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 - 불황, 예산전쟁, 몸의 정치학
까치
더 약한 사람에게 더 가혹한 '절망의 죽음'
다만 마멋은 이 변화의 원인을 긴축 정책에 한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건강 증진 둔화의 사회적 원인). 긴축이 원인이라면 왜 그리스가 영국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고, 독일은 영국을 제외한 어떤 나라보다 상황이 나쁠까?
정체하는 기대수명에는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원인이 있고, 그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에 따라 생명은 단축되거나 연장된다. 1980년대 탈산업화와 대규모 실업을 동반한 산업 정책이 영국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신노동당이 1997년 집권하면서 건강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추진한 일련의 공공정책은 영국 전체 평균과 가장 빈곤한 20% 지역 간 기대수명 불평등을 줄였다.
약물과 알코올 중독, 자살, 만성 간질환 등 '절망의 질병'은 사망률을 높인다. 이 절망은 경제적으로 곤란한 지역에서,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사람들의 삶의 조건 악화는 일련의 정치적 결정 끝에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일하는 이들의 사망률 악화로, 영국 기대수명 정체로 이어졌다(
22개 고소득 국가와 비교한 1970-2016년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기대수명과 연령별 사망률 추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에서 약물중독과 알코올 중독, 자살, 만성 간질환과 같은 '절망의 질병'으로 사망하는 청년, 장년층이 늘어나면서 기대여명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영국의 기대수명 증가 속도의 둔화가 특히 여성에서 더욱 두드러진다는 사실도 이 문제를 단지 긴축의 문제로 축소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영국 여성의 기대수명이 1970년대 초부터 다른 고소득 국가 사이에서 꾸준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유로 1925년 무렵 출생한 영국 여성들의 높은 흡연율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이들 여성은 더 이른 시기에 더 많이 흡연을 시작했고, 그 누적된 영향이 기대수명을 끌어내렸다.
지금도 기대수명 증가 속도는 계속해서 정체되고 있다. 전 세계 질병 부담을 추적한 데이터인 세계질병부담(GBD)의 연구 결과는 심혈관질환과 암 관련 사망률 감소가 1990~2011년까지 지속된 기대수명 증가의 주요 동력이었다면, 2011년 이후부터 이 감소 폭이 둔화되거나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0-2021년 유럽의 기대수명 변화). 실상 흡연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어 다행이지만, 고혈압, 콜레스테롤, 비만, 신체활동 부족, 식이 위험은 악화되거나 개선되고 있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
한편 다른 국가와 유사하게 영국에서도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사망을 경험하지만, 가장 빈곤한 지역에서는 그 결과가 반대로 나타난다. 긴축 정책 시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 가장 가난한 20% 지역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많은 초과사망이 발생했다. 이 결과 역시 불평등 렌즈로 들여다볼 때라야 이해 가능하다.
가난한 여성은 가난한 남성보다 복지정책에 더 많이 의존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보장 수급 비율이 높고, 공공부문 고용 비율 역시 높다. 긴축으로 인한 사회복지지출 감소는 고령의 단독가구나 한부모 가정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미 가난한 지역의 취약한 여성들에서 긴축의 영향이 더 크다면, 이런 효과가 주효했을 수 있다(
긴축정책의 부담을 짊어지다: 영국의 남녀 사망률 변화 비교).
경제적 어려움이 건강과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떠올려 보노라면, 그 영향이 가난하거나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더 크게 나타날 것임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무상의료와 더 넓은 돌봄을 보장하기로 했던 NHS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예산이 투입되지 않는 문제를 '국영의료체계' NHS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다.
더 약한 사람들이 기대어 있던 버팀목이 무너지면서 기대여명 증가가 정체하고 있는 영국의 상황을 '의료'의 문제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불로초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의과학의 진취적 미래 속에서 '절망의 죽음'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현재야말로 건강을 말하는 이들이 직면한 가장 큰 실패가 아닐까?
사회적인 것으로 건강
모든 위기는 연쇄적으로 여파를 일으키며 악순환한다. 사회적 조건이 열악하고 사망률이 높은 곳에서 그 불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와 같은 정치의 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정치적 위기는 사회로부터 존중과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모든 경험과 감각의 결과다.
사람들에게 다시금 신뢰를 얻고 정치적 안정을 되찾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의 삶과 건강을 좀 더 성실하게 잘 돌보는 일이다. 여기에는 건강을 의료로 좁히지 않기, 정치적 결정이 건강으로 결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그럼으로써 더 많은 자원을 더욱 너른 사회 제반 제도와 서비스에 재분배하기와 같은 노력이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영국 기대수명의 정체가 꼭 NHS가 처한 어려움 때문은 아니라는 점을 강변한다. 건강은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구조적 조건에 관한 문제다. 사람들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공공정책의 예시로 흔히 긴축재정이 등장한다. 그러나 긴축재정뿐일까? 사회복지 재정 악화, 선별적 복지를 강화하는 각종 정책,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공공 권리의 축소 모두 사회구조적 조건에 해당한다.
서론의 '150살' 논쟁을 떠올려 본다. 누군가가 150살까지 사는 사회가 도래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그 반대편에서 조기에 사망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로,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의 구조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누군가의 불건강, 누군가의 짧은 수명, 누군가의 고통이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수명을 넘어, 사회적인 것으로 건강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