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16 06:46최종 업데이트 25.05.16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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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고기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추월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한 해 동안 한국 사람들이 소, 돼지, 닭고기를 쌀보다 더 많이 먹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나부터도 쌀밥을 그리 많이 먹지는 않는 것 같긴 하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고봉밥을 먹던 건 옛날얘기가 됐고, 그릇의 크기가 주발에서 공기로 축소되더니 그나마 이제는 잘 먹지 않는다. 쌀 대신 먹을 밀가루 음식도 많아졌지만, 최근 들어서는 탄수화물 섭취를 꺼리는 문화도 널리 퍼져 있다.

소, 돼지, 닭 중에 어떤 고기를 가장 많이 먹을까? 누구나 짐작하듯 돼지고기 섭취량이 압도적이다. 2023년을 기준으로 한국인 1인당 돼지고기의 섭취량은 약 30kg으로 15kg 정도에 그친 소고기와 닭고기의 두 배였다.


정말 돼지고기 많이들 먹는다. 하긴 당장 주변을 둘러보면 삼겹살집이 참 많다. 한우 맛있는 거야 다 알지만 가격이 부담스럽고, 돼지고기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소고기 못지않은 매력과 풍미가 있다. 그럼, 닭고기는? 동네마다 넘쳐나기로야 치킨집도 무시할 수 없지만 돼지고기는 닭고기와 달리 외식이나 배달 말고도 일상에서 반찬으로 소비하는 양이 꽤 많다. 찌개에서 볶음, 그리고 카레까지. 쓰임새가 다양하기도 하다.

돼지고기는 어떻게 조리해도 맛있지만, 아마도 불판에 구워 먹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것이다. '오늘 고기 먹을까'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메뉴가 바로 삼겹살 구이 아니던가. 노릇하게 잘 구운 삼겹살을 쌈장 찍은 마늘과 함께 상추에 싸 먹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고기는 삶아서 먹는 게 좋다

그런데 가끔은 불에 구운 고기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왁자지껄한 회식 자리에서 고기를 푸짐하게 구웠다 치자. 고온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마이야르 반응이 잘 일어난 삼겹살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불판 밑으로 흘러내리는 막대한 양의 기름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그걸 보노라면 '저렇게 기름진 걸 이렇게 자주 먹어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들고, 찜찜한 기분을 소주 한 잔으로 씻어내다 보면 건강은 더 망가지기 마련이다.

집에서 고기를 구울 때도 번거롭기는 마찬가지다. 집안 가득 퍼지는 냄새는 그렇다 치고 사방에 튄 기름은 뒤처리를 어렵게 한다. 나가서 사 먹는 것보다 돈도 적게 들지만 이것저것 준비 과정이 힘들고 설거지도 어렵다. 기름은 정말 방향을 가리지 않고 튀어 나가는지라 우리 집 식탁 조명등에는 수시로 기름때가 뽀얗게 앉아서 그걸 닦아내느라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요즘 들어 굽기보다 삶아 먹기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식재료라도 조리 방법에 따라 맛과 영양이 달라지는 것은 상식이다. 제대로 삶은 수육은 구운 고기와는 다른 풍미가 있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에 야들야들한 식감이 정말 최고다. 김장철에 보쌈김치와 함께 먹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 수육은 또 얼마나 정겨운가.

무엇보다 삶아 먹는 것이 굽는 것보다 건강에 더 이롭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 되도록 삶아 먹으려 애쓰는 것이다. 게다가 삶은 돼지고기는 막걸리하고 찰떡궁합이기도 하다. 아, 이게 아닌가.

말이 나온 김에, 집에서 돼지고기 삶을 때 쓰는 세 가지 방법을 살짝 공개해 볼까 한다. 살림을 오랫동안 해온 주부님들은 물론이고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은 말 안 해도 다 아는 방법일 테고, 그리 남다른 비법 같은 것도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정리를 해보려 한다. 다 같은 삶은 돼지고기라 할지라도 각각의 버전이 미묘하게 달라 맛과 식감이 재미있다. 이런 사소한 변주가 일상에 재미를 더하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거라 믿는다.

유사 무수분 수육

조리직전의 무수분수육'잡내'를 잡기 위한 노력. 팔각을 몇개 넣어서 향을 보강했다.여운규

많은 주부들의 로망이자 홈쇼핑 단골 아이템인 빨간 철제 냄비는 우리 집에도 있다. 아내는 이걸로 맛있는 솥밥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무수분 수육도 가끔 삶는다. 가마솥처럼 두꺼운 무쇠 냄비의 특성상 따로 물을 넣지 않아도 훌륭하게 수육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거 신기한데. 그럼 나라고 못할 거 있겠나 싶어 어느 날 무수분 수육에 도전해 보았다.

