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쿠르츠게작트'(Kurzgesagt)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대한민국은 끝났다'(SOUTH KOREA IS OVER)
쿠르츠게작트
6·3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후보마다 장밋빛 미래를 내놓기에 바쁘다. 하지만 정작 나라 밖에선 "한국은 끝났다"라는 담론이 유행한다. 최근 독일의 유명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Kurzgesagt)에서 만든 영상이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은 인구,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모든 측면에서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2060년이면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한국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섬뜩한 경고를 내놓은 것이다.
2023년에는 EBS '다큐멘터리K - 인구대기획 초저출생'에 출연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말한 장면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초저출산과 초고령화가 맞물리면서 고착되고 있는 한국의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위기는 결코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추세가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완화'와 '적응'은 필수적이다. 다방면의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절실하면서도 여전히 시기상조론에 막혀 있는 '자원입대제(모병제)'를 거론하고 싶다. 잘 설계된 자원입대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한국의 인구,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등 모든 측면에서 반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 모병제보다는 자원입대제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 이유는 '국가가 병사를 모집한다'는 뜻보다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군에 입대한다'는 뜻이 개인의 선택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자원입대제의 골격은 이렇다. 올해 하반기에 '자원입대제 추진 위원회'를 구성해 내년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이 사이에 '공론화 위원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한다. 이러한 과정과 2년 정도의 전환 준비를 거쳐 2027년 하반기나 2028년 상반기에 징병제에서 자원입대제로 전환한다.
정규군 수는 30만 명으로 하고, 이후 안보 환경 및 병력 수요, 인구 감소, 기술 발전, 사회경제적 여건 등을 두루 고려해 점차 줄여나간다. 사병과 간부의 비중은 절반 정도씩으로 하고, 직업 사병의 근무 기간은 24개월로 한다. 직업 사병의 평균 급여는 월 400만 원이며 장교와 부사관 등 간부는 근무기간을 마친 직업 사병을 대상으로 충원해 나간다.
이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은 '가난한 사람만 군대에 갈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제도를 잘 설계하면 이러한 우려를 기우로 만들 수 있고, 제도 전환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4년 만에 자원입대제로 전환한 미국
미국은 1969년 자원입대제 검토에 착수해 1971년에 징병제 폐지 법안을 제정했으며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73년 1월에 완전 자원입대제를 도입했다.
베트남 전쟁과 징병제에 대한 반감을 포착한 리처드 닉슨은 ▲ 대선에서 '징병제 폐지' 공약 ▲ 대통령 취임 직후 '게이츠 위원회' 발족 ▲ 이듬해 자원입대제 전환 권고 보고서 제출 ▲ 군 급여 인상과 각종 인센티브 확대 ▲ 신병 모집 체계 개편 등 2년간의 준비 ▲ 징병제 폐지 및 자원입대제 전면 도입을 거쳤다. 검토에서 도입까지 4년이 걸린 것이다.
미국의 자원입대제 도입은 안보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을 때 단행되었다. 베트남 전쟁의 장기화와 패전 위기, 미국·소련의 군비경쟁 격화 및 브레즈네프 독트린에 따른 소련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군사적 개입 노골화, 중국의 본격적인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 중남미의 사회주의 혁명 바람, "제2의 한국전쟁 위기"로까지 불린 한반도 정세 불안 등이 그것이다. 한국에선 안보 환경이 징병제 폐지 논의를 봉쇄하는 근거로 작용해 왔다면 미국에선 반대의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2006년 자원입대제를 평가한 보고서에서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이외에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입대 연령의 젊은 남성 수가 급증하면서 필요한 병력 수를 크게 상회해 모든 남성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인구학적 현실'이었다. 둘째, 자원입대제를 도입하는 데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다는 '재정적인 판단'이었다. 셋째, 징병제로는 군인들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며 변화를 희망한 '미군 수뇌부의 요구'였다. 넷째, 국가가 개인의 동의 없이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권리 침해라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과 징병제는 하위 계층에게 경제적 기회비용을 더 많이 부과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 사이의 '사회철학적 만남'이었다.
이를 오늘날 한국과 비교해 보면 주목할 만한 함의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첫째, 미국은 입대 자원이 넘쳐날 때 징병제를 폐지한 반면 한국은 입대 자원이 부족해지고 있음에도 징병제를 고수한다. 둘째, 미국은 자원입대제 도입이 재정적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긴 반면 한국에선 재정상의 부담을 이유로 이를 기피한다. 셋째, 미국은 개인의 권리 및 하위 계층의 경제적 기회비용을 고려해 제도를 전환한 반면 한국에선 병역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여전히 불온시하고 징병제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작용에 둔감하다. 넷째, 미국은 군 수뇌부가 제도 전환에 적극 찬성한 반면 한국에선 군 수뇌부가 제도 변화를 가장 강력히 반대한다.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이자 중산층 유지 역할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 평택 오산 미군 공군기지에서 열린 장병 격려 행사에 참석해 장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사례에 주목할 점은 '가난한 사람만 군대에 갈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미국에서도 초기에는 "가난한 흑인과 백인이 군인이다", "해병대를 보라. 당신이 보는 얼굴은 흑인이 대부분이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저소득 계층이 자원병의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데는 저소득층에선 군인이 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중산층에선 군인이 되지 않아도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는 믿음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주목할 만한 현상이 나타났다. 중산층의 자원입대 비율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1997년 통계에 따르면 자원병 가계의 소득 수준은 연 8만 7000달러로 비자원병 가계보다 약 1만 달러가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2020년 미국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부유층은 17%, 빈곤층은 19%를 차지한 반면에 중산층의 비율은 64%에 달한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주된 이유는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중산층의 실질임금은 거의 정체된 반면 비정규직·교육·의료·주거비는 급등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청년들이 안정적인 일자리와 급여, 그리고 복지·교육 혜택이 보장된 군대를 '합리적인 선택지'로 바라본 것이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자원입대제는 두 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저소득층의 자원입대자가 군 복무를 통해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자원입대제가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일정 부분 해왔다는 평가를 가능케 한다. 또한, 중산층의 자원입대 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군 복무 중에도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고 복무 이후에도 중산층 지위 유지나 고소득층으로의 이동 비율도 높다.
그렇다면 한국이 자원입대제를 도입할 경우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뤄보기로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