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tinkerman on Unsplash
차기 정부는 AI를 국가 성장의 중심축으로 확산시키고, 구체적 성과로 연결해야 할 시대적 책무를 안고 있다. AI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영역을 넘어 산업, 문화, 사회, 보건, 복지, 교육 등 전 사회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범용 혁신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기술 개발·인재 양성·창업 촉진·산업 융합·기업 지원·인프라 구축·제도 개선 등 여러 부처에 흩어진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AI 기반 혁신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통합 거버넌스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AI 기반 신산업 육성에는 과기정통부, 산업부 등 진흥 부처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규제 부처 간 균형 잡힌 조율과 협업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의료나 금융 분야에서 AI를 활용한 신산업을 촉진하려면, 민감 정보 활용에 대한 신뢰와 책임의 기반 위에서,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면서도 국익을 우선하는 전략적 규제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으로 조율할 역량과 권한을 갖춘 강력한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 AI 확산을 위해 관련 기능을 한 부처에 집중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정책 범위의 지속적 확장성과 도메인별 융합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조정 권한을 갖춘 범정부적 거버넌스 체계가 더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해법이다.
기술개발에서 시장까지, 분절을 잇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공공 R&D 투자는 확대되고 있지만, 기술이전과 상용화로 이어지는 실질적 성과는 여전히 낮다. 한국의 공공 R&D 과제 기술사업화율은 약 15~20% 수준에 머문다. 선진국들 역시 상용화율 자체는 낮지만,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양적 승부 전략'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원이 제한된 한국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할 수 없으며, 핵심은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혁신성과'로 연결하느냐에 있다.
기술의 생애 주기는 기초연구에서 상용화까지 연속된 흐름이지만, 현실에서는 기초·원천 단계는 과기부, 실증·사업화 단계는 산업부와 중기부로 나뉘어 담당하면서 단계 간 연결이 구조적으로 단절되고 있다. 특히 기술사업화는 성과를 시장으로 전환하는 핵심 고리임에도, 어느 부처도 이를 전략적으로 총괄하지 못해, 추진 동력 부재와 중복 투자, 전환 속도 저하가 반복되고 있다.
고성장기에는 부처 간 중복이나 업역 다툼의 비효율보다, 각 부처의 진흥성과가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성장과 글로벌 기술경쟁이 격화된 오늘, 기존 거버넌스를 5년 더 유지하는 것은 한계를 인식하고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는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전 주기를 조망하고, 정책 간 연계와 부처 간 조율을 통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는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조율 권한과 실행력을 갖춘 전략적 거버넌스, 즉 국가 혁신을 전주기 관점에서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는 상위 조정 체계가 필수적이다.
첨단기술 인재 정책은 곧 R&D 정책이다
인구 감소와 인재 유출로 우수 인재의 확보가 중요한 국가 어젠다가 된 지금, 첨단 기술 인재는 단순한 교육과정만으로는 길러질 수 없다. 이들은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R&D 현장 경험을 통해 성장하며, 따라서 첨단 기술 인재 정책은 곧 R&D 정책이자 과학기술 정책이다.
이러한 첨단기술 인재의 성장 특성상, 정책 대상은 더 이상 20대 석·박사에 국한될 수 없다. 지속적으로 R&D에 참여하며 역량을 축적하는 18만 명(' 24 연구개발조사분석평가, KISTEP)의 현장 연구자야말로 국가가 육성하고 활용해야 할 핵심 혁신 자산이다.
지금까지 인재 정책은 배출과 유입, 교육 프로그램에 치중돼 있었지만, 이제는 기술을 개발하는 R&D 과정이 곧 인재가 역량을 축적하는 과정임을 감안해, 이들의 역량을 어떻게 고도화하고 실질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R&D와 인재 정책의 연계는 R&D 성과의 질적·양적 제고로 직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연구 지원 환경은 연구행정, 장비·인프라, 지원인력 등 전 분야에서 선진국 대비 뒤처져 있으며, 이로 인해 18만 명의 연구 인력을 보유하고도 실제로는 10만 명 수준의 역량만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역량 누수'도 대규모 인재 배출로 보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공계 인재의 절대적 규모 감소, 의약계 및 해외 유출까지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국가 과학기술과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선진적인 연구 지원체계를 갖추고 인재가 역량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인재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R&D 정책과 인재 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조율할 수 있는 전략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혁신 주체의 통합과 연계: 시너지를 창출하는 국가 혁신 리더십
따라서 차기 정부는 제한된 자원을 극대화하고, 분절된 시스템을 연결하여 실질적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통합 리더십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이 전략을 지휘하고, 부총리가 실행을 책임지는 '이중 추진 체계'를 확립하여, 정책 기획부터 실행까지를 전략적으로 연결함으로써 혁신 주체 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
대통령실 혁신수석은 과학기술과 산업의 시너지를 국가 혁신 전략의 최상위 어젠다로 설정하고, 국정 철학을 정책 기획에 연결하여 주요 정책의 우선순위와 투자 방향을 조정하는 전략 조정자이자 정책 신호의 발신자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혁신부총리는 관계 부처의 정책을 기획–조정–집행하는 통합 실행 사령탑으로서, 부처 간 연계를 이끌고 국가혁신본부를 실행조직으로 삼아 일관성과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을 이끄는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특히 과기부·산업부·중기부·교육부 등 관련 부처와의 조율을 통해 산·학·연·벤처 등 혁신 주체 간 연계를 강화하고, 국가 자원의 전략적 투자와 정책 실행력을 확보하는 핵심 조정자로 기능해야 한다. 국가혁신본부는 기존 과학기술혁신본부를 격상·개편하여, 단순한 R&D 예산 조정을 넘어 혁신 전략 수립, 기술사업화, 산업 경쟁력 강화, 첨단 인재 양성 등 전반을 아우르는 실질적 정책 설계 및 통합 조정 조직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러한 거버넌스 체계에서 각 부처의 고유 실행 기능은 존중하되, 국가 전략과 예산의 큰 방향은 대통령실이 조율하고, 정책의 구체적 설계와 집행은 혁신부총리가 총괄하며, 국가혁신본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실행 조직으로 작동하는 유기적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결국, 국가 혁신 주체 간 역량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전략에서 실행까지 일사불란하게 이어지는 실질적 추진 체계를 갖추는 일은 선택이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필수 전략 과제다.
▲박수경KAIST 교수
포럼사의재
* 필자 소개 : 박수경은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로, 생체역학 및 웨어러블 헬스케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정책 분야에서는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으로서 산·학·연 전문가 집단의 싱크탱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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