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퀴어문화축제 슬로건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서명에조차 담기지 않은 이 답은 잠시 제쳐두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 보자. "동성애 홍보장"이라니 이 난데없는 표현은 도대체 무엇인가. 만약 아트하우스 모모에 이성애 관계가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를 걸면(그렇지 않은 상업 영화를 찾기 힘든 면이 있는데) 이화여대는 "이성애 홍보장"이 되는 걸까. 이 극장을 거쳐 간 영화 중에는 범죄물과 누아르도 있었는데 그때는 학교가 "폭력의 홍보장"이었나.
동성애를 홍보한다는 건 도대체 뭔가. 동성애를 권유하는 걸까. 동성애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해도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걸까. 온 세상이 거대한 이성애 홍보장인 나라에서 동성애는 그러면 안 되나.
또한 "어린 학생들의 교육 공간"(자신을 어린 학생으로 지칭하는 대학생이 거의 없다는 면에서 작성한 사람의 연령대를 추측할 수 있다)이라는 건 대체 뭔가. 요즘은 고등학생에게도 "어린 학생"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마치 미성숙하고 외부의 영향을 받기 좋은 대상을 묘사하는 표현처럼 보인다.
"동성애 홍보장"을 마주한 "어린 학생"들이 동성애자 될 거란 뜻일까. 하지만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진지하게 탐구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지점에 있어 모두 어리다. 그건 나이나 학력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노년의 나이에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닫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청소년기에 이미 깊은 성찰을 마치고 단단한 정체성을 확립한다.
이화여대와 아트하우스 모모는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혐오 집단의 이화여대를 향한 항의가 담긴 서명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함량 미달이다. 주장하는 바의 근거도 부정확하고 일단 한국퀴어영화제를 막아달라는 것을 제외하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사실상 떼를 쓰는 수준이다. 이런 식의 요구를 수긍하는 건 일단 자존심의 문제다. 이화여대 총장실과 학교 본부에는 그런 게 없나?
이들이 혐오 집단의 요구를 들어준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나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제는 치워버려도 그렇게까지 손가락질받지 않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어마어마한 힘과 권력이 있는 게 아니어서 손해 볼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 보잘것없는 이들만 치우면 당장의 소란이 사라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화여대도 아트하우스 모모도 분명히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무엇이 예술이고 교육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예술도 교육도 아닌 건 분명히 알고 있다. 편견, 차별, 증오, 배제 그리고 검열이다. 이들은 예술과 교육의 내용이 될 수 없다. 예술과 교육의 미명하에 행해질 수도 없다.
기실 예술과 교육의 역사는 저런 것들과 투쟁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 권력이 사람들을 가두고 구분 짓고 아무것도 모를 것을 명령하며 서로를 미워하도록 만들려고 할 때, 예술과 교육은 이에 저항해 왔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왜 미국의 대학들이 예산 삭감을 무기로 협박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굴복하지 않고 있겠나.
대학과 예술 극장이 혐오와 배제의 요구에 굴복하고 손쉽게 소수자를 내쳐버린다면 이는 자신들이 가진 아주 핵심적인 정체성을 스스로 허무는 꼴이 될 것이다. 이화여대와 아트하우스 모모는 정말 그걸 원하는가. 스스로 돌아보길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