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디지털 트윈을 활용한 가상 조선소 '트윈포스'를 통해 조선소 공정 상황을 실시간으로 살펴보고 있다. 조선업 재건을 내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자국의 낙후한 인프라, 숙련 인력 부족 등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한국의 스마트 조선소 기술을 눈여겨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중공업
1941년에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전쟁의 주도권을 쥔 일본은 1942년의 미드웨이해전 패배로 항공모함 대부분을 잃고 해군 주력을 상실했다. 이로 인해 전세는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 미국 조선업이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평은 과하지 않다.
조선업의 영광을 계기로 1945년 이후의 세계질서를 이끌어온 미국은 지금은 정반대 처지에 놓여 있다. 영국 해운조사기관인 클락슨리서치가 지난 1월 세계 언론에 알린 2024년 세계 선박 수주량(누계)은 6581만 톤(CGT)이다. 선박의 종류나 형태를 감안해 톤수를 보정(Compensated)하는 CGT 개념으로 선박 톤수를 환산한 수치인 6581만 톤 중에서 중국의 수주량은 70%인 4645만 톤이고 한국은 17%인 1098만 톤이다. 나머지 13%는 일본 등이 차지했다.
미국 조선업이 한국과 중국에 역전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의 세계사 흐름을 감안하면 꽤 역설적이다. 조선과 청나라는 서유럽과 미국이 동양으로 몰려오는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인해 미증유의 위기를 겪었다. 이 세계사적 조류는 서선(船)동점으로 표현해도 될 정도로 서양 함선 및 서양 선박의 침범을 수반했다.
전통적인 세계 무역로인 초원길과 비단길로부터 소외돼 있었던 서유럽과 미국은 전 세계 바닷길을 돌아다니며 아시아·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때 이 국가들이 나머지 세계를 굴복시킨 핵심 수단 중 하나는 해상에서 대포를 쏘아대는 함포외교였다.
이런 데서도 나타나듯이 서방세계의 선박 건조 능력과 해군 군사력은 이들이 19세기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세계질서를 지배하는 밑바탕이 됐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도 이에 편승해 강화도 앞에서 함포를 발사하며 조선을 굴복시켰다. 또 일본은 1880년대 이후의 집중적인 해군력 강화에 힘입어 1894년의 청일전쟁과 10년 뒤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과 중국이 서양열강의 해양 역량에 밀려 고초를 겪던 그 시절, 미국은 그런 능력을 발판으로 1898년부터 2년간 하와이를 비롯한 태평양 주요 섬들을 강점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뒤에는 워싱턴해군군축조약(1922)과 런던해군군축조약(1930)을 통해 자국이 태평양에서 최강의 해군력을 갖도록 만들었다.
조선업이 거의 몰락한 미국의 고민
그것을 가능케 했던 미국 조선업이 지금은 거의 몰락해 있다. 이는 고비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못된 산업 전략에도 기인한다.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한종길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지난 2월호 <해양한국>에 기고한 '타산지석-미국과 일본 조선업의 실패'에서 "미국 조선업계가 택한 선택은 군함을 주력으로 하고, 상선 분야는 세계 시장이 아닌 '미국 건조, 미국 소유, 미국 선원'의 3박자를 갖춰야만 하는 존스액트(Jones Act)에 의해 외국 기업의 참여가 완전 배제된 미국 내항해운이 필요로 하는 일부 상선을 건조하는 것이었다"고 기술한다.
군함 생산에 주력하며 자국 상선을 보호하는 전략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잘못된 전략으로 판명됐다. 미국 업계가 군함 생산에 주력한 것은 이들이 자국 국방예산의 범주에 갇히는 원인이 되고 기술혁신보다는 로비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 위의 3박자를 갖춘 선박만이 미국 내에서 운항할 수 있게 하는 존스법은 트럼프 행정부의 산업정책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는 미국 조선업이 제2차 대전 뒤에 경쟁력을 잃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국의 세계 지배력은 일차적으로 핵무기에 기인하지만, 해양 패권에도 상당 부분 기초한다. 세계 각국이 군침을 흘리는 북극해 개발에 접근하자면, 보다 더 고도의 해양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미국은 선박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수리하는 것마저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용접 기술도 딱한 상황이다. 이런 상태로 북극해를 개발하고 대만을 보호하고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제지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행여 미국 잠수함이 폭격이라도 받으면 이를 수리하는 데만 몇 년을 허비할 수도 있다.
관세와 주한미군 방위비를 매개로 한국을 압박하는 트럼프도 조선업 분야에서만큼은 공손하게 나온다. 미국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 미국은 우주'선'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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