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록 습지와새들의친구 운영위원장은 대명여고 재직 당시 환경축제를 열었고, 이 대명환경전은 30년 넘게 이어오면서 전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학생중심 행사가 되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제26회 대명환경전 행사 중 박 운영위원장의 낙동강하구 보전운동을 응원하기 위한 학생들의 퍼포먼스 장면.
습지와새들의친구
첫 번째 천막농성을 하던 2019년은 박 운영위원장이 30년 넘게 몸담았던 교직에서 물러난 해였다. 그는 농성하다가 학교 가서 아이들과 눈물 흘리며 퇴임식을 하고는 돌아와서 다시 농성을 했다. 세 번째 천막농성 때는 100일 철야농성 후 삭발식과 오체투지까지 할 정도로 일상을 온통 쏟아 부었다. 그런 그에게 잔인한 질문을 했다. 대저·엄궁·장낙대교 저지투쟁도 을숙도대교처럼 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는 "대저대교는 진다는 생각을 안 한다"면서 말을 이었다.
"상식을 입증할 구체적인 모든 근거가 다 있는데도 만약에 진다고 하면 이건 우리 사회에 어떤 희망도, 상식도 통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길 확률을 물으면 "20%"라고 답한단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말 돈에 미친 사회, 돈이 모든 걸 잡아먹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법부도 다르지 않겠으나 그래도 양심적인 재판부를 만날 확률은 1/5은 되지 않겠느냐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4년 7월 현재, 국내 등록 건설업체수는 8만 5000여 개. 이 기업들이 계속 굴러가기 위해서 "개발 개발 개발 개발의 구호 아래 온 국토가 갈리어 가고 있다"면서 그가 괴로워했다.
배부른 세상을 살다가는 기성세대의 미안한 마음으로
암울한 현실인데 그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생태운동의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 어마무시한 잔혹한 세월 속에서도 봄이 되면 제비가 날아오고 겨울이면 어김없이 고니를 만납니다. 이런 새들의 모습을 알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우리마저 이들을 외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알기에 양심상 그만두지 못 하는 거겠죠. 더해서 배부른 세상을 살다가는 기성세대의 일인으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이렇게 손을 놓지 못 하는 이유일 겁니다. 또한 새를 만나는 일은 파괴되는 자연을 만나는 아픔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저 새들이 건네주는 자연의 아름다움, 대자연의 기운이 있기에 계속 새를 만나러 가고 있습니다."
그가 잊지 못 하는 새로, 2013년 <위대한 비행>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된 큰뒷부리도요 얄비와의 만남을 소개했다. 2008년 4월 낙동강하구에서 다리에 흰색과 노랑, 빨강, 파랑, 노랑색 등 4개 가락지 표식을 단 얄비를 처음 만났단다. 개체 식별을 위해 나라별로 다른 색 표식을 다는데 그때 처음 흰색 표식 새를 만났다고 한다. 흰색은 뉴질랜드에서 온 새라는 뜻. 직항 비행기로도 12시간이 걸리는 1만 킬로미터를 300g 정도의 작은 새가 일주일을 꼬박 날아온 거였다.
"정말 가슴 떨리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이 작은 새가 일주일 밤낮을 쉬지 않고 날아 태평양을 건너왔다는 사실이…."
그의 감격은 얄비가 알래스카 툰드라로 갔다가 8월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간 뒤 다음해 4월 낙동강에 다시 나타나면서 더 커졌다. 그렇게 얄비는 4년 연속으로 낙동강하구를 찾았다. 5년째인 2012년 환영식을 준비했지만 아쉽게도 그해에는 만나지 못했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다 비슷해 보이는 새들을 어떻게 구분해서 개체수를 세는 걸까. 그가 교사 출신다운 답을 내놓았다.
"처음 반 아이들을 만나면 누가 누군지 모르지만 같이 살다 보면 나중에는 목소리만 들어도, 또 뒤통수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잖아요. 새들도 자꾸 보다 보면 누가 누구인지 익숙해지는 건 똑같습니다."
소송 준비로 낙동강하구를 직접 가지 못한 아쉬움이 컸는지 인터뷰가 끝나고 박 위원장이 사무실 뒤편에 있는 초량 이바구길을 안내했다. 1892년에 지어졌다는 교회를 비롯해 세월의 정취가 묻어나는 길을 걸으면서 그는 은은하게 퍼져오는 꽃향기를 따라가 꽃나무를 찾고, 나무에 돋은 초록 새순들을 세심하게 살폈다. "새도 자연도 함께 친구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는 그는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자유로웠다. 그래서 보고 싶었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아이들도 가면 행복해하지 않는 아이들이 없다는 낙동강하구가, 한 번 마주치면 1년 동안 아프지 않고 행운이 온다는 전설이 있다는 고니의 맑은 눈이. 그가 금쪽같은 우리 아이들에게 꼭 남겨주고 싶다는 이 자연의 아름다움이 지켜지는 날들이. 꼭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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