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광안리 해변가슴 속에 항상 품고 산다
여운규
골목길에서 찾는 나만의 아지트
지난번 부산 근무를 했을 때 한 가지 느낀 게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광안리 해변에 늘어선 수많은 음식점과 술집, 카페의 화려함은 여전했지만, 오히려 그보다 한두 블록 뒤 골목길에 자리한 작고 아담한 가게들이 내 눈길을 더 끌었다. 골목 귀퉁이를 돌아 나올 때마다 눈에 띄는, 분명 규모는 작지만 만만찮은 내공이 엿보이면서 꼭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은 밥집이며 찻집, 빵집들이 어두운 골목길에서 별처럼 빛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해변에 맞닿은 고층 건물의 화려한 조명과 관광객들이 쏘아 올리는 불꽃, 음악과 환호성이 섞인 소음은 한 블록만 뒤로 돌아가도 다른 동네 얘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갑자기 밀어닥치는 정적에 약간 낯설어하며 골목길로 접어드는 순간, 눈앞에 나타나는 소박하지만 맘에 쏙 드는 작은 가게들을 상상해 보라. 이끌리듯 들어간 곳에서 멋진 음식과 편안한 분위기에 푹 빠지다 보면 이내 그곳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나만의 아지트, 나 혼자만의 쉼터가 될 수도 있는 거다.
예전에 즐겨 봤던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한 유명 건축가가 얘기한 게 생각났다. 차가 못 다니는 좁은 골목길들(서울로 따지면 익선동 같은)이 이른바 '핫플'로 자리 잡았는데, 그 이유는 우리에게 "사적 외부 공간"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적 외부 공간이란 분명 집 바깥이지만 러닝셔츠 차림에 슬리퍼 끌고 나갈 수 있는 그런 곳을 말한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집 앞마당이나 골목길 같은 곳 말이다.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집 밖으로 나가면 무조건 많은 사람, 많은 차들과 공간을 공유하기 마련인데 그럴 때 뒷골목에서 느끼는 아늑함과 은밀함은 마치 여기가 나만의 공간인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
그렇다면 바로 이곳 '시골 통돼지 볶음'도 그 조건을 충족하는 맛집인지도 모르겠다. 언뜻 눈에 띄지 않는 뒷골목에 있는 식당이지만 최고의 돼지고기와 김치로 만만찮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단골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이곳을 마치 자기 집 앞 드나들 듯 편안하게 오가고, 또 그만큼 여기 음식을 소중하게 아낀다. 그런 분들에게 이 집은 다른 이들에게 공개하기 싫은 나만의 비밀 맛집인 거다. 꼭 가까이 살지 않아도 된다. 다른 지역에 살면서 택배로 이 집 음식을 배달받아 먹는 사람들도 꽤 있다.
사장님의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곳
▲각(角)바에서 위스키를 따르고 있는 사장님각바는 수많은 단골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숨겨진 보석이다.
박성환
무엇보다 이 집을 가장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는 바로 사장님이다. 일찍부터 매우 날카로운 감각과 식견을 지닌 맛 블로거로 명성이 높던 사장님은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약 10년 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맛에는 양보가 없는 엄청난 카리스마가 매력 포인트인 사장님은 특이하게도 식당 바로 옆에 '각(角)'이라는 이름의 조그마한 위스키 바를 같이 운영하신다.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고깃집 마무리를 이모님들께 맡겨두고 바의 불을 밝히는데, 이 자그마한 술집을 잊지 못해 찾아드는 단골들 또한 많다. 여기야말로 진정한 사적 외부 공간이며, 영혼의 옹달샘이다. 언제든지 편안하게 한 두 잔 할 수 있는 혼술의 성지이기도 하다.
여행객이거나 아니면 어떤 목적으로든 부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권해 드리고 싶다. 싱싱한 회도 실컷 먹었고, 화려한 바닷가에서의 신나는 유흥도 살짝 권태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럴 땐 해변을 벗어나 뒷골목 탐험을 떠나보자. 운이 좋으면 세상 평범하지만 어디에서도 쉽게 맛볼 수 없는 돼지고기와 김치찌개를 만날지도 모른다.
다 먹었으면 바로 옆 작은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네모난 얼굴의 사장님이 따라주는 싱글 몰트 위스키를 한 잔 맛볼 일이다. 왜 이 바의 이름이 '각'인지 아마도 금방 알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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