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02 13:15최종 업데이트 25.05.0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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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생로병사가 있듯 조직에도 생로병사가 있어 수많은 조직이 만들어지고, 변화하고, 또 사라지기도 한다. 조직에도 생태(ecology)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있다. 사람과 조직 간에 차이가 있다면, 사람에겐 최종의 결과가 항상 예정되어 있지만, 조직에겐 다양한 선택의 여지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주 긴 시간 동안 생존할 수도 있다. 조직을 만들게 된 당초의 목적을 달성해서 조직이 사라지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이유로 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당초 조직을 만든 목적의 달성 유무와 상관없이 조직 자체의 논리에 의해서 조직의 생존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면 통상의 조직은 여기에 반응하여 변화한다. 조직이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환경의 변화를 무시하는 조직은 버티기 쉽지 않다. 조직은 변화하는 환경에 소극적으로라도 적응해야 한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조직 중에 사라져 기억에 조차 없는 것이 어디 한두 개인가.


그러나 여기 지난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조직이 있다. 아주 드문 경우이다. 이 조직은 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계속 커졌다. 몸집도 커졌고, 권력도 늘어났다. 이 조직의 주변에 있는 또 다른 조직들은 이 조직을 경외의 눈으로 혹은 두려움의 눈으로 보았다. 어떤 때는 가까이 가고 싶어 하고, 어떤 때는 정반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 조직은 권력 자체가 되었다. 권력을 스스로 끝없이 확장했고, 확장된 권력을 마음껏 행사했다. 그동안 그 권력의 부당함에 대한 저항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이 조직은 5년에 한 번씩 탈피를 반복하면서 권력을 확장해 나갔다. 반복된 탈피는 권력을 확장하는 아주 요긴한 방법이다.

탈피를 거듭하면서 몸집을 키우고, 권력을 스스로 확장했던 이 조직이 드디어 생존의 기로에 직면했다. 사람들이 눈치를 챘다. 반복된 탈피와 끝없는 권력의 확장이 무엇을 초래했는지 이제는 제대로 알아챘다. 사람들은 이 조직의 탈피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탈피를 거부당한 이 조직은 이제 설립 이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이 조직의 위기는 조직 내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초래되었다. 이 조직의 환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변하고 있었다. 지금도 변화 중인 환경이다. 그런데 이 조직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보다는 오히려 환경도 능히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조직이 선택한 것은 변화된 환경에 대한 적응이 아닌 저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조직이다.

보통의 조직이라면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려고 했을 테지만, 이 조직은 이 환경도 능히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조직은 환경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지도, 혹은 환경을 조직과 권력의 확대를 위한 지렛대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속에서 이 조직의 권력은 문제없이 원하는 대로 늘어났지만, 불행히도 늘어난 권력에 비례하는 견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계속적인 권력의 자기 강화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 이 조직에 생존의 위기가 발생했다.

조직과 권력, 그리고 신뢰에 대한 오래된 교훈이 있다. 조직은 본성적으로 권력 확장적이다. 그런데 늘어나는 권력에 비례하여 신뢰가 늘어나지 않는다. 권력이 늘어났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국민의 신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늘 결과는 정반대이다. 늘어난 권력과 줄어든 신뢰. 신기할 따름이다.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이 추가된다. 늘어난 권력은 조직의 생명을 얼마 동안은 지속시켜 주지만, 결국에는 조직의 생명을 단축시킨다.

권위주의 시대에 권력은 생존의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권력이 생존의 근거가 아닌 위협의 요인이 되었다. 권력만으로 생존이 가능한 시대가 지났다. 권력으로 조직의 생존을 연장하려 하면 할수록, 정반대로 소멸의 시기가 당겨진다. 권력의 모순이자 진리이다. 오랫동안 권력에 기대어 생존했던, 한없는 권력을 누렸던 조직이 이제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 이 조직의 이름은 감사원이다.

감사원은 왜 '신뢰'를 잃었나

"권력 앞에서 작아지는 감사원!"참여연대 주최로 지난 2024년 9월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열린 '대통령실 · 대통령 관저 이전 불법의혹 국민감사 결과 발표 관련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대통령 권력 앞에서 작아지는 감사원이 한심하다"며 감사원을 규탄하고 있다.이정민

1963년에 감사원이 설립되었으니 올해로 62년이나 되었다. 정부조직 중에 이름도 그대로고 기능도 그대로인 조직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감사원은 꽤 오래 장수한 전통 있는 조직이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대표 정부조직으로,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아도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평가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도대체 감사원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감사원을 둘러싼 이러저러한 논란이 있는데,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큰 권력을 갖고 있으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인내의 임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넘쳐 난다. 권력은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넘쳐났고, 권력의 행사는 불신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권력의 오용과 남용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제대로 알기 어렵다. 권력의 영향을 받는 대상이 오히려 잘 알 수 있다. 권력의 본질적 속성 때문이다. 권력의 행사자는 늘 자신의 권력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활용된다고 판단한다. 자기만의 오판이다. 그러기에 오남용 되는 권력은 절제되기 보다는 더욱더 오남용의 상태가 된다.

