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30 06:35최종 업데이트 25.04.30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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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마련된 프란치스코 교황 빈소에서 한 추모객이 조문하고 있다.연합뉴스

교황 프란치스코는 역대 가장 서민적이고 개혁적인 교황으로 평가된다. 교황궁 대신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검소한 생활을 실천했고, 고급 차량 대신 소형차를 이용했다. 관료주의에 물든 교황청을 개혁하고, 재정 투명성을 강화했으며,여성과 평신도의 참여를 확대하는 등 구조적 변화를 이끌었다.

교리적 차원의 개혁은 과거 요한 23세만큼 급진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포용과 관용의 점진적 개혁을 통해 교회를 보다 열린 공동체로 이끌고자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이후, 후임 교황에 대한 관심은 교회 개혁의 지속 여부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이번 콘클라베(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추기경들의 회의)는 단순한 인물 선택을 넘어, 교회의 미래 방향을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 교회의 수장은 선출을 통해 결정된다. 교황이 선종하거나 퇴위하면 이때부터 '사도좌 공석'(Sede Vacante)이 시작된다.

이 기간 동안 교회의 일상 운영은 전 세계 모든 추기경으로 구성된 추기경단이 맡는다. 80세 이상 추기경은 투표권은 없지만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들은 콘클라베에 참여해 차기 교황을 선출하게 된다.

이번 콘클라베에는 80세 미만 추기경 135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5월 7일부터 바티칸 시국 내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상태에서 투표를 진행한다. 교황 선출을 위해서는 3분의 2 이상, 즉 최소 90표(135명이 모두 참석할 경우)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오전, 오후 두 차례씩, 하루 최대 네 차례 투표가 진행되며,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반복된다. 투표 결과는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통해 전해진다. 흰 연기는 새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검은 연기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을 뜻한다.

새로 선출된 교황은 교황명을 정한 뒤,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올라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로마와 온 세계에)' 축복을 선포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선출 사실을 전 세계 가톨릭 공동체에 공식적으로 알리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선언하게 된다.

가톨릭 교회의 세계화 흐름

임명자별 추기경 수임상훈

이번 콘클라베는 과거와는 다른 역학 속에서 진행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면서, 개혁적 흐름과 세계화된 교회 비전을 이어가려는 세력이 중심에 섰다.

오랫동안 교회를 지배해온 유럽 중심 권위 구조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비유럽 지역 출신 추기경들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강화된 것도 이번 선거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는 단순한 인적 구성의 변화가 아니라, 교회의 지리적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추기경단은 여전히 유럽 출신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 비율이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져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는 가톨릭 교회의 세계화 흐름을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륙별 추기경 수임상훈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임 중 임명한 추기경이 전체의 80%를 넘어서면서, 콘클라베의 방향성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차기 교황 선출 결과가 단순한 인물 교체를 넘어 교회의 방향 전환을 예고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단순한 수적 우위를 넘어, 교회의 방향성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요소다. 프란치스코가 강조한 사회적 약자 보호, 환경 문제, 대화 지향성 같은 가치는 차기 선출 과정에도 깊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선거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핵심 투표권자 그룹은 약 31명이다. 이들은 교회 내 주요 직책을 맡은 젊고 활동적인 인물들로 구성되며, 중도에서 약진보 성향이 강하다. 전통적 보수주의 흐름은 과거에 비해 뚜렷하게 약화되었다.

추기경의 진보 보수 성향(숫자가 낮을수록 진보, 높을수록 보수)임상훈

투표권자들의 연령 분포는 주로 5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에 몰려 있다. 지나치게 젊은 후보는 경륜 부족이, 지나치게 고령인 후보는 재임 기간의 제한이 문제로 지적된다. 균형을 갖춘 60대 중반 후보가 가장 적합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성향 분석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전체적으로는 약간 보수적인 중도 성향이 우세하지만, 프란치스코 임명자만 보면 보다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 내부 분위기는 과거보다 훨씬 유연해졌다.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 피어오를 흰 연기

28일(현지시간) 추기경들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콘클라베에서 차기 교황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후보는 세 명이다.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과 마테오 주피 대주교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으며, 루이스 타글레 추기경도 세계화된 교회 비전을 대표하는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첫 번째 후보인 피에트로 파롤린은 오랜 외교 경험과 교황청 내 정무 운영 능력을 겸비한 인물이다. 국무원장직을 맡아 국제 외교와 교회 행정을 모두 경험했으며, 중도적 안정성을 선호하는 흐름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갈등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조정 능력에 있다. 다만, 교회의 급격한 개혁을 바라는 세력에게는 다소 소극적이고, 변화를 추진할 의지가 약하게 비칠 수 있다는 점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두 번째 후보인 마테오 주피 대주교는 사회적 약자 보호, 평화 중재, 대화 중심 리더십을 특징으로 한다. 가난한 이들과 이민자,소수자 보호에 적극적이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심어온 개혁성과 포용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어갈 적임자로 평가된다.

그는 젊은 층과 개혁 지지 세력의 강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일부 보수 성향 추기경들에게는 진보적 성향이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교회의 급속한 변화를 우려하는 세력의 반발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세 번째 후보인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은 필리핀 출신으로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목소리다. 대중 친화적이고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 능하며 교회의 세계화 흐름을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의 선출은 아시아 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가톨릭 공동체의 지리적 다변화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연속 두번 비유럽권 출신 교황을 선출하는 데 대한 심리적 저항이 존재하며, 바티칸 중앙 정치에 대한 경험 부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세 후보는 각각 교회의 서로 다른 미래를 상징한다. 피에트로 파롤린은 안정과 조정 능력을, 마테오 주피는 개혁과 포용성을, 루이스 타글레는 세계화와 세대 교체를 대변한다.

이번 콘클라베는 단순히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절차를 넘어, 가톨릭 교회가 앞으로도 세상과 소통하며 변화하는 공동체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내부 결속과 전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피어오를 흰 연기는 단순히 새 교황 선출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다. 가톨릭 교회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를 전 세계에 선언하는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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