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02 14:00최종 업데이트 25.05.02 14:00
  • 본문듣기
조희대 대법원장이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필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미국에서 반평생을 살고 있는 경계인이다. 따라서 두 사회를 모두 낯설게 느끼는 순간도 있고, 오히려 차이를 더 또렷하게 체감할 때도 있다. 이번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은 표현의 자유와 정치의 사법화를 둘러싼 양 사회의 근본적 차이를 다시금 절감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당혹스럽게도 필자가 재외국민 투표 등록을 한 이후에 이런 판결이 내려졌다.

어디서 봤는지, 판결 소식을 듣고 미국 동료가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미국 상황에 빗대서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가 트럼프에게 졌는데, 현재의 트럼프 정권이 그녀가 대선 유세 중 거짓말을 했다며 기소를 했고, 2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는데, 연방대법원에서 다시 유죄 취지로 하급법원에 사건을 되돌려 보낸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도 하다. 미국에서는 법원이 유권자의 판단을 앞서선 안 된다는 원칙이 강하게 작동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접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뉴욕에서 벌어진 두 사건이 떠올랐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형사 기소, 다른 하나는 조지 산토스 전 하원의원의 제명과 처벌이다. 두 사건 모두 표현의 자유, 정치적 거짓말, 사법의 개입 범위를 두고 미국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왔고, '정치적 판단은 누가 내려야 하는가'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질문을 제기했다.

트럼프 사건에서 최종 선고를 미뤘던 미국 사법부의 절제

2023년 4월 4일 당시 성추문 입막음 의혹으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가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기소인부 절차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뉴욕 EPA=연합뉴스

한국에서도 기억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포르노 배우에게 입막음용으로 돈을 지급했던 사건이 큰 쟁점이 됐었다. 이 사건은 원래 2016년 대선에서도 쟁점이 됐지만, 2023년과 2024년에도 다시 대선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이번엔 단순한 성 스캔들이 아니라 형사재판으로 비화됐었다. 트럼프는 이 사건과 관련해 34건의 중범죄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

사건의 핵심은 트럼프가 이 포르노 배우에게 13만 달러를 지급한 뒤, 이를 '법률 자문료'로 위장해 회계장부에 기록한 데 있다. 뉴욕 검찰은 이 허위 회계 기록 하나하나를 각각 별개의 문서 위조로 간주했다. 그 결과 단일 사건이 34건의 중범죄(Felony) 혐의로 분할 기소되는, 이른바 '쪼개기 기소'가 이뤄졌다.

트럼프 기소가 처음 알려졌을 때부터 미국 내에서는 법적 과잉 논란이 일었다. 34건의 중범죄 혐의는 사실상 하나의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이를 분할 기소한 방식 자체가 정당한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트럼프 반대 진영은 그를 중범죄자로 낙인찍어 대선 출마를 막으려 했고, 사법을 정치에 동원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맞는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그런 와중에 2024년 5월, 뉴욕 배심원단은 34건 모두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중범죄 유죄 판결을 받은 전직 대통령이 되었고, 곧바로 정치적 격론이 뒤따랐다. 반트럼프 진영은 "법 앞의 평등"을 외쳤고, 또 환호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일부 합리적인 사람들은 사법이 유권자의 선택을 가로막았다고 우려했다.

물론 트럼프 지지자들은 "정치적 마녀사냥"이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법원을 향한 위협도 이어졌다. 담당 판사와 가족에게는 살해 협박이 가해졌고, 법원 주변은 극우 시위로 긴장감이 고조됐다. 유죄 평결은 법적 사건을 넘어, 미국 사회의 양극화를 다시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결국 법원의 판단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번 한국 대법원의 사례와 정반대로, 뉴욕 법원은 선고를 서두르지 않았다. 당초 2024년 7월로 예정돼 있던 최종 선고는 9월로, 다시 11월로 미뤄졌고, 끝내 대선 이후로 연기됐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위협에 판사가 굴복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법원이 유권자의 판단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미국 민주주의의 원칙, 그리고 헌법적 제1의 가치로 강조되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사법적 절제가 그것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지난 1월, 뉴욕 법원은 그에게 실형이 아닌 '무조건 면제 (unconditional discharge)'를 선고했다. 이는 유죄 평결에도 불구하고 형벌을 아예 부과하지 않는 판단이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현직 대통령에게 실형을 집행하는 것은 사법부의 책임 범위를 넘어선다"고 밝혔다. 이는 특정 개인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대선을 통해 유권자의 판단이 이미 내려졌다는 사실을 존중한 결정이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누가 정치의 최종 심판자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미국 사법은 유죄라는 형식적 결론을 내리면서도, 형량의 집행 시기와 방식에서는 철저히 유권자의 선택을 앞세웠다. 사법이 정치 위에 서지 않으려는 제도적 절제가 작동한 것이다.

