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14 06:55최종 업데이트 25.05.14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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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생명을 구한다"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사실 절반만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의료는 우리의 생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요? 5회에 걸쳐 진행되는 '의료는 얼마나 중요할까' 시리즈는 사람들의 건강과 의료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의사 파업 시 감소하는 사망률, 고비용 저효율의 미국 의료, 정체된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성과, 급격히 향상된 한국의 기대수명을 사례로 건강과 의료가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를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기술로 의료를 새롭게 이해해 보자고 제안해 보려 합니다.[기자말]
기대수명은 단순히 건강 지표를 넘어 사회의 번영 혹은 쇠락을 반영한다. 자료사진.연합=OGQ

"지금 태어나는 우리 손주는 150살까지 산다는데... 잘 살 수 있겠죠?"

몇 년 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제약회사 광고다. 당시 기대수명이 가장 높다는 일본도 아직 84세 남짓이었고, 계속 증가하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기대수명은 이듬해 감소했다. 기대수명이 높아지는 속도는 점점 더뎌지는데, 도대체 '150'이라는 숫자에 깃든 바람은 무엇일까.

미국의 두 대학 교수가 인간 수명 150세를 두고 내기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진화론 관점에서 노화를 연구하는 생물학자인 스티븐 오스태드는 '2150년까지 최고 수명이 150세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공중보건학자인 스튜어트 올샨스키는 '기대수명은 의학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기에 그럴 일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2000년 시작된 이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정보 기술(IT) 산업을 통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연구비를 투자하면서 '항노화'와 '영생'을 위한 산업이 팽창하고 있다. 150세 시대를 기대한 제약회사에 기대수명이 이윤의 원천일 수 있겠지만, 우리의 관심은 올샨스키가 주장한 사회적인 것으로서의 기대수명에 있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 했듯 기대수명은 단순히 건강 지표를 넘어, 사회의 번영 혹은 쇠락을 반영한다.

형평성 관점에서 건강을 고민하는 영국의 의사 마이클 마멋은 2017년 건강형평성연구소(IHE) 보고서를 통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영국의 기대수명 증가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보니, 과거에는 여성의 출생 시 기대수명이 약 5년마다, 남성은 3년 반마다 1년씩 늘어났던 반면, 2010년 이후부터는 그 속도가 각각 10년과 6년으로 두 배 가까이 늦춰졌다(마멋 지표 2017 - 건강형평성연구소 브리핑).

20세기 후반 인구집단 건강의 뚜렷한 향상은 사회경제적 여건의 개선 덕분이라는 공중보건의 테제를 떠올리면, 아래 그림과 같이 10년 넘게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정체 중인 영국의 기대수명 증가세 둔화는 어쩌면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멋은 기대수명 증가 속도의 둔화가 단순히 생물학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가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영국의 기대수명이 뒤처지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걱정했다. 이는 기대수명 증가 속도의 둔화라는 '긴급한 사안'이 우연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국 실질 GDP 추이영국재정연구소

긴축과 기대수명, 그리고 절망의 죽음

마멋의 보고서가 발표되자 루신다 히암 박사와 동료들은 그럼에도 기대수명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일시적인 현상쯤으로 치부하며 낙관한 영국 보건부와 정치인들의 안일함을 비판하고 영국과 웨일스의 기대수명이 왜 정체됐는지 물었다.(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기대수명이 '정체'하고 있나?)

이들은 영국의 보건과 복지 재정의 만성적 부족,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정부의 긴축 정책, 브렉시트로 인한 재정 압박 등이 기대수명 정체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더욱이 기대수명 정체는 고령 여성과 저소득층 등 사회경제적으로 더욱 불리하고 취약한 사람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나타난 불평등의 결과다. 그렇기에 히암 박사와 동료들은 이 문제의 원인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철저하게 따져 묻고 조사하자고 촉구했다.

영국의 기대수명이 정체 조짐을 보이던 2010년은 신노동당에서 보수-자유민주당 연합으로 정권이 교체된 시기와 겹친다. 보수 연합 정부가 집권하면서 긴축을 시작했고, 신노동당 정부에서 도입한 건강불평등 감소 정책은 대부분 중단됐다. 국민보건서비스(NHS) 예산도 삭감했고 이는 곧바로 건강 지표의 악화로 이어졌다(영국 신노동당의 건강불평등 전략이 영아사망률의 지리적 불평등에 미친 영향).

긴축 전략 가운데 하나는 민간위탁이다. 영국의 보수 연합 정부는 2012년 보건복지법을 제정하면서 지방 정부가 의료서비스를 민간에 위탁할 수 있도록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이 결정은 결론적으로 의료의 질을 떨어뜨렸고 치료 가능 사망률을 높였다(2013-2020년 의료 서비스의 민간위탁과 치료 가능 사망률).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의 저자 데이비드 스터클러는 사회 지출을 줄이는 긴축 조치가 두 가지 경로로 작동한다고 설명한다(긴축 정책과 건강: 영국과 유럽에 미치는 영향). 첫 번째 경로는 직접적인 보건의료의 긴축 효과다. 조세로 운영되는 NHS의 예산이 삭감되면 사람들은 병원을 이용하기 전에 더 오래 대기해야 하고, 치료 접근성과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 경로는 '사회적 위기 효과'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빈곤해지거나 집을 잃는 사람들이 생기고,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중독에 빠질 위험이 늘어난다. 경기침체와 경제적 불안정 모두 우울증 환자를 늘리고, 자살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 - 불황, 예산전쟁, 몸의 정치학까치

더 약한 사람에게 더 가혹한 '절망의 죽음'

다만 마멋은 이 변화의 원인을 긴축 정책에 한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건강 증진 둔화의 사회적 원인). 긴축이 원인이라면 왜 그리스가 영국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고, 독일은 영국을 제외한 어떤 나라보다 상황이 나쁠까?

