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02 15:42최종 업데이트 25.05.0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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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 박 전 대통령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5년에 한 번씩 열려야 할 대통령 선거가 2017년에 이어 다시 조기 대선으로 치러지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었던 최순실이 대통령 주변에서 권한을 남용하고 재벌로부터 사적인 이득을 챙기다 국민의 심판을 받아 탄핵되었다. 2022년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은 3년여 집권 기간 국가 비전과 관계없는 허튼짓만 일삼고 각종 비리가 터져 나오자 급기야 친위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탄핵되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중도하차는 대한민국의 정치 역사를 볼 때 불행한 일이지만 국민의 삶이나 대한민국의 미래로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무능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무자비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임기가 하루라도 빨리 단축되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법이 정한 임기조차 채우지 못한 두 전직 대통령은 여러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보수정당 출신이고, 둘 다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은 일하는 국민과 싸우고 등지는 무모한 일을 벌인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탄핵되기 1년 전인 2015년 9월 15일 노사정이 어렵게 합의한 노동시장 개혁 대타협을 스스로 위반하여 공공부문의 직무성과급제와 저성과자 퇴출을 추진했다. 노동조합은 반발했고 그로부터 정권의 국정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 사건이 터졌고, 이들에 의한 국정농단이 온 세상에 알려져 탄핵되었다.

윤석열 정권도 집권한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를 탄압하여 보수층의 결집을 공고화했고, 그것도 모자라 조합원의 세액공제를 무기로 노동조합의 회계공시를 압박해 집권 기간 내내 노동조합과 충돌했다. 탄핵된 두 전직 대통령은 일하는 국민을 떠받들고 그들의 고충을 살피기는커녕 기업 편만을 드는 어리석음을 범했고, 그 결과 스스로 무너졌다.

2025년 다시 대통령 선거를 시작해야 한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 가운데 실패한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경제와 외교를 살펴야 하고, 모든 행정부처가 목표한 일을 달성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며, 무엇보다 국민을 통합해 한 단계 진전된 국가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 마디로 성공한 대통령에게는 상황판단에 대한 직관력과 인재를 두루 쓰는 통솔력, 그리고 남다른 지혜가 필요하다.

이에 비해 실패하지 않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건은 의외로 간단하다. 실패한 대통령이 되지 않으려면 국민을 배신하지 않으면 된다. 돌아보면 국민을 배신한 대통령은 모두 감옥에 갔다.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이명박이 감옥에 갔고, 윤석열도 오랜 기간 감옥에 있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일하는 국민인 노동자를 탄압했다는 것이다.

노동 희생하는 성장은 불가능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28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열린 'K-반도체' AI메모리반도체 기업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유력한 대통령 후보 이재명은 진짜 대한민국을 내세우면서 잘 먹고 잘 사는 풍요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진보만이 아니라 보수도 아울러야 한다며 중도 확장성을 꾀한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는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를 위한 성장을 핵심 과제로 제시한다.

다 좋은 이야기다. 극단적인 극우세력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보수를 포용할 수 있고, 윤석열 정권이 내팽개친 국가경제를 살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어떻게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 성장을 이룰 것인가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우려되는 것 중 하나는 일하는 사람, 즉 노동을 희생하는 성장이다. 노동을 희생하는 성장은 성공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지만 권력의 주변에는 여전히 개발시대의 추억과 같은 낡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 성장과 노동이 균형을 이뤄야 하고 노동이 경제의 지렛대가 될 수 있음에도 이를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이었던 시대에는 유일한 성장동력이 수출이었다. 기술이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낮은 임금을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력이 중요한 전략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노동기본권을 억압해 저임금 고성장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노동의 희생을 통해 경제성장은 가능했지만 민주주의를 억압했다는 평가는 피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저임금 정책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중국이나 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임금 차이가 이미 크다. 경제를 모르는 사람도 이들 국가들과 가격경쟁은 고려하지 않을 정도다. 대한민국이 성장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물건을 싸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열린 교육이 필요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야 하며, 민주적이고 공정한 노사관계가 필수적이다.

국가의 성장정책을 설계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노동정책이다. 자본만이 아니라 직원이 있어야 기업을 운영할 수 있듯이, 국가 경제정책도 성장을 위한 지원만이 아니라 일하는 국민들을 어떻게 대접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경제정책이 모두 친기업정책이 아니듯, 노동정책도 무조건 친노동정책은 아니다. 국가가 처한 현실과 나아갈 방향을 고려해 필요한 정책일 뿐이다. 그런데도 희한한 것은 선거 때만 되면, 노동정책이 사라지는 것이다. 선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노동정책을 강하게 주장하면 중도층이 이탈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두려움은 실체가 있다기보다 보수언론과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공포심에 불과하다. 의도적으로 노동정책이 부각되지 않도록 하여 당선 이후 집권세력의 노동 관련 정책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집권을 바라는 정치세력이라면 차기 정부에서 어떤 노동정책을 펼칠지 비전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 경제와 노동이 분리되지 않음을 유권자인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당선 이후 별다른 저항 없이 노동정책을 펼칠 수 있다. 반대로 당장 선거기간의 표만을 의식해 자신의 정책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면 당선 이후 요구될 수밖에 없는 노동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양극화·불평등 줄이는 노동정책 우선해야

