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09 15:39최종 업데이트 25.05.0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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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성장률이 역대 처음으로 4분기에 걸쳐 0.1% 이하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월 20일 한은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통계가 존재하는 1960년 이후 우리나라 분기 성장률이 이렇게 장기간 0.1% 이하에 머문 적은 없었다. 저출생·고령화와 혁신 부족에 따른 생산성·효율성 저하 등으로 경제적 '실력'인 잠재성장률 자체가 낮아진 것이 요인으로 꼽힌다. 사진은 이날 서울 명동거리 한 가게에서 폐점 세일을 안내하는 모습.연합뉴스

지난 1분기(1~3월) 경제 성적표가 발표됐다. 충격적이게도 2025년 1분기 우리나라 경제는 그 전 분기(2024년 10월~12월)보다 0.2% 쪼그라들었다. 좀 더 길게 보면, 지난 1년 내내 매 분기 경제성장률이 0.1% 이하를 기록했다.

이는 전례 없는 장기 침체다. 우리나라 경제는 경제위기를 겪더라도 1, 2분기 지나면 곧바로 튀어 오르곤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도 그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더 멀리 가서,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 1997~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잠시 한두 분기 마이너스 성장하긴 했지만, 금세 크게 반등하곤 했다.


앞으로가 문제인데 긍정적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말 정부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2.2%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가, 올 1월 1.8%로 낮췄다. 2월에 들어서 KDI와 한국은행도 각각 1.6%, 1.5%로 전망치를 낮췄다. 그리고 4월 IMF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0%로 전망했다.

이런 국제기구의 비관적 전망은 더 심각한 경고로 읽힌다.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신뢰가 하락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월가의 신용평가사 일부가 우리나라 국가 신용도 하향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우리 기업은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해야 하고, 심하면 아예 자금조달이 막힐 수도 있다.

작금 경제위기의 원인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많은 언론이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이나 우리나라 정치적 불안을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이는 고민 없는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직접적 원인은 내수 부진이다. 올 1분기 해외부문(순수출=수출-수입)은 0.3%p 증가했다. 반면, 내수는 0.6%p 마이너스를 기록했다(아래 모두 전기대비). 내수 중에서도 건설투자가 3.2%, 설비투자가 2.1%, 그리고 민간소비가 0.1% 각각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외환(外患)이라기보다는 내환(內患)이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이 와중에도 정부는 지출을 전기 대비 0.1% 축소했다는 사실이다. 경제에 충격이 올 때, 정부가 완충 활동을 하는 것은 보편적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어 보인다. 일단은 대통령 부재 상태라 그러려니 하자.

모든 문제는 부채로부터

내수를 급락시킨 가장 중요한 원인은 거대한 가계부채(자영업 부채 포함)이다. 우리나라 가계대출 잔액은 1927조 원(2024년 말)이었고, 자영업자 대출은 1120조 원을 넘어섰다. 가계 대출 중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약 1124조 원)이다. 가계는 집을 사느라 빚을 졌고, 자영업자는 코로나 때부터 장사가 잘 안 돼 빚이 늘었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연결돼 있다. 가계는 집을 사느라 진 빚의 원리금을 갚느라 소비를 줄였다. 정확한 통계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개략적으로 계산해보자. 2024년 가계 대출금에 대한 연평균 금리를 5%라 하면 이자부담만 약 96조 원에 이른다. 여기에 이자와 함께 상환하는 원금을 더하면, 가계의 부담은 이것의 몇 배로 증가한다. 다른 곳에 돈 쓸 여력이 없어진다.

2024년에 여행·외식·숙박이 17.6%, 여가·문화생활이 15.2%, 의류·신발 소비가 14.9% 감소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이는 자영업이 집중된 업종이기도 하다. 자영업 영업 부진은 빚으로 메워온 듯하다. 더구나 코로나 전파를 막기 위한 영업 제한으로 타격을 받을 때에도, 우리나라 정부는 보상한 것이 아니라 돈을 빌려줬다. 그 빚에 대한 상환 유예기간이 지나고, 이제 갚으라고 독촉한다.

가계의 빚은 이제 산업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 하락의 일등 공신은 부동산 투자와 기업의 설비투자 급감이었다. 아파트 광풍이 불자, 더 오를 것이란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너도나도 빚내서 집을 샀다. 부동산 개발업자는 이 틈을 타고 거의 모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파트를 사줄 사람이 없다. 이미 빌린 돈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닌가. 분양이 안 되자, 부동산 개발업자들도 급하게 투자를 줄였다. 그동안 부동산 업자들이 금융권(특히 제2금융권)에서 빌린 채무도 상환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내수를 지향하는 일반 기업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일반 가계가 빚에 짓눌려 소비를 줄이자, 우리나라 내수 산업의 판매도 하락했다. 이번 경제 성적표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한 부분이 '재고'였다. 올 2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73.1%에 머물고 있다. 재고가 쌓여가고, 이미 도입해 놓은 설비의 27%가 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설비투자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 설비투자도 하락했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나라 경제 침체는 내수 부족 때문이다. 이 내수 부족의 가장 큰 원인은 가계의 과도한 빚이고, 이 빚은 부동산 거품의 결과이다.

정부는 아파트 가격이 오르길 바라나?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연합뉴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 정책은 여전히 '빚내서 집 사라'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부(금융위원회)는 이름도 생소한 '지분형 주택담보대출'이란 제도를 들고나왔다. 가령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자기 돈 1.8억 원에 살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다.