통삼겹살이나 앞다릿살로 덩어리 고기를 준비한다. 물을 따로 넣지 않으므로 냄비 바닥에 파나 양파 등 채소를 잘 깔고 그 위에 고기를 얹는다. 고기의 잡내를 잡는 것이 중요하므로 통마늘 통후추 월계수 잎 등등 향신료를 넣는다. 여기에 생강을 넣거나 된장을 한술 넣기도 하고, 심지어 커피 가루를 넣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그런 것 대신 비장의 무기인 팔각을 몇 개 집어넣었다. 중국 음식에 자주 쓰는 향신료인 팔각은 고기의 잡내를 없앰과 동시에 독특한 향을 더해줘서 매우 유용한 재료다. 한 봉 사서 쟁여두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이렇게 넣고 중약불에서 50분 남짓 익히면 완성된다. 잘 익은 고기가 제법 먹을만하다. 그런데 정말 물을 한 숟갈도 넣지 않았더니 아래쪽 바닥이 약간 타서 눌어붙는 건 어쩔 수 없다. 결국 소중한 냄비에 그을음이 남았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물을 조금 넣는다. 이를테면 유사 무수분 수육인 셈이다. 물 대신 맥주를 조금 넣어도 좋다고 한다.

막걸리 수육

막걸리 한통을 넣어 삶아낸 수육양념장이 정말 맛있다여운규

TV 프로그램에서 왕년의 인기 배우가 소개하는 바람에 유명해진 레시피다.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매우 간단하면서 맛있다는 것. 준비물도 별다른 게 없다. 고기, 막걸리 두 통, 간장과 굴 소스만 있으면 된다.

큰 웍에 고기를 먼저 굽는다. 사방을 둘러 가며 노릇하게 지지면 육즙을 가두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고 일단 보기 좋다. 그런 다음 막걸리 한 통을 콸콸 붓고 간장과 굴 소스를 한 숟갈씩 섞은 다음 끓인다. 노두유가 있으면 좀 넣어도 좋다. 색깔이 진해진다. 끓기 시작하면 불을 좀 줄여 약 30~40분간 졸인다. 가스불은 조절이 필요한데 인덕션을 쓰는 경우 가장 센불로 계속 익혀도 다 졸아들지 않는다. 바닥 면적이 좁은 웍의 특성상 인덕션과는 궁합이 좀 맞지 않는 느낌도 있다.

막걸리가 거의 졸아들었을 때 고기를 건져낸다. 그다음이 중요한데, 남은 국물에 물을 조금 붓고 쌈장과 후추를 섞은 뒤 좀 더 끓이면 소스가 된다. 이 소스 맛이 매우 좋다. 삶아낸 육수가 바로 양념으로 변하는 게 신기하다. 고기 또한 막걸리 향이 스며들어 부드럽고 향기롭다. 어떤 막걸리를 쓰는가에 따라 조금씩 맛과 향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아까 분명히 막걸리 두 통을 준비하라고 했는데 한 통 남은 건 어디에 쓰냐고? 물론 그건 완성된 수육과 함께 마시는 용도다.

장안의 화제, 냉제육

냉제육박찬일 셰프의 레시피. 차게 식혀 얇게 썰어 먹는다여운규

셰프로서의 명성 못지않게 인기 작가로도 잘 알려진 박찬일 셰프가 재작년 여름에 소개해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냉제육을 나도 만들어 보았다. 유명 냉면집에서 나오던 메뉴를 그대로 재현해 평양냉면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조리법이 소개된 직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너도나도 만들어 올린 냉제육 사진이 넘쳐나기도 했다. 같이 먹는 양념장도 달달한 것이 그저 그만이었지만, 무엇보다 만드는 방법이 매우 간단할뿐더러 별다른 부재료를 넣지 않고 수비드 하듯 저온에서 천천히 익혀내는 방법이 독특하다.

껍데기가 붙은 돼지 앞다릿살(미박전지)을 소금과 함께 냄비에 넣고 찬물을 부어 끓인다. 사전에 고기를 담가 피를 뺀다거나 마늘, 생강, 월계수 잎 같은 부재료를 넣어 냄새를 잡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다(박 셰프는 이 대목에서 '믿으세요!'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한 5분 팔팔 끓인 다음엔 바로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 한 시간 이상 그대로 둔다. 그러면 저온에서 고기가 서서히 익는다. 5분만 끓여도 된다고? 역시 믿어야 한다. 의심은 금물이다(그럼에도 나는 한 10분 남짓 끓였음을 고백한다. 믿음이 부족한 탓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둔 고기를 꺼내 흐르는 찬물에 식힌 다음 물기를 제거하고는 랩에 싸서 냉장고에 넣는다. 그렇게 2시간 이상 냉장하면 완성이다. 차가운 고기가 단단해져 있으므로 이걸 얇게 썰어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

찍어 먹는 양념장은 간장 3에 설탕 2, 다진 마늘, 다진 양파, 고춧가루를 각각 1의 비율에다 새우젓을 좀 섞으면 된다. 이게 정말 맛있다. 차가운 냉제육을 얇게 저며서 이 짭짤 달달 매콤한 양념에 찍어 먹으면 감탄이 나온다. 진짜 잡내 같은 게 하나도 없다. 더운 여름에 딱 좋은 음식이다. 냉장고에 넣어둔 소주 몇 잔 곁들여 먹고 나서 냉면으로 마무리하는 거다.

그러고 보니 여름도 머지않았다. 더운 건 생각만 해도 싫지만, 날 더워지면 냉제육이나 만들어 먹자 생각하니 또 견딜 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세상엔 마냥 좋은 것도 없지만 또 싫기만 한 것도 없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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