국민의힘 3차 경선에 진출한 김문수, 한동훈 후보가 지난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후보자 선출을 위한 3차 경선 진출자 발표에서 꽃다발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대한민국에 필요한 노동정책은 공정한 성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불평등한 성장은 양극화를 낳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지만 공정한 성장은 국민의 삶도 함께 개선하므로 국가 체력을 튼튼히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줄이는 노동정책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성장의 수혜가 일부에 치우쳐 있다. 예를 들어 임금은 상위 10%가 전체 임금의 25%를 차지하고, 하위 50%가 총임금 중 차지하는 비율은 27.8%에 불과하다.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을 공정하게 만드는 길이 가장 효과적이다. 부족한 부분을 국가가 복지정책을 통해 메우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임금원칙으로 삼아 기업규모와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유 없는 차별에 해당하는 노동권의 사각지대도 줄여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5인 미만 사업장이나 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다. 이들에게도 노동관계법을 적용하여 유급 연차휴가와 주휴수당 등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장 쪼개기와 초단시간 노동자의 확대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경제의 무질서를 가져올 것이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이미 180만 명이 넘어버렸다.

평평한 노동시장은 공정한 노사관계 규칙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는 권리에 비례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당연하고 노사관계도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문제가 원·하청 관계이다. 원청기업이 하청기업의 노동조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당연히 원청기업이 하청기업과 함께 공동사용자로서 교섭에 응할 의무를 지도록 해야 한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을 위해 노사 간 노동조건 계약인 단체협약의 효력을 확장해야 하며, 균일한 노동조건을 위해 초기업교섭도 지금보다 활성화해야 한다. 노동조합법 제30조 3항은 정부가 초기업교섭을 지원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고용형태가 다양해지면서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처럼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아예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늘어나 이들 노동자를 모두 합치면 500만 명은 족히 넘는 상황이다. 임금노동자임에도 1인 도급인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로 고용해 오남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잘못된 분류에 대해 신속히 판단할 수 있도록 행정절차를 정비하고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노동인권을 보장하는 기본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노동자에 대한 특혜가 아니다.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인데도 그동안 차별로 인해 누리지 못했던 것들이다.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도 경제성장의 필수 요건이다. 위험한 작업장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국가 브랜드를 실추시키기 때문이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중요하며 사고가 나면 제대로 치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본부의 역할을 확대하고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고가 빈발하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과로사의 원인이 되는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물류센터 등 야간노동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늘고 있지만 관련 규정은 야간노동 시 가산수당 50% 추가지급이 거의 전부다. 야간노동은 위험하고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으므로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시간당 50%를 더 주자는 것인데, 이는 야간노동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야간노동을 활성화하는 정책에 가깝다.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와 함께 상병수당이나 전국민 산재보험을 추진하여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상병수당은 우리나라와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도입한 제도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유급병가와 동일한 개념이다. 전국민 산재보험은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에게 효과가 큰 정책이다. 일하다 다치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을 위한 치료·보상 제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부도 노동과의 대립 적지 않아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오션(한화빌딩)앞 금속노조 거통고지회 고공농성장에서 열린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21대 대선 대응 기자회견’에서 경선에 출마한 한상균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 대표와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인사를 하고 있다.권우성

불평등 완화, 공정한 노사관계,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정책 외에도 노동시간 단축, 정년연장, 사회적 대화, 정의로운 전환, 고용서비스와 직업훈련 등 경제성장과 함께 고려해야 할 노동정책들이 많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정책이 대선 시기에는 오히려 거론되지 않고 후보자들 간에도 서로 피하는 정책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

대통령 선거를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한다면 민감한 사안을 피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국가를 운영할 비전을 가진 대통령이라면 쟁점이 되더라도 필요한 정책은 당당히 밝히고 설득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특히 일하는 국민의 노동권에 대한 관심과 정책 제시가 필요한데, 이는 성공한 대통령의 필수조건이다. 적어도 실패한 대통령이 되지 않으려면 노동자와 등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의 집권이 유력한 상황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집권한 경우에도 노동과의 대립은 적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추진해 대립했지만 외환위기라는 특별한 상황이었기에 치명적인 갈등은 피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 철도·가스·발전 파업 등으로 노조와 갈등을 겪으면서 안정적인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보수언론의 병적인 괴롭힘으로 인해 노동정책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으나 유례없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사회안전망을 확대하기도 했다.

21대 대통령이 누가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다시는 실패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변함없는 사실은 국민을 배신한 정부는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것이고, 일하는 국민과 싸우는 정권도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차기 정부는 노동하는 국민과 화합하여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을 달성하길 소망한다.

정흥준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정흥준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정흥준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학교에서 노사관계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로 강의하며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노동조합 등에 관해 연구합니다. 주요 저서로 <오줌인형 잡기> 등 6편의 편저가 있으며 국내외에서 50여 편의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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