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 열린 이윤성 42주기 추모제 모습해마다 사학과학생회와 성균관대민주동문회는 추모제를 연다.
민병래
1983년 5월 4일 숨을 거두고 한줌의 재로 변한 이윤성은 매형 박정관에 의해 북한강에 흩뿌려졌다. 해마다 기일이 되어도 이윤성을 추모할 공간이 없던 터에 2014년 이천시에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 만들어지자 이윤성은 이곳에 깃들었다. 이윤성은 2003년 성대에서 명예졸업장도 받고 2005년 5월 9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보상도 받았다. 2025년 4월 15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서도 강제 징집과 프락치 강요 같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가 있었다고 인정받았다.
이런 거듭된 판결에도 이윤성은 진정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윤성을 죽음으로 몰고 간 보안사의 책임자에 대해 형사적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문과 프락치 강요 같은 반인도적 범죄는 공소시효 없이 끝까지 책임을 묻는 법률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보안사가 이윤성에게 가한 고문과 고문행위의 당사자는 역사의 심판을 받고 그 이름이 기록되어야 한다. 국가는 또한 반인도적 범죄를 당한 피해자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했을 때는 책임을 져야 하는 해당 공무원에게 반드시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
이근안의 사례는 중요한 본보기다.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짓던 최을호 가족은 1982년 북으로 납치되었다 돌아왔다. 그런데 이근안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40여 일 동안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내 '김제 가족 간첩단 사건'을 만들었다. 그 결과 최을호는 사형을 언도 받아 1985년 집행당했고 최을호의 조카 최낙교는 검찰조사 중 구치소에서 숨졌다. 또 다른 조카 최낙전은 9년을 복역하고 교도소에서 나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의 유족은 오랜 세월이 지나 재심을 신청했고 2017년 6월 무죄가 확정되어 국가로부터 116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받았다. 국가는 이 배상금 중 33억 6천만 원을 고문책임자 이근안에게 물어내라고 소송을 걸었고 2024년 7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이근안은 형사처벌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됐다.
이윤성은 어떤 의문사보다도 타살의 정황이 뚜렷하다. 북한강에 흩뿌려졌던 이윤성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씻김굿은 이윤성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을 형사법정에 세우는 일이다. 또한 그들에게 이윤성과 그 가족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게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1) 권정달에 관한 청원내용은 2024년 1월 13일에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381회 이윤성편에서 매형 박정관이 증언한 내용이다.
2) 이윤성 사망 사건 이후 보안사령부에서 205부대에 강도 높은 감찰을 했다. 이 감찰관련 문서는 자·타살과 사망 경위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문서이나 방첩사는 관련 보고서가 없다고 주장한다.
3) 이윤성 사건을 조사한 진화위 이지원 조사관은 당시 205보안부대에서 녹화사업을 당한 5명을 참고인으로 불렀는데, 허리 띠 없는 군복으로 갈아입었는지, 군화를 벗었는지에 대해 진술이 엇갈렸다고 한다. 이지원 조사관은 예하 보안부대에서 지침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탓에 제각각이 아니었나 판단한다.
4) 박동열을 수사한 대공계장과 이윤성을 수사한 대공계장은 동일인물이다.
5) 박진숙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연행 경위의 진실을 증언했다. 한편 매형 안용태는 사고 당일 조서에 '월북 혐의'가 담겨있어 강력히 항의했더니 담당 수사관이 고쳐서 다시 작성하겠다고 했고, 잠시 후 수정한 조서를 가져왔다고 한다
6) <특변자 사고 관계철>에는 이윤성에 대한 동향조사서를 비롯해 조사중간보고, 내사결과 보고,피의자 자살 보고, 불온유인물 소지자 조사 중 자살사건 조사 결과 보고 등 다수의 자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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