투자, 전환 속도 저하가 반복되고 있다.

고성장기에는 부처 간 중복이나 업역 다툼의 비효율보다, 각 부처의 진흥성과가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성장과 글로벌 기술경쟁이 격화된 오늘, 기존 거버넌스를 5년 더 유지하는 것은 한계를 인식하고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는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전 주기를 조망하고, 정책 간 연계와 부처 간 조율을 통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는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조율 권한과 실행력을 갖춘 전략적 거버넌스, 즉 국가 혁신을 전주기 관점에서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는 상위 조정 체계가 필수적이다.

첨단기술 인재 정책은 곧 R&D 정책이다

인구 감소와 인재 유출로 우수 인재의 확보가 중요한 국가 어젠다가 된 지금, 첨단 기술 인재는 단순한 교육과정만으로는 길러질 수 없다. 이들은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R&D 현장 경험을 통해 성장하며, 따라서 첨단 기술 인재 정책은 곧 R&D 정책이자 과학기술 정책이다.

이러한 첨단기술 인재의 성장 특성상, 정책 대상은 더 이상 20대 석·박사에 국한될 수 없다. 지속적으로 R&D에 참여하며 역량을 축적하는 18만 명(' 24 연구개발조사분석평가, KISTEP)의 현장 연구자야말로 국가가 육성하고 활용해야 할 핵심 혁신 자산이다.

지금까지 인재 정책은 배출과 유입, 교육 프로그램에 치중돼 있었지만, 이제는 기술을 개발하는 R&D 과정이 곧 인재가 역량을 축적하는 과정임을 감안해, 이들의 역량을 어떻게 고도화하고 실질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R&D와 인재 정책의 연계는 R&D 성과의 질적·양적 제고로 직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연구 지원 환경은 연구행정, 장비·인프라, 지원인력 등 전 분야에서 선진국 대비 뒤처져 있으며, 이로 인해 18만 명의 연구 인력을 보유하고도 실제로는 10만 명 수준의 역량만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역량 누수'도 대규모 인재 배출로 보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공계 인재의 절대적 규모 감소, 의약계 및 해외 유출까지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국가 과학기술과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선진적인 연구 지원체계를 갖추고 인재가 역량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인재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R&D 정책과 인재 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조율할 수 있는 전략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혁신 주체의 통합과 연계: 시너지를 창출하는 국가 혁신 리더십

따라서 차기 정부는 제한된 자원을 극대화하고, 분절된 시스템을 연결하여 실질적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통합 리더십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이 전략을 지휘하고, 부총리가 실행을 책임지는 '이중 추진 체계'를 확립하여, 정책 기획부터 실행까지를 전략적으로 연결함으로써 혁신 주체 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

대통령실 혁신수석은 과학기술과 산업의 시너지를 국가 혁신 전략의 최상위 어젠다로 설정하고, 국정 철학을 정책 기획에 연결하여 주요 정책의 우선순위와 투자 방향을 조정하는 전략 조정자이자 정책 신호의 발신자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혁신부총리는 관계 부처의 정책을 기획–조정–집행하는 통합 실행 사령탑으로서, 부처 간 연계를 이끌고 국가혁신본부를 실행조직으로 삼아 일관성과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을 이끄는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특히 과기부·산업부·중기부·교육부 등 관련 부처와의 조율을 통해 산·학·연·벤처 등 혁신 주체 간 연계를 강화하고, 국가 자원의 전략적 투자와 정책 실행력을 확보하는 핵심 조정자로 기능해야 한다. 국가혁신본부는 기존 과학기술혁신본부를 격상·개편하여, 단순한 R&D 예산 조정을 넘어 혁신 전략 수립, 기술사업화, 산업 경쟁력 강화, 첨단 인재 양성 등 전반을 아우르는 실질적 정책 설계 및 통합 조정 조직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러한 거버넌스 체계에서 각 부처의 고유 실행 기능은 존중하되, 국가 전략과 예산의 큰 방향은 대통령실이 조율하고, 정책의 구체적 설계와 집행은 혁신부총리가 총괄하며, 국가혁신본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실행 조직으로 작동하는 유기적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결국, 국가 혁신 주체 간 역량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전략에서 실행까지 일사불란하게 이어지는 실질적 추진 체계를 갖추는 일은 선택이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필수 전략 과제다.

박수경KAIST 교수포럼사의재

* 필자 소개 : 박수경은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로, 생체역학 및 웨어러블 헬스케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정책 분야에서는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으로서 산·학·연 전문가 집단의 싱크탱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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