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21차 대구시민시국대회 당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모여 찍은 응원봉들.
햐
햐는 내란 국면에서 열린 집회에 20회 이상 참석했다. "국회로 와달라"는 말에 비상계엄 첫 주말인 지난해 12월 7일에는 서울 여의도로 갔다. 이후 줄곧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시국대회에 참여했지만, 서울에서 열린 3.29민중의행진도 가고 경북 구미로 가는 '옵티칼 희망버스'도 탔다. 'TK의 딸은 늘 광장에 있었다'고 적은 아이돌 그룹 원어스의 응원봉 '달빛'과 함께였다.
"저는 TK라는 정체성도, 여성이라는 정체성도 놓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일단 태어나 보니까 여성인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또 TK인 것도 태어나 보니까 대구인 걸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그리고 두 정체성 모두 제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투쟁 현장에서 TK 여성은 또 의미가 다르거든요. 전체 여성 중에서도 보여지지 않는 위치에 있고, 이런 퇴진 운동에서도 가려져 있는 위치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말 그대로 '여기 있었다, 원래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을 거고, 앞으로도 이 자리에, 이 광장에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썼습니다. 소결님('TK 콘크리트는 TK의 딸에 의해 부서질 것이다' 대자보 작성자) 대자보에서도 영향을 받았고요."
2016년 대학에 입학한 햐는 '페미니즘 리부트'를 거치며 페미니스트가 됐다. 인생 첫 집회도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 집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지역혐오에 더해 여성혐오에도 맞서야 했다. 퇴진 광장을 거치며 TK의 콘크리트를 부수는 딸들이 조명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지만, 그들을 '개념녀'처럼 보는 시각 또한 문제적이라고 봤다.
"'개념녀'라는 게 사실 그렇잖아요. 여자들은 사치 좋아하고, 남자한테 '빨대' 꽂으려 하는데 '너는 안 그래' 하는 것처럼. TK 사람들 만날 윤석열 지지하고 그렇지만 'TK의 딸은 또 안 그래'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어떻게 보면 저희에 대한 타자화이고, 'TK의 딸'에서 'TK'라는 걸 빼놓을 수가 없는데 그런 '개념녀' 취급은 TK에 대한 지역혐오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수자의 모습은 쉽게 정형화되고, 다양성을 상실한 것으로 내비쳐지며 무지성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그가 말하는 지역과 여성을 교차하는 혐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해하게 됐다. 내란을 거치며 여성 연대의 필요성을 느낀 햐는 대구여성회에 가입해 활동 중이다.
말벌 동지는 '어떻게' 되는가
햐는 윤석열 퇴진 광장을 거치며 이른바 '말벌 동지'가 됐다. 사측의 노조탄압과 종교강요행위에 항의하는 대구의 성서공단 태경산업 집회에도 갔고, 희망버스를 타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해고노동자 박정혜·소현숙에 연대하러도 갔다. 인혁당사건 50주기 시민대회와 세월호 11주기 추모 집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의날 집회에도 다녀왔다. TK 지역뿐 아니라 서울 명동의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을지로 한화그룹 본사 앞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 김형수가 있는 고공 농성장에도 갔다. 어려움에 처한 수많은 얼굴들과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4월 26일 경북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서 고공 농성을 이어간 해고노동자 박정혜, 소현숙씨가 '옵티칼 희망버스' 문화제 참가자들과 만나고 있다. 다음날인 27일 소씨는 건강 악화를 이유로 476일만에 농성을 중단했다.
햐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달려가는 '말벌 동지'는 어떻게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햐는 광장에 가는 이유를 "연대에서 오는 '임파워링'(empowering·북돋아주다) 때문"이라고 했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싶은 소속감 때문인 거 같아요. 광장에 나가면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내 자신의 틀을 깨는 느낌이거든요. 왜냐하면 사실 저는 그전에는 밖에 나가서 발언하고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런데 여러 사람들 앞에 나가서 의견을 이야기하고, 환호와 응원을 받는 게 앞으로의 나한테 용기를 주는 경험이 됐어요. 전에는 남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었는데 그런 것도 벗어날 수 있게 됐고요."
두 번은 광장 위 발언대에서 자유 발언에 나섰다. 한 번은 3월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범시민대행진, 한 번은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파면 선고 전날의 집회에서였다. 서울에서보다, 고향인 대구에서가 더 떨렸다.
"서울은 (단상에) 올라가면 제가 다 모르는 얼굴이잖아요. 제가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덜 떨렸는데 대구는 몇 달 동안 본 동지들이 바로 앞에 있고… 그래서 더 떨렸었고요. 파면 선고일 전날이라 아우팅에 대한 걱정은 좀 없었던 거 같아요. 워낙 큰 일을 앞두고 있다 보니까 '당장 내일 (파면) 안 되면 어떡하지'에 대한 걱정이 더 컸고요. 아직 우리 사회가 '페미'를 낙인찍는 분위기가 있으니까 걱정이 좀 있었는데, 그날만큼은 그래도 두려움 다 떨쳐버리고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의 광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쌍도는 답이 없다'고 합니다. 특히 이번에 발생한 경북 산불을 두고 '경북은 불타도 할 말 없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든 대구경북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의 동지들이 대구 동성로에서 윤석열 파면을 외치고 있습니다. (중략)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성별이나 장애나 학력 등 어떤 이유로든 차별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도 같은 마음이시죠? 그리고 그 세상은, 누군가는 특정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불에 타 죽어도 되는 세상은 아닐 것입니다."
'TK = 보수의 심장'은 이제 그만

▲지난 3월 15일 23차 대구시민시국대회에 참여한 햐가 대구여성회의 기수 체험에 참가해 깃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햐 제공
광장 이후의 정치, 정확히는 '파면 이후의 정치'는 어떠해야 할까. 햐는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나 갈라치기를 조장하는 선동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에 우리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가지고 바꿔 나가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기자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누구나 하나쯤은 싫어하는 게 있잖아요. 그게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까 그냥 속으로만 미워하고 사는 거지 다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근데 그걸 나도 너도 싫어한다는 이유로 다 같이 웃으면서 조롱하고, 싫어하는 이유가 또 있어야 되니까 없는 말도 만들어내고… 그러다 보면 '너네가 싫어하는 걸 내가 없애줄게'라고 얘기하는 정치인이 분명히 나올 거란 말이에요. 그런 게 반복이 되면 제2의 윤석열, 제3의 윤석열이 될 거 같아요."
6·3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의 후보들이 TK 지역에 적극 어필하며 다시 한번 '보수의 심장' 얘기가 나오는 와중이다. (이번에는 좀 더 정확히 '보수의 심장이 흔들리고 있다'이지만.)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는 어떻게 근절해야 할까.
"언론과 미디어에서 만든 게 크다고 생각해요. 특히 대구·경북 같은 경우는 '보수의 심장' 이런 식으로 보도를 많이 하잖아요. 걸핏하면 서문시장 와서 인터뷰를 해가는데 그때마다 궁금한 게 (서울) 강남 3구나 아크로비스타 같은 데도 극우가 있을 텐데, 왜 대구 먼 데까지 와서 인터뷰를 따가고 그걸 대구 시민 전체의 의견인 양 보도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햐는 서울의 광장에서 발언할 당시 연대해 준 시민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발언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야유하면 어떡하지', '응원봉으로 특정이 될 텐데 행진할 때 누가 와서 해코지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고 지역혐오에 함께 분노해주셨어요. 본인도 TK의 딸이라며 '용기 내줘서 고맙다, 대구 집회에도 한 번 가겠다'고 하신 분도 계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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