거짓말에도 유보된 사법 개입 - 산토스 사건

조지 산토스 전 하원의원이 지난달 25일 뉴욕 센트럴 아이슬립 연방지방법원에 출석하는 모습. 연방지방법원은 사기 및 신분 도용 혐의로 그에게 징역 7년 3개월형을 선고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사건과 함께 미국 정치에서 또 하나 큰 논란이 된 인물이 있다. 바로 조지 산토스(George Santos) 전 하원의원이다. 그는 2022년 미국 뉴욕의 제3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는데, 당선 이후 밝혀진 그의 거짓말은 상상을 초월했다. 뉴욕대학교 졸업, 월스트리트 대형 금융사 근무, 유대인 혈통, 9.11 테러 희생자의 아들이라는 주장까지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력 전체를 날조한 정치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약 11개월 동안 의원직을 유지했다. 한국 같았으면 즉각 검찰 수사와 형사 기소가 이뤄졌을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은 사법적 응징 대신 정치적 해법을 먼저 택했다. 하원 윤리위 조사를 거쳐 2023년 12월 1일, 표결로 그를 제명했다. 유죄 판결 없이 공화당 의원이 제명된 첫 사례였다. 이 긴 과정을 지켜보며 거짓말로 당선된 사람을 이렇게 오랫동안 놔둬도 되나 싶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곱씹어 볼 점은, 허위 이력 자체는 형사처벌의 직접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후에 드러난 선거자금 사기, 신원 도용, 사문서 위조 등 명백한 형사 범죄 혐의에 대해 기소되어, 결국 지난 4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산토스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은 정치인의 거짓말을 형법이 아닌 정치의 영역에서 다뤘다는 점이다. 도덕적 책임은 유권자의 판단에 맡기고, 법적 책임은 명백한 범죄가 입증된 뒤에야 사법 절차가 작동했다. 거짓말이 곧바로 형사처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먼저 작동하는 것은 유권자의 판단권, 그리고 의회와 언론이라는 정치적 해법이었다.

물론 이런 미국 시스템도 위험을 수반한다. 실제 선거에서 거짓말이 넘쳐난다. 트럼프의 경우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해도 이후 형사적으로 기소됐다는 얘기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미국 민주주의는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사법의 개입보다 시민의 판단력을 신뢰하는 체제를 선택해 왔다. 트럼프가 구속되지 않은 것도 무죄여서가 아니라, 대선이라는 정치적 결정을 사법이 가로막지 않겠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산토스 사건이 시사하는 바도 명확하다. 정치적 표현이 조금 부정확하다고 해서 그것을 곧바로 형사처벌로 단죄하는 방식이, 결코 더 민주적인 조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선거에서 거짓을 심판하는 주체는 법원이 아니라 시민이며, 정치의 문제는 법이 아니라 투표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해 준 사례다. 요즘 미국 민주주의가 많이 망가졌지만, 유권자가 더 크고 강력한 재판장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시민이 재판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포차 식당에서 '당신의 하루를 만드는,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란 주제로 배달 라이더, 택배 기사 등 비(非)전형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5.1 [공동취재]연합뉴스

한국은 경제와 사회 제도를 미국 모델에 맞춰 빠르게 변화시켜 왔다. 그러나 사법 제도만큼은 예외였다. 식민 시기 일본이 도입한 서구 근대법 체계가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 고착화를 다시 드러냈다. 유권자의 판단보다 앞서려는 사법의 태도에서 오만함마저 읽힌다.

표현의 자유는 단지 말할 권리가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정치적 표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해석은 맥락과 관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사법이 표현의 경계를 자의적으로 정하기 시작하면, 시민의 판단권과 의사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 역시 완전하진 않지만, 공적 사안에 대한 과장, 심지어 명백한 허위조차도 사법이 함부로 개입하진 않는다. 다수 시민의 판단력이 소수 사법 권력에 앞서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이 그 바탕에 있다.

한국과 미국은 그 역사와 전통이 다르고, 각 사회는 고유한 법체계와 문화적 문법을 가진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판결도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이번 판결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사법은 어디까지 정치적 표현에 개입해야 하는가? 선거에서 유권자보다 사법 판단이 우선하는가?

흥미로운 점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일반 유권자의 인상'을 위법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인상을 최종적으로 판단할 주체도 유권자여야 한다. 이 판결은 역설적으로 '시민이 재판장'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다시 확인시킨 셈이다. 이 판결이 더 치열한 공론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그 과정 끝에 판단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유권자들 스스로 명확하게 증명해 내길 기대한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