권력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금만 경청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텐데, 권력의 오남용에 빠진 권력자들에게 이들의 목소리는 그저 권력 없는 사람들의 불평불만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권력에 휩싸이고, 권력에 취하는 순간 조직의 본래의 존재 가치는 사라진다. 조직이 무엇을 위해서 만들어졌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잊는다. 권력이 갖고 있는 망각의 영향이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이 있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전 감사원의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에 쓰여 있었던 글자가 또렷이 기억난다.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인터넷 홈페이지를 열면 처음 뜨는 화면에 선명하게 보였다. 감사원법 제2조에 있는 내용이다. 감사원이 독립적임을 표현하는 문구이다. 감사원이 정치로부터,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문구이다.

이 문구는 1963년 감사원법이 제정될 때부터 있었던 문구이다. 감사원은 대통령의 영향력 하에 있어서 정치적 중립성이 없다는 비판을 늘 받곤 했었는데, 감사원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라도 독립성을 강조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 문구를 사실인양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 없겠지만, 구태여 감사원은 이 문구를 강조했다. 당시 감사원 스스로는 독립적이어야 함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문구는 단순한 문구가 아니다. 감사원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확인해 주는 문구이다.

2022년. 감사원이 설립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그해 7월 29일 국회 법제사법원회에서 감사원장은 당시 법사위원장의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여당 법사위원장은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라며 발언을 재확인했다.

당시 또 다른 의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게 감사원의 역할인가. 제가 약간 지금 충격이 왔다"라고 당혹해했다. 감사원이 설립된 지 60년 만에 감사원장은 감사원이 오랫동안 지키고자 했던 감사원의 독립성을, 감사원법 제2조를 부인했다. 사실 감사원이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당시 감사원장은 오히려 솔직하게 감사원이 독립적이지 않음을 고백한 것이다. 구태여 솔직한 감사원장을 탓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감사원장의 솔직한 고백으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감사원은 독립적인 조직이 아니다. 정치적인 영향을 받으며, 중립성을 유지할 수 없는 조직이다. 그러면 또 다른 과제도 분명해졌다. 그동안 감사원의 막강한 권력을 인정하고, 늘 계속적으로 늘어나는 권력을 제어하지 못했던 중요한 명분의 하나는 감사원의 '독립성'인데, 이 명분이 사라졌으니 감사원의 늘어난 권력,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설 명분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감사원의 늘어난 권력,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크게 줄여야 한다. 이것은 감사원 스스로가 독립성을 부정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론이다.

권력을 줄이거나 혹은 견제를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권력이 늘 민주주의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권력 혹은 권력기관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본능을 갖고 있다. 권력을 견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권력의 집중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감사원에는 감사권이라는 특별한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감사원의 감사권과 경쟁하는 또 다른 감사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감사권은 권력이고, 감사원은 권력 그 자체이다. 이런 감사원의 권력을 줄이는 첫 번째 방법은 감사원이 독점하고 있는 감사권을 분권 하는 것이다. 감사권의 분권은 감사권 간에 견제와 균형의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감사원에도 '개혁'이 필요하다

감사원의 감사권을 분권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각급 공공기관에는 모두 내부에 자체 감사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동안 이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자체 감사 시스템이 무능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감사원에 감사권이 집중된 결과일 뿐이다. 자체감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해도, 어차피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되면 자체감사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자체감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자체감사 시스템에 적정 수준의 실질적인 감사권을 부여해야 한다. 그것은 각급 기관들에 대한 감사원 감사권의 축소에 의해서 가능하다. 감사원은 이럴 경우 자체감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이 기관들에서 부정과 부패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감사원에 집중된 감사권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이나 독립성을 포기한 감사원에 대한 불신에 따른 문제점도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자체감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장치를 만든다면 감사원이 생각하는 우려는 충분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감사원도 자체감사는 강화하고 감사원의 역할은 줄이겠다는 입장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0년 감사원이 주도가 되어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감사원은 이 법의 중요한 제정목적을 자체감사기구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 감사원 감사와 자체감사의 연계 및 중복감사 방지 등 효율적인 감사체계의 확립이라고 했다. 감사원이 여전히 이 법의 제정 목적에 동의한다면, 감사원의 감사권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주장은 아닐 것이다. 지방자치법도 감사원에 집중된 감사권을 분권화해야 하는 중요한 논거가 되는 법이다.

감사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회에는 10개 이상의 감사원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다. 다양한 이유들을 들어서 감사원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대부분 타당한 이유를 담고 있는 개정안들이라는 점에서, 이 내용들만 잘 종합해도 상당히 좋은 감사원 개혁방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한 동안 감사원의 개혁은 개헌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주장되었는데, 개헌 전이라도 감사원법 개정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감사원 개혁이 가능하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질병과 노화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데, 감사원이 바로 그와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간단한 치료만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감사원이 그 동안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도저히 국민의 불신을 극복할 수 없다. 국민의 불신을 받는 조직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제는 감사원 스스로가 생존을 주장할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섰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만들어진 감사원이 민주주의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권력이 되었다. 민주주의는 곧 국민이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국민을 위협하는 것과 같다. 어떤 것도 민주주의를, 국민을 이길 수 없다.

윤태범교수포럼사의재

* 필자 소개 : 윤태범은 현재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행정학회 회장, 한국정책학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서울시 감사위원,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을 역임하였다. 참여정부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행정개혁 전문위원,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획위원회 국정과제지원단장,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등 정부혁신과 공공개혁과 관련된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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