정체하는 기대수명에는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원인이 있고, 그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에 따라 생명은 단축되거나 연장된다. 1980년대 탈산업화와 대규모 실업을 동반한 산업 정책이 영국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신노동당이 1997년 집권하면서 건강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추진한 일련의 공공정책은 영국 전체 평균과 가장 빈곤한 20% 지역 간 기대수명 불평등을 줄였다.

약물과 알코올 중독, 자살, 만성 간질환 등 '절망의 질병'은 사망률을 높인다. 이 절망은 경제적으로 곤란한 지역에서,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사람들의 삶의 조건 악화는 일련의 정치적 결정 끝에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일하는 이들의 사망률 악화로, 영국 기대수명 정체로 이어졌다( 22개 고소득 국가와 비교한 1970-2016년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기대수명과 연령별 사망률 추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에서 약물중독과 알코올 중독, 자살, 만성 간질환과 같은 '절망의 질병'으로 사망하는 청년, 장년층이 늘어나면서 기대여명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영국의 기대수명 증가 속도의 둔화가 특히 여성에서 더욱 두드러진다는 사실도 이 문제를 단지 긴축의 문제로 축소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영국 여성의 기대수명이 1970년대 초부터 다른 고소득 국가 사이에서 꾸준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유로 1925년 무렵 출생한 영국 여성들의 높은 흡연율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이들 여성은 더 이른 시기에 더 많이 흡연을 시작했고, 그 누적된 영향이 기대수명을 끌어내렸다.

지금도 기대수명 증가 속도는 계속해서 정체되고 있다. 전 세계 질병 부담을 추적한 데이터인 세계질병부담(GBD)의 연구 결과는 심혈관질환과 암 관련 사망률 감소가 1990~2011년까지 지속된 기대수명 증가의 주요 동력이었다면, 2011년 이후부터 이 감소 폭이 둔화되거나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1990-2021년 유럽의 기대수명 변화). 실상 흡연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어 다행이지만, 고혈압, 콜레스테롤, 비만, 신체활동 부족, 식이 위험은 악화되거나 개선되고 있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

한편 다른 국가와 유사하게 영국에서도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사망을 경험하지만, 가장 빈곤한 지역에서는 그 결과가 반대로 나타난다. 긴축 정책 시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 가장 가난한 20% 지역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많은 초과사망이 발생했다. 이 결과 역시 불평등 렌즈로 들여다볼 때라야 이해 가능하다.

가난한 여성은 가난한 남성보다 복지정책에 더 많이 의존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보장 수급 비율이 높고, 공공부문 고용 비율 역시 높다. 긴축으로 인한 사회복지지출 감소는 고령의 단독가구나 한부모 가정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미 가난한 지역의 취약한 여성들에서 긴축의 영향이 더 크다면, 이런 효과가 주효했을 수 있다(긴축정책의 부담을 짊어지다: 영국의 남녀 사망률 변화 비교).

경제적 어려움이 건강과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떠올려 보노라면, 그 영향이 가난하거나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더 크게 나타날 것임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무상의료와 더 넓은 돌봄을 보장하기로 했던 NHS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예산이 투입되지 않는 문제를 '국영의료체계' NHS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다.

더 약한 사람들이 기대어 있던 버팀목이 무너지면서 기대여명 증가가 정체하고 있는 영국의 상황을 '의료'의 문제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불로초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의과학의 진취적 미래 속에서 '절망의 죽음'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현재야말로 건강을 말하는 이들이 직면한 가장 큰 실패가 아닐까?

사회적인 것으로 건강

모든 위기는 연쇄적으로 여파를 일으키며 악순환한다. 사회적 조건이 열악하고 사망률이 높은 곳에서 그 불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와 같은 정치의 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정치적 위기는 사회로부터 존중과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모든 경험과 감각의 결과다.

사람들에게 다시금 신뢰를 얻고 정치적 안정을 되찾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의 삶과 건강을 좀 더 성실하게 잘 돌보는 일이다. 여기에는 건강을 의료로 좁히지 않기, 정치적 결정이 건강으로 결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그럼으로써 더 많은 자원을 더욱 너른 사회 제반 제도와 서비스에 재분배하기와 같은 노력이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영국 기대수명의 정체가 꼭 NHS가 처한 어려움 때문은 아니라는 점을 강변한다. 건강은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구조적 조건에 관한 문제다. 사람들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공공정책의 예시로 흔히 긴축재정이 등장한다. 그러나 긴축재정뿐일까? 사회복지 재정 악화, 선별적 복지를 강화하는 각종 정책,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공공 권리의 축소 모두 사회구조적 조건에 해당한다.

서론의 '150살' 논쟁을 떠올려 본다. 누군가가 150살까지 사는 사회가 도래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그 반대편에서 조기에 사망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로,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의 구조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누군가의 불건강, 누군가의 짧은 수명, 누군가의 고통이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수명을 넘어, 사회적인 것으로 건강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ealth Socialist Club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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