어떻게 이런 마법이 가능할까? 관심 아파트 시세가 10억 원이라 하자. 이 집을 지분형 주택담보대출로 사겠다 하면, 주택금융공사가 최대 4억 원(40%)를 투입하고, 그만큼의 지분(소유권)을 갖는다. 집을 사는 사람은 남은 6억 원을 조달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은행 대출을 최대 70%(4.2억 원)까지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남은 1.8억 원은 구매자가 지불하게 한다는 제안이다. 단, 집을 사는 사람은 주택금융공사 지분의 연 2%(800만 원)를 임대료로 내야 한다.

이 제도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향후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렇게 산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이 차액은 정부와 매수자가 지분 비율로 나누고, 하락하면 그 하락분 모두 주택금융공사가 부담하도록 하자고 한다. 한 마디로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이득이고, 하락해도 손해 볼 것은 없는 구조이니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긴 하다.

누구 좋으라고? 금융위는 청년층과 신혼부부 등 자금 여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주거 안정을 돕고자 한다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나는 이 취지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겠다. 주거 취약 계층의 주거 안정을 돕는 더 좋은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주택금융공사는 2% 금리로 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실토하고 있다. 이렇게 저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면, 그 돈으로 직접 양질의 사회적 주택을 짓고 장기 임대할 수 있다. 이때 임대료는 아파트 원가의 2%면 된다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이 제안은 미분양 아파트를 무주택자에게 떠넘기기 위한 전략이다. 그 돈은 아파트 구매자와 주택금융공사의 '빚'으로 충당된다. 이것이 아파트 가격 하락을 막을 것이니, 빚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크게 불어날 것이다. 빚으로 나라 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와중에, 더 많은 빚을 내서 아파트 가격을 부양하고 건설사를 살려야 한다는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거의 모든 경제위기 또는 금융위기는 과도한 빚이 원인이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장기간의 경기침체였다. 좀 더 가까운 사례로 1991년 부동산과 주식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30년 이상 정체해 있는 일본이 있다.

금융위기 혹은 경제위기가 터지면, 대개의 정부는 거대 기업과 은행을 구제하려 든다. 반면 빚으로 허덕이는 개인을 구제하려는 그 어떤 정책도 시행된 적이 없다. 은행과 거대 기업의 파산은 개인의 파산보다 경제에 더 큰 충격을 끼친다는 이유일 것이다. 금융위의 지분형 주택담보대출 제안 또한 이런 부류의 발상이다. 아파트 가격이 내려가지 않고 건설사가 살아야, 거기에 밑천을 댄 금융권도 사니까. 그런데 빚을 진 개인 전체를 모두 합산해도 그런가?

빚에 허덕이는 개인'들'을 방치하면, 경제는 장기간 침체에 빠질 위험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 그리고 '예외적으로' 오랫동안(약 10년) 위기 이전의 고용 수준을 달성하지 못했던 미국도 그랬다.

1991년 이후의 일본은 가장 극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1980년 말 일본은, 작금의 우리나라처럼, 거대한 자산 거품이 발생했다. 그런데, 1991년 초를 기점으로 부동산과 주가 모두 급락했다. 그 이후 일본의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린다(1991년부터 2023년 사이 일본의 GDP는 연평균 1.06%로 성장했다).

일본이 장기 침체를 겪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설명이 있을 수 있지만, 소위 '대차대조표 불황' 이론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리처드 C. 쿠 저, <대침체의 교훈>을 읽어보시라). 이 이론을 요약해보자. 거품이 발생할 때 일본의 개인과 기업 모두 엄청난 빚을 내어 부동산과 주식을 샀다. 그런데 갑자기 이 자산들의 가격이 급락했다. 자산의 가치는 쪼그라들었는데 빚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이후 이 빚을 갚느라 소비(개인)와 투자(기업)도 급감했다. 자산 가격이 여전히 비싸다면, 그것을 팔아 빚을 청산할 수도 있었겠지만, 자산 가격이 너무 싸져서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악순환 고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자산 거품이 붕괴하자, 일본 정부는 금융권과 기업을 살리는 길을 택했다. (부동산 대출) 부실채권을 정부가 발행한 국채로 바꿔준 것이다(이 때문에 일본 정부의 부채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정부의 도움으로 기업과 금융권은 큰 탈(?)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가계)는 구제받지 못했다. 그 결과 개인의 소비가 급감하자, 이번에는 기업들이 투자를 축소했다. 기업이 투자를 축소하자 개인의 소득은 정체하고, 이는 다시 소비를 위축시키는 등의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는 내수 부족 때문이었고, 이는 과도한 가계 부채 때문이었다. 일본의 기업은 국내에 투자하는 대신, 해외로 눈을 돌렸다. 아래 [그림 1]은 이러한 추세를 잘 보여준다.

일본의 투자(GDP 대비 %)세계은행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나는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장기불황 초입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비슷한 점을 꼽자면, 가계 부채가 일본의 최고 수준만큼 높고, 내수가 급감했으며, 마지막으로 기업이 국내 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그림 2]는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 동향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국내 투자는 정체해 있지만, 해외투자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이 뚜렷하다.

빚을 줄여야 한다. 특히, 가계 부채를 줄여야 한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를 유지하는 길이다. 이러한 때에, 아파트 가격을 떠받치고, 개인(가계)가 더 빚을 내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미련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

한국의 투자(GDP 대비 %)세계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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