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맥주 등이 진열되어 있다.
연합뉴스
수제 맥주 업계 최초로 코스피에 상장한 제주 맥주가 맥주를 버렸다. 올해 제주 맥주는 사명을 한울앤제주로 변경했다. 맥주와 관계없는 한울반도체가 24%의 지분을 획득하며 사업 종목에 반도체 제조업과 폐기물 처리업을 추가했다. 2024년 매출은 180억 원이지만 앞으로 제주 맥주는 맥주 업계 리스트에서 보기 힘들 것 같다.
한때 편의점을 가득 채웠던 수제 맥주는 여전히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곰표 밀맥주로 코스피 상장의 꿈을 꾸었던 세븐 브로이는 2022년 320억 원, 2023년 120억 원에서 작년 84억 원으로 매출이 계속 하락하는 중이다. 영업손실은 90억 원, 당기순손실은 170억 원에 달해 회사의 존립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밖에 스퀴즈가 59억 원, 어메이징 브루잉이 39억 원 정도의 매출을 달성했지만 손실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스퀴즈는 매출이 전년에 비해 30억 원 정도 줄었다. 상대적으로 당기순손실도 큰 폭으로 늘었다. 그나마 카브루와 플래티넘의 성과가 눈에 띈다.
카브루는 2023년 56억 원에서 작년 110억 원으로 반전을 이끌었다. 덕분에 22억 원의 당기순이익 흑자도 기록했다. 3~4년 전부터 공장 매각 등 자구책을 진행한 결과로 보인다. 플래티넘도 32억 원에서 74억 원으로 매출이 두 배 뛰었다. 영업 외 비용 때문에 아직 순이익 전환을 못 했지만 10억 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거두었다. 회사를 이전하며 발생한 손실이 정리되고 신규 라인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자리를 잡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년에 예상한 대로 플래티넘과 카브루 정도가 이 시장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생존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카브루가 브랜드 리뉴얼을 통해 자신만의 맥주를 판매하는 방식이라면 플래티넘은 콜라보레이션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맥주로 생존을 도모할 것이다. 대기업을 제외하면 플래티넘과 세븐 브로이 정도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재무적 해결책이 보이는 플래티넘이 세븐 브로이보다 조금 나아 보인다.
제자리걸음 중인 프리미엄 맥주 시장
소규모 맥주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크래프트 맥주와 프리미엄 수입 맥주 시장은 확실한 규모를 판단할 자료가 부족하다. 운영 중인 소규모 맥주 양조장을 100여 개로 추산하면 대략 500~600억 원 규모의 시장을 그려볼 수 있다. 프리미엄 수입 맥주 회사도 30개 내외로 본다면 2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크래프트 맥주 영역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맥주 문화 속에서 자신들만의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프리미엄 정체성 구축이 핵심 키워드다. 고객들이 비싼 맥주를 기꺼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예전처럼 맥주를 먹지 않는 젊은 층이 타깃인 이 시장에서 문화적 힘이 구매력의 원천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요즘은 어려운 소비 경제를 버틸 수 있는 자금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 내란 이후 힘들어하는 크래프트 양조장들의 하소연이 여기저기 들려온다.
가장 돋보이는 시장은 무알코올 맥주다. 2022년 200억 원 정도에서 2024년 거의 700억 원 규모까지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이네켄, 에딩거, 기네스, 버드와이저 같은 유명 브랜드부터 카스와 하이트 같은 국산 기업은 물론 벨기에 브랜드와 크래프트 맥주까지 모두 무알코올 맥주를 출시하고 있다.
예전에는 무알코올 맥주가 보리 향이 나는 음료수와 비슷했다면 최근 것들은 알코올이 들어간 맥주와 거의 흡사한 향미를 지니고 있다. 회식 자리에서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다. 쿠팡이나 네이버 스토어에서 인터넷 주문이 가능하다는 것도 매출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알코올은 부담스럽지만 맥주를 마시는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좋은 대안으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
2025년 맥주 시장 괜찮을까
▲맥주양조장의 맥주잔
연합=OGQ
내란 이후 내수 시장 침체가 심각하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관세 전쟁은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유흥용 시장이 주요 채널인 크래프트 맥주다. 사람들이 지갑을 닫으면 프리미엄 맥주가 먼저 타격을 입는다. 회식은 사라진 지 오래고 늦게까지 이어지는 모임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산 맥주도 영향을 받겠지만 대형마트와 편의점 같은 가정용 채널이 존재하기에 그나마 타격이 덜 할 것이다. 가격이 싼 국산 맥주는 불황에 더 선택을 받을 여지가 있다. 여름 시즌이 다가오면 기본적인 매출은 달성하리라 예상한다. 어쨌든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독과점 시장의 혜택을 누릴 것이다.
경기 침체가 계속된다면 일본 맥주의 성장세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4캔 1만 원을 유지할 수 있는 가정용 시장과 달리 프리미엄 가격으로 판매되는 유흥용 시장의 침체는 불 보듯 뻔하다. 최근 몇 년간 성장한 일본 맥주도 이 흐름에는 예외일 수 없다. 하이네켄이나 칭다오 같은 맥주들도 유흥용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당분간 반전을 모색할 방법이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2.8%로 예상한 반면, 한국은 1%로 내다봤다. 안타깝지만 외부 요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맥주 업계는 당분간 고난의 길을 걸을 듯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