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교황> 스틸컷
넷플릭스
사람은 살아온 경험만큼 생각하고 움직인다. 베르고글리오가 아르헨티나에서 군부독재와 빈부격차를 몸으로 느껴온 성직자가 아니었다면 교황이 된 후 그가 보여준 교회개혁의 말과 행동도 없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어록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말은 "한 사회가 얼마나 위대한가는 그 사회가 가장 궁핍한 이들을, 가난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였다.
그는 세상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옹호했다. 단호하게 그들의 편에 섰다. 교황의 남긴 말대로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 교회 안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개혁의 길을 계속 갔다. 사제 독신제, 여성사제직, 낙태와 이혼, 동성애자에 대한 관용 등 그가 외면하지 않고 부딪친 문제는 역시 교회가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지를 상기시켰다. 그래서 언제나 권력과 돈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과 함께했던 예수의 삶과 행동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생각하는 참된 종교인의 모습은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종교 의례에 잘 참석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믿는 신앙의 대상이 보여준 길을 따라서 최대한 닮은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비교하면 베네딕토 16세는 강경보수파 교황으로만 평가되어 왔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 교황>은 두 교황의 깊이 있는 대화와 격렬한 논쟁을 통해 다른 입장과 가치관을 가진 지도자가 어떻게 공의를 위해 차이를 넘어서는지를 보여준다. 베네딕토의 말대로 "어쩌면 하느님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교황을 보내신다." 종교 권력도 권력인 이상 자발적으로 권력을 놓기는 쉽지 않다. 베네딕토 교황은 그것을 했다. 영화에서는 700년 만에 있는 일이라고 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1415년 그레고리 12세 이후 600년 만의 일이다. 그전의 자진 사임은 외부 압력에 따른 것이었다. 교황이 자발적인 사임을 한 것은 베네딕토 16세가 처음이다.
<두 교황>에서는 사임의 이유로 병환, 영적 문제 등을 꼽지만, 그런 이유로 순순히 권력에서 물러나는 이는 없다. 베네딕토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물러난다. 자신은 학자이지 지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 물러나는 것도 용기다. 영화에는 종교적 회개와 용서의 문제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날카로운 발언이 나온다. 어린이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성직자가 회개하면 되지 않느냐는 베네딕토의 변명에 대한 반론이 한 예다. "죄악은 상처이지 얼룩이 아닙니다. 치료하고 아물어야 합니다." 가해자의 회개는 필요하다. 하지만 피해자가 받은 상처는 덮는다고, 가해자가 고백하고 회개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치유되어야 한다.
<두 교황>에서 프란치스코는 "종교가 세상과 분리되었다. 교회도 변화하고 움직여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환경이 파괴되는 세상의 문제에 대해 담을 쌓고 굳어버린 교리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는 경제학자도, 정치가도 아니기에 직접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가 침묵할 때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그런 말이 힘 있는 종교 지도자의 입에서 나올 때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마도 허구겠지만 인상 깊었던 것은 서로가 격렬하게 종교적 쟁점을 두고 논쟁하면서도 서로의 죄를 용서해 주는 장면이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죄를 범한다. 고위성직자이기에 더욱 큰 죄를 범할 수 있다. 어떤 권력이든 권력과 영성은 양립하기 힘들다. 그런 농담도 있지 않은가? 천국에 가면 교황, 추기경, 신부, 목사 등을 찾기 힘들 거라는 말.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범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진심으로 참회하는지가 문제이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의 가치는 참회와 겸허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황으로 선출된 뒤 다른 추기경이 베르고글리오에게 하는 말이다.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세요." 이 당연한 말이 마음에 다가온 이유를 생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그런 문제의식을 잃지 않고 이런 말을 남기고 행동했다. "아직도 우리의 문밖에는 수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대로 된 지도자에 목마른 시대, 우리는 큰 어른을 잃었다

▲2014년 8월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미사에 앞서 차량에서 한국 신자들에게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
연합뉴스
이 영화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도 볼만하다. 이 다큐멘터리는 교황이 된 후 프란치스코의 행적을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다. 프란치스코는 빈부격차와 환경파괴를 지속해서 고발하고 해결을 호소한다. 인상적인 대사가 많지만 "어떤 경우에도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을 개종시키려고 하지 말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변화하는 것은 감화를 통해 저절로 되는 것이지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은 이성과 논리적 설득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오직 감화(感化)를 통해서만 변화한다. 말 그대로 마음이 움직여야 변화가 일어난다.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이 시대에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종교 지도자가 있어서 위로를 얻었다. 그가 떠나면서 우리는 큰 어른을 잃었다.
기독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인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쓴 데서 드러나듯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시대에 종교가 걸어야 할 길을 보여줬다. 나는 그 길이 맞는다고 본다. 7일부터 새로운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열린다. 교황의 선종과 함께 다시 화제가 된 영화 <콘클라베>가 보여주듯이 교황 선출 과정은 현실 정치에 못지않은 정치적 술수와 협상의 장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 영화가 보여주듯이 그곳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의지를 벗어나는 일, 하느님의 뜻이 구현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두 교황>에는 젊은 시절의 교황이 강론에서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신부인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부디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잇는, 그래서 권력과 돈의 친구가 아니라 세상의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 늘 함께하는 교황, 그래서 그들이 'Papa(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종교 지도자가 선출되길 바란다. 그것이 정치든 종교든 우리는 제대로 된 지도자에 목마른 시대를 살고 있다.
* 필자의 영화산문집 <영화의 풍경, 세상의 풍경>(2025)에 실린 글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듣고 수정·보완한 글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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