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13 16:55최종 업데이트 25.05.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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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 선거를 22일 앞두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역 인근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연합뉴스

<세계일보>는 지난 6일 제21대 대선 후보들의 기후·에너지·환경 분야 공약을 짚었는데, 필자가 속한 단체 역시 검증 전문가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평가 결과는 좋지 못했다. 대상에 오른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한덕수 후보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기후를 경제 성장의 수단으로 삼는 데 그쳤다는 평을 받았다. 그나마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명확히 했다는 평가를 받은 후보는 이재명뿐이었다. 기후위기 대응이 차기 정부의 우선 과제라는 데 국민 다수가 긍정하는 여론조사(기후정치바람 5월 7일 발표)에 견주면 의아한 현실이다.

기후위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특별한 시대를 살고 있다. 기후변화가 대중 문제가 된 시점으로 많이 꼽히는 것이 우리가 올림픽을 치르던 1988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과학자 제임스 한센 박사의 미국 의회 청문회 증언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지구온난화는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에 의한)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각 정부 대표와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파리기후협약'이란 이름으로 지구온난화 저지의 마지노선을 그었다.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가능한 한 1.5도 이내로 막아보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아래 그림에서 보다시피 1988년은커녕 2015년 이후에도 세계는 온실가스 배출에 사실상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지금 기온 변화는 1.5도를 넘나들고 있다. 말하자면 공부 한 자도 안 한 채 시험 당일 1시간 전 벼락치기를 앞둔 수험생과도 같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추이미국 환경보호국

가까운 현실로 눈을 돌리면 파리협약에 따른 나라별 과업이 '2030년 감축 목표'의 이행인데, 한국도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하겠다고 했다. 곧 들어설 정부의 임기가 끝날 때면 2030년 목표의 달성 여부가 판가름 난다. 그러니 이번 대선에서 기후는 유권자로서 우리가 후보들에게 요구해야 할 사안 가운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주권자의 대리인 또는 정치인의 과제 입장에서 이 문제를 고찰하면 기후위기야말로 그들의 구실을 확실히 증명할 소재이기도 하다. 알렉시스 토크빌은 정치학의 고전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인간 사회의 자연적 경향들 (각각을) 사전에 정확히 구분하고, (그 가운데) 무엇을 장려하고 무엇을 억제할지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입법자가 갖춰야 할 기교(art)의 전부"라고 쓴 바 있다.

개별 구성원의 이해와 행동이 온실가스 배출이란 집단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악화시켜 온 역사가 있고 그 결과가 파국이라면, 사전에 살펴서 선호를 조절하고 경로를 바꾸는 것은 정치가의 영광스런 과업이 아니겠는가.

이런 바탕에도 불구하고 현실로 눈을 돌리면 기후위기가 이번 대선 의제 가운데 높은 자리에 있지 않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조건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난 4월 24~25일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기후위기 대응은 10대 과제 가운데 꼴찌에 위치했다. 2024년 22대 총선 때 같은 기관의 유사한 조사에서 3.6%로 9위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비율에서 3분의 1로, 순위에서 1계단 밑으로 떨어졌다.

21대 대선 유권자 10대 핵심의제 및 전문가 델파이 조사 결과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그렇다고 그 위에 오른 의제들을 보면 '권력기관 개혁'에서 '저출생 대책 마련'까지 긴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기후위기 관점에서 우리가 아무리 시험 1시간 전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현실의 의제로는 다른 과제가 유권자의 표심과 정부기관의 작동 방식에 더 강한 영향 미칠 것이 예상되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서 하나 주목할 부분은 2위 경제 회복 의제다. 온실가스 감축은 생산활동의 핵심 자원인 에너지를 화석연료로부터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서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게 수반되어야 할 과제다. 이런 변환은 활발한 경제 활동을 요구하는데 이는 곧 사업과 일자리 창출의 계기가 된다는 뜻이다.

대통령, 탄소중립위 공동위원장 맡아야

환경단체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기후정치바람이 4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후 단일의제 대선 TV 토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위기 부정론자인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세계 산업과 금융을 기후 대응 체제로 전환하는 데에도 속도 조절이 이뤄지고 있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인간이 무슨 수를 쓰든 바꿀 수 없는 온실가스 농도 상승과 그에 따른 생명과 재산의 대량 파괴라는 인과 앞에 '체제 전환'이란 종국의 결론이 바뀔 수는 없다. 무탄소 산업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결국 택할 수밖에 없는 '한국 경제의 개편'이라는 과제는 대선 의제 2위와 10위가 만나 1위에 맞먹는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기후솔루션은 최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주최 '새 정부에 바란다' 토론회에서 차기 정부가 집중해야 할 정책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우선 취임 초기 대통령이 탄소중립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서 기후와 경제를 동시에 챙기겠다는 기후 리더십 신호를 명확히 해야 하고, 에너지전환을 이끌어 낼 독립적인 전력규제기관을 구성해야 한다.

이어 2030년 재생에너지 3배 보급 달성을 위한 3가지 정책(3·3·3)으로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 폐지, 해상풍력 인허가 단축, 해상풍력 고도 제한 현실화를 제시했다. 이런 에너지를 바탕으로 반도체 국가산단의 재생에너지 100%(RE100) 체계 구축, 국내 온실가스 최다 배출 산업인 철강 부문을 녹색철강 설비로 전환, 재생에너지 간헐성 문제를 보완하는 에너지 저장장치(ESS) 산업의 집중 육성, 녹색 해운항로 구축을 통한 해운강국 선점 등의 연계 전략을 내놓았다.

경제와 기후의 결합 의제는 '옳은 일'과 '득 되는 일'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차기 정부의 필수 과제이다. 그러나 <세계일보>의 공약 평가에서 전문가들의 지적이 가리키듯 이런 과제를 성장의 수단으로 자리매김해서 기후위기 대응이란 문제를 모두 풀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안일하다.

파리기후협약의 셈으로 우리는 늦어도 25년 뒤(2050년)에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는 들리는 그대로 보통 일이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통령이라면 전환을 위한 시간을 버는 동시에, 질문의 본질인 이 '시대적 과제'가 문명과 역사에 던지는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 숙고함이 옳다.

권오성 / 기후솔루션 미디어팀장권오성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권오성은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 미디어전략팀장 등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LG AI연구원에서 커뮤니케이션 책임으로 일했으며, 현재 기후위기 대응 비영리단체인 기후솔루션에서 커뮤니케이션 일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컴퓨테이셔널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고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데이터저널리즘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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