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15 07:04최종 업데이트 25.05.15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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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김헌용 교사가 교실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앞에는 키보드, 노트북,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 중학교 영어 교과서가 놓여 있고 뒤편 스크린에는 학습자료가 떠 있다.김헌용

> [인터뷰 ①] "어떤 게 힘드세요?" 학생들이 교사에게 준 엄청난 선물(https://omn.kr/2dig5)에서 이어집니다.

서울 신명중학교 김헌용 교사와 웹 접근성에 대해 이야기나누다 보면 웬만한 전문가 뺨칠 정도의 지식에 놀라곤 한다. 그는 장애인 교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현장에서 혼자 분투하는 대신 다른 장애 교사를 모아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장교조)를 만들고 위원장으로 일하기도 하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장애 교사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알려주기 위해 밤마다 외국 사이트를 뒤져 웹 접근성 기술을 탐독했고 현재는 인공지능(AI) 서비스를 7개나 구독하고 있다. 지난 4월 30일 전화 인터뷰에서 장애인에게 AI 기술은 어떤 효용이 있을지 그리고 위협이 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 시각장애인이 디지털 기술로 소통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는 것인가? 점자는 디지털 시대에 어떤 효용이 있는가?

"음성을 문자로 바꾸거나 문자를 음성으로 바꾸는 형식의 디지털 기술이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고, AI가 도입되며 훨씬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하지만 점자는 여전히 시각장애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자 체계다. 모든 시각장애인이 다 쓰는 것은 아니지만 점자는 문해력을 높이는 한편 물리적인 세계에서 정보접근권을 높이는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표 등을 전자 점자로 바꿔주는 기술도 있어서 학교 통지표 등을 전자 점자로 바꾸어 보고 있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점자는 없어지면 안 된다. 우리 삶의 기반은 물리적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다. 샴푸인지 린스인지 씻을 때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내 드는 대신 점자로 통에 표기를 해주는 게 당연히 더 편하지 않겠는가."

- 선생님의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글을 보면 웹 접근성부터 시작해 AI 사용까지 매우 상세한 후기가 눈에 띈다.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시각장애인이라면 갖가지 디지털 기술에 기댈 수밖에 없다. 카카오톡이나 이메일 같은 것들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음성합성(Text-to-speech) 기술은 필수가 됐다. 음성으로 입력해 문자나 카톡을 보내는 음성인식(Speech-to-text) 기술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정보를 알고 소통하는 건 교사로서 학교 내 생존 기술에 가깝다.

교육 관련 행정 시스템의 웹 접근성이 계속 문제가 되면서 공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알아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니까. 2020년에는 학교 내 업무결재시스템인 K에듀파인 고도화, 2023년에는 4세대 나이스 시스템 고도화 진행 시 웹 접근성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장교조에서 교육부에 제기했다. 당시 웹 기반의 디지털 도구를 탐험하는 과정을 기록해 두고 싶어 블로그를 시작했다."

- 시각장애인 교사로서 업무할 때 접근성 측면에선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시험문제 출제를 예로 들어보겠다. 출제 때마다 업무보조 선생님 도움을 받지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겪었다. 시험문제를 낼 때 메모장 프로그램에 문제를 적고 업무보조 선생님이 옮겨 편집하는 이중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최종 검토하는 과정에서 또 수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문이 너무 길어 줄여야 한다거나 문제 위치를 바꿔야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시간도 더 오래 걸린다.

이보다 더 문제는 한국 공공기관 문서 양식이 너무 경직적이라는 점이다. 공문서 작성의 경우 형식을 너무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정작 문서 안에서 형식을 바꿨을 때 내용이 논리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논리가 끊어진 것도 아닌데 단순히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줄 바꿈을 한다든지, 대분류와 소분류를 같은 글머리 기호 아래에 정리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논리적 정합성 대신 문서가 시각적으로 보여지는지에 치중하는 문서들이 많다. 이런 부분은 시각장애인들에게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AI 발전 속도가 정보 소외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이런 과정을 겪으며 쉬운 언어, 쉬운 의사소통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됐을 것 같다.

"웹 접근성은 결국 정보에 평등하게 접근하고 평등하게 사회 참여할 권리를 뜻한다. 서구권의 정부 홈페이지나 외국 테크기업 서비스를 쓰다 보면 이런 정보접근권에 한국보다 훨씬 민감하다. 비단 시각장애인에 국한된 게 아니다. 영미권에서 1970년대 '쉬운 영어 운동'도 있었다. 법률 문서 등 알기 힘든 전문용어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바꾸어 써서 정보 접근성을 높이자는 운동이다.

한국은 표에 욱여넣은 한자어 중심의 공문서들이 아직 많은데, 이런 환경에서는 정보 접근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기 어렵다. 누구에게나 쉬운 정보를 만들면 발달장애인이나 어린이, 청소년에게도 이롭고 국내 거주 외국인에도 이롭다."

- 사용하는 AI 툴은 몇 개나 되고 어떤 특징이 있는가?

"AI 툴은 7개 정도 유료 구독하고 있고 새로운 AI는 시험 삼아서라도 다 써보는 편이다. 주로 챗봇 기능을 많이 쓴다. 가장 많이 쓰는 것은 구글의 제미나이, 스피치파이이고 챗GPT와 클로드도 많이 쓴다.

