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11월 19일 ‘의료 파탄 수수방관, 공공의료 외면하고 의료민영화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이 오전 용산구 대통령실앞에서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주최로 열렸다.
권우성
'공공보건의료' 대신 '필수의료'가 사용된 것은, 단지 전임 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한 표현상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윤 정부는 필수의료 개념의 모호성을 활용해, 그 범위를 좁게 규정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중증·응급, 분만, 소아 진료"만을 필수의료로 강조할 경우 '비필수' 분야(일차의료, 재활 등)는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작 필수의료에 있어서도 소극적이었다. 윤 정부는 국가 재정 투입을 늘리기보다 '공공정책수가'와 같이 건강보험 재원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필수의료를 강화하려 했다. 그리고 '문재인케어' 때문에 늘어난 과다의료이용과 비급여 진료비 지출을 줄여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황당한 논리를 펼치며, 사실상 역대 정부 가운데 유일하게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폐지를 공식화한 정부가 됐다.
필수의료 강화 방안으로 지역 거점병원 육성이나 의료기관 간 연계·협력 강화 등을 내놓았지만, 거의 대부분 이전 정부에서 이미 발표되었거나 추진되고 있던 사업들을 명칭과 내용만 살짝 바꿔가며 '재탕'한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는 다 규범적 호소 또는 경제적 지원·보상이라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의료 공백을 메우겠다는 시도로, 큰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접근이었다.
의사 증원 역시 정부가 직접 양성하고 관리하기보다 기존 의대 정원을 늘리는 손쉬운 방식을 택함으로써 왜곡된 인력 분포를 초래하는 자유방임형 시장 공급 구조 문제를 방치한 것에 불과했다. 즉, '지역·필수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소란스럽게 했지만 막상 국가의 실질적 역할과 책임에 있어서 유의미한 확대는 없었던 것이다.
즉, 윤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공공성 강화라는 사회적 과제를 방기한 데 있다. 오히려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며 공공성을 퇴보시켰다. 흔히 공공병원을 매각, 위탁하거나 공보험을 사보험으로 대체하는 것만 민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민영화는 "사회 구성원의 기본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서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민간(시장)의 역할(의존도)을 증대하는 모든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포괄적 정의에 따르면 그동안 추진된 상당수 정책들이 민영화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표 참고). 특히 은밀하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민영화 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일례로 팬데믹 시기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운영된 탓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의료원들에 대한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은 '대체'로서의 수동적 민영화로 볼 수 있다.
또 출범 초기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공공기관 효율화를 명분으로 국립대병원의 간호 인력을 감축하기도 했다. 이처럼 윤 정부는 공공병원에 대한 예산·인력 지원을 줄이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후퇴시키는 방식으로 공적 의료보장체계의 기능을 축소시켰다는 점에서 사실상 민간 시장 영역을 확장하는 민영화를 추진한 셈이다.

▲민영화 유형
E.S. Savas
이러한 민영화 시도는 보건의료 산업화와 함께 이해될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사회서비스산업부로 봐야 한다"는 대통령 발언처럼 윤 정부는 보건의료를 경제성장을 견인할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을 추진했다.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이나 바이오·디지털헬스 제품의 신속 도입을 위한 규제 무력화,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과 개인 건강정보 개방,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 추진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시민을 위한, 시민의 통제를 받는 의사가 필요하다
산업화 정책들은 보건의료의 시장화, 영리화를 부추기며 공공성을 위협하였다. 또 건강보험 재정의 낭비적 지출을 막겠다며 비급여 관리 대책과 실손보험 개편 방안을 내놓은 것도 한편으론 높은 손해율로 적자를 보고 있는 보험 업계의 영업 이익을 보전해 주기 위한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에도 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관리급여' 도입과 같은 비급여 통제책을 굳이 발표한 까닭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비급여 항목과 급여 항목의 '혼합진료' 금지가 원칙적으로 옳지만, 지금처럼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이 미흡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갈수록 사보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보험시장이 확장되는 간접적 민영화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국 '공보험 무용론'으로 이어지며 사람들 사이에서 건강보험 의무가입제와 당연지정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될 우려가 적지 않다.

▲2024년 8월 2일 당시 전공의 집단 이탈로 시작된 의정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듯 윤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못됐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윤 정부가 한 것을 하지 않고,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것을 하면 된다. 그 첫 시작은, 보건의료의 공적 가치를 훼손하고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국가 책임을 약화하는 민영화 전략에 지나지 않았던 '윤석열표 필수의료 강화론'을 청산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윤 정부가 폐기해 버린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론'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한다.
특히 공공보건의료를 '상당한(critical)' 수준으로 강화하여 시장의 압도적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지난 글(
기사1,
기사2)에서도 밝혔듯이, '체계'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즉, 인력, 시설, 재정, 관리 등 체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공공성 강화 목표에 부응하고 조화롭게 정렬되도록 정책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기사1. 필수의료 공백, 수도권과 대도시도 안전하지 못하다 (https://omn.kr/24hi3)
기사2. 의사 증원 문제를 왜 여기에서? 정부를 온전히 못 믿는 이유 (https://omn.kr/266vv)
최근 논의되는 공공의대 설립 역시 유기적이고 자체충족적인 공공보건의료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힘들게 의사 인력을 양성해 놓고 10년만 의무 복무를 시키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공공기관에서만 진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별도의 면허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전체 정원을 늘리지 않는다면 의사들도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시민을 위한, 시민의 통제를 받는 의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이 근무하게 될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양적 확충과 질적 개선 역시 차근히 진행돼야 한다. 공공병원은 낙후되고 실력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인식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충분한 재정 투입과 안정적인 양질의 인력 수급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공공병원을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지역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당국으로서 각 지자체에 그에 걸맞은 권한과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이러한 보건의료 개혁은 장기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말만 무성했던 '보건의료발전계획' 수립을 통해 장기적인 국가 프로젝트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현실론'에 발목 잡혀 추진되지 못한 구상이지만, 이것이 2000명 의대 정원 확대 계획보다 더 무모하거나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공공성 강화만이 보건의료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하고 바람직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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