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오마이뉴스>에 "자신만의 이권을 지키려는 엘리트들의 본모습"(https://omn.kr/2ctkf)이 게재된 후 4월 14일 "'숟가락' 비난 뒤의 반지성주의"(https://omn.kr/2d14a)라는 반론이 실렸고 이 글은 이에 대한 재반론입니다.[편집자말] 대학에 돌아가는 미 국립보건원(NIH) 간접비가 엄격한 감사를 거치는 필수적인 비용이라는 주장은 반쪽짜리 진실이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간접비에 의존하는 방법으로 몸집을 불려 온 대학과 연구기관의 문제적인 운영 방식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흐름을 잘못 읽은 회사가 부정부패 없이도 사세가 기우는 것처럼 미국의 연구기관들이 새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흔들리는 것은 그동안 잘못된 방식으로 운영해 온 탓이 크다. 특히, 이전부터 정권을 가리지 않고 NIH가 시도한 여러 개혁들을 무산시킨 주체가 바로 대학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대학과 연구기관은 그저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 의생명과학 및 인접 분야 연구자는 월급 대부분을 소속 학교나 병원으로부터 받지 않고 NIH로부터 수주한 과제를 통해 받는다. 즉, 직장이 아니라 나라로부터 월급을 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구기관은 계약임금의 30%만을 연구자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70%는 연구자가 외부 활동을 통해 직접 벌어야 한다. 연방 과제 수주는 연구자가 자신의 임금을 벌어오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만약 연구자가 나머지 70%를 벌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정년을 받은 연구자는 자리만 유지한 채 30%만 받게 되고, 비정규 교원은 소속기관과의 계약을 어긴 것으로 간주되어 자리에서 쫓겨난다. 여기서 제시한 30%는 예시일 뿐이며 이 이보다 낮은 20%나 혹은 기관이 임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는 0% 계약도 흔하다. 이처럼 기관이 직접 보장하는 임금을 업계에서는 하드머니(Hard money), 연구자가 외부에서 끌어와야 하는 돈을 소프트머니(Soft money)라고 한다. 연구자가 과제를 수주하면 연구자에게 임금으로 돌아갈뿐 아니라 소속기관에 간접비로 상당한 액수가 돌아간다. 연구기관은 간접비를 연구에 필요한 기본적인 시설과 장비를 제공하거나, 새로운 건물을 짓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소속 연구자들이 과제를 많이 따올수록 기관은 더 많은 시설을 건립하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소프트머니 일자리는 기관의 확장과 더 높은 명성을 원하는 대학에 최적의 기회를 제공했다. 새로운 교원을 아무리 많이 채용해도 대부분의 비용을 NIH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교원에게 직접 임금과 연구비를 지급하는 대신 건물과 시설을 계속해서 새로 만들고 그 자리를 소프트머니 중심의 비정규 교원으로 채운다. 그렇게 뽑은 비정규 교원이 연구비를 따오면 그 돈으로 다시 새로운 시설을 만들고 비정규 교원으로 그 시설을 채우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대학 스스로 만든 취약한 구조 연구 예산이 줄지 않고 계속 늘어나는 이상 대학은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몸집을 불리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버드대학교를 필두로 여러 명문 의과대학이 지난 반세기 동안 덩치를 키워온 비결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치 다단계를 연상케 하는 이러한 사업 모델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연구비의 가파른 성장이 멈추면서 학계는 트럼프 이전에도 무분별한 확장에 따른 부작용을 겪고 있었다.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제한된 수의 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용을 과제에 기대는 소프트머니 연구자들은 끊임없는 고용 불안에 시달리게 됐다. 과제를 수주할 수 있는 단기적 목표에 집중하면서 중장기적 과학 연구가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젊은 신진 연구자들은 이미 자리를 잡은 기성 연구자들에 밀려 업무의 강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2010년대에 들어 국립보건원은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을 꾸준히 제시했으나 기존의 운영 방식을 고수하는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의 반발로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다.[1-3] 개혁이 이뤄지면 크게 불어난 자신들의 몸집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대학 스스로가 만들어온 이러한 취약한 구조는 대학을 입맛대로 요리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하루가 멀다고 행정부가 연구비를 명목으로 대학을 위협하고 있다.[4,5] 2025년도 가을학기 대학원 입시가 막 끝난 현재 연구 과제와 소프트머니에 의존하는 학과들은 신입 대학원생 선발을 크게 줄이거나 학생을 아예 받지 않은 곳이 많다. 반면 기관의 규모를 제한적으로 키우거나 전통적으로 하드머니를 중심으로 운영해 온 곳들은 예년과 비슷한 수의 학생을 선발하였고 장학금도 이전처럼 지급하였다. 연구 분야가 상당히 겹치고 비슷한 숫자의 박사과정 학생을 선발해 온 미시간대학교의 생물통계학과와 통계학과에서 이러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소프트머니로 운영하는 생물통계학과는 단 4개의 합격장만을 발송할 때 통계학과는 예년과 같은 40여 명의 학생에게 합격을 통보했다. 학술적 성과뿐만 아니라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예산 운영이 연구기관을 평가하는 근거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까지 얘기한 역사와 맥락을 아는 유권자와 납세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트럼프 행정부의 초법적인 예산 삭감만큼이나 현재와 같은 연구기관들의 방만한 운영을 세금으로 지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시에 건전하게 운영해 온 기관들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고 싶을 것이다. 미국의 모든 의생명연구기관이 소프트머니에 의존하여 방만한 운영을 해온 것은 아니다. 칼텍, 메사추세스공과대학(MIT), 록펠러대학 등의 기관은 소프트머니의 달콤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부분의 기관들처럼 무분별하게 몸집을 키우지 않았다.[6] 세금을 바탕으로 연구 활동을 이어가는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활동에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질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납세자의 기여를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연구기관을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연구자 스스로의 안녕을 위해서다. [1]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Biomedical research workforce working group report. Available at https://acd.od.nih.gov/documents/reports/Biomedical_research_wgreport.pdf. [2] M Lauer, Implementing limits on grant support to strengthen the biomedical research workforce. Available at https://nexus.od.nih.gov/all/2017/05/02/nih-grant-support-index/. [3] M Lauer, NIH's next generation researchers initiative. Available at https://nexus.od.nih.gov/all/tag/nextgen/. [4] Medical Research at Columbia Is Imperiled After Trump Terminates Funding - The New York Times [5] Trump administration freezes $2.2 billion in grants to Harvard over campus activism AP News [6] H. R. Bourne, Expansion fever and soft money plague the biomedical research enterprise. Available at https://www.pnas.org/doi/10.1073/pnas.1813115115. #과학 #연구비 #국립보건원 #전문가 구독하기 프리미엄 의사들은 모르는 건강의 비밀 이전글 의료 기술 우수하다는데, 왜 미국 사람들은 일찍 죽을까 다음글 인간 150세까지 산다는데...오히려 멈춰선 '기대수명' 왜?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 공유 추천14 댓글 공유1 시민기자기사쓰기 시리즈연재발행 오마이뉴스취재후원 기사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