학교 업무에서는 제미나이를 많이 쓰는데, 복잡한 공문을 요약하거나 학생들이 쓴 자료나 과제를 분석할 때 쓴다. 특히 제미나이가 손 글씨 분석 기능이 뛰어나다. 제미나이는 맥락 이해 능력이 뛰어나고 구글이 자체 칩도 개발하는 만큼 정보 처리 속도도 빠르다. 클로드의 경우 서비스 자체가 업무상 쓰기에 매우 쉬운 유저인터페이스를 갖고 있다. 한글 문장도 자연스럽게 잘 쓴다.

이메일을 읽을 때는 스피치파이를 많이 쓴다. 시각장애인들이 쓰는 음성합성(TTS) 서비스에서 나오는 기계 음성은 보통 높낮이가 없어 로봇 소리처럼 들리는데 스피치파이는 훨씬 자연스럽다. 미스터 비스트 같은 유튜버 목소리를 비롯해 유명인들 목소리로도 들을 수 있어 즐거움을 더해준다.

일상생활에서는 챗GPT의 비전 기능을 많이 쓴다. 최근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는데, 실내 내부 구조 파악을 위해 챗GPT의 카메라 기능을 썼다. AI가 제공하는 멀티 모달 기능(텍스트, 이미지, 음성, 비디오 등 다양한 유형의 데이터를 동시에 활용하는 기술)을 이용하면 물건을 파악하거나 (진열된 상품이 세제인지 섬유유연제인지 구별하는) 비디오 내용을 시각장애인이 파악하기 좋다. 한국 기술 중에는 네이버나 카카오의 AI 기술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 시각장애인으로서 AI를 활용하면 어떤 장점이 있으며 AI 확산에 따른 리스크는 무엇일까?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장애 당사자들도 AI를 잘 활용하면 문서 작성과 정보탐색 장벽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얼마 전 어떤 서비스 접근성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했는데 챗봇을 활용해 진정서를 쉽게 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장애 당사자 중에는 애초에 컴퓨터나 전자기기를 잘 못 쓰는 사람도 많다. 비장애인과 비교했을 때 원래도 정보격차가 큰데 AI 발달로 AI를 잘 쓰는 비장애인과 잘 못 쓰는 장애인 사이의 정보격차가 급격히 더 벌어질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직업생활을 하는 비장애인은 AI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가는 동안, 직업생활을 일상에서 하지 않는 장애 당사자들과의 기술격차가 심하게 날 가능성이 크다.

21세기의 가장 큰 차별은 디지털 차별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AI 발전 속도가 정보 소외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그러므로 현재 AI가 아직 가치중립적일 때 AI를 통한 디지털 기술 문턱을 모든 이들에게 낮출 필요가 있다."

"모든 구성원을 포용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갖춰진 상태에서 디지털 기술이 도입돼야"

김헌용 교사가 사단법인 무의에서 개최한 LG전자 장애커뮤니티 '볼드 무브'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홍윤희

- 교육부가 AI 교과서 도입을 시도하는 등 교육 현장에서 AI 기술 활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지나치게 성급했다고 본다. 각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했는데 도입하겠다는 비중이 30%에 불과했다. 작년에 장교조 차원의 비판 목소리를 냈다. 가장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AI 교과서가 학교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책과 칠판을 대체하고 교실에 전방위적으로 들어오도록 진행됐다는 점이다.

AI 기술은 성급하게 도입되면 오히려 기술을 잘 쓰는 학교 구성원과 그렇지 않은 구성원 사이의 격차를 벌린다. 학교에는 다양한 장애 당사자를 비롯해 기술 습득 수준도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다. 시각장애 학생과 교사에게 점자 교과서를 제공하는 식으로 맞춤형 교과서도 제공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을 간과했다.

다만 AI 디지털교과서 개발 과정을 보면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우선 디지털교과서 가이드라인에 유니버설 디자인 포 러닝(Universal design for learning)과 웹 접근성을 별도로 서술해 놨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의 접근가능한 소프트웨어 첫 지침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울러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접근성 테스트 랩을 도입한 건 기념비적인 일이다. 이렇게 모든 구성원을 포용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갖춰진 상태에서 디지털 기술이 도입돼야 한다."

- AI나 디지털 기술이 도입된 미래의 수업 모습이나 목표는 어떨 거라고 상상하는지?

"수많은 정보를 이미 웹상에서 얻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런 정보를 수집, 처리, 가공, 생산할 능력은 미래 시민으로서의 권리, 직업인으로서의 필수조건이라고 본다. 나의 경우도 수업이 45분이라면 앞 7분은 구글 클래스룸에서 질의 답변을 하거나, 내가 낸 문제에 학생들이 답을 달면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등으로 이미 쓰고 있다.

특히 외국어 학습에서는 이미 AI 기술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음성인식 기술을 통해 발음 연습, 속도 조절 등 다양한 학습이 가능하다. 쓰기에서도 문법 체크, 문장 구조, 단락 구조 확인하기 등 기술적 측면 연습이 가능하다. 그러나 학교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수많은 정보 중 신호와 소음을 구별하고 정보를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은 단순히 교과서의 디지털 전환 이상이어야 한다고 본다."

김헌용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AI로 인한 정보 소외를 가장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구성원은 다름 아닌 장애 학생과 장애 교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AI 발전 과정에서 학교내 장애 구성원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인적 자원이 전부'인 한국에서 다음 정부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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