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26 18:33최종 업데이트 25.04.2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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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맥주 박람회 및 드링크 서울’에서 부스 관계자가 맥주를 내리고 있다.연합뉴스

너무 극적인 12월을 보낸 탓일까, 4월에서야 봄기운이 느껴진다. 날씨와 달리 소비 심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맥주 시장도 아직 기지개를 켜지 못하는 중이다. 대선이 지나면 실물 경제에 생기가 돌지 않을까 기대만 할 뿐이다.

4월은 기업들의 실적 공개가 마무리되는 시기다. 2024년 성적표는 코로나 팬데믹에서 받은 상처와 내란의 여파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다. 2023년 한국 맥주 시장은 회복의 기미를 보였다. 특히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실적을 통해 대중 소비의 회복세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2024년 맥주 시장에도 이 흐름이 이어졌을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의 매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한국 맥주 시장은 매출 기준으로 약 3조 20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2023년에 비해 2500억 원 정도 늘어난 수치다.

국산 대기업 맥주 부문이 약 2조 3000억, 대기업 수입 맥주가 약 8000억, 편의점 수제 맥주가 약 550억, 나머지 소규모 수입사 및 크래프트 맥주가 65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매출만 보면 5% 정도 늘어났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오비맥주와 일본 맥주를 제외하고는 힘겨운 시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기업이 이끈 한국 맥주 시장

오비맥주가 맥주 시장 점유율 1위인 카스를 비롯한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 가격을 4월 1일부터 평균 2.9% 인상했다. 오비맥주의 이번 가격 인상은 1년 6개월 만이다. 다만 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카스 500㎖ 캔 제품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했다.연합뉴스

오비맥주의 작년 매출은 1조 7400억 원이다. 2023년에 비해 2000억 원 정도 늘었다. 당기 순이익 또한 153억에서 240억 원으로 증가했다. 명실상부한 맥주계의 터줏대감 카스가 한국 맥주 시장을 견인했다. 오비맥주 중 수입 맥주는 15~20% 정도로 추정된다. 호가든과 버드와이저의 국내 생산과 일본 맥주,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가 매출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 다른 국산 맥주, 한맥은 아픈 손가락이다. 아직 자리를 못 잡은 채 시장을 배회하고 있다.

반면 하이트진로는 제자리걸음 중이다. 하이트진로의 맥주 매출은 8200억 원 정도로 2023년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룹 전체 매출은 2조 6000억 원으로 700억 원 늘었고 영업이익도 1000억 원 증가했다. 소주와 위스키 매출 증가 덕분이기도 하지만 켈리에 쏟아부었던 마케팅 비용을 줄인 결과이기도 하다. 대중들은 30년간 자리를 지켜온 카스에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 '신생' 맥주 테라와 켈리가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식음료 업계에서 브랜드 지속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맥주 시장이 보여주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주류부문의 클라우드는 작년 11월 크러시를 출시했음에도 30억 원 정도 증가한 860억 원 정도에 그쳤다. 클라우드는 전분을 넣지 않은 필스너를 생산함에도 마케팅과 가격 경쟁력에서 여전히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리뉴얼한 라벨 디자인이 소매시장에서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지만, 클라우드가 칠성사이다의 울타리에 있는 한 매출 상승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1위 탈환한 일본 맥주

불매운동으로 한동안 사라졌던 일본 맥주가 돌아왔다. 2년 만에 수입 맥주 시장의 브랜드 순위가 바뀌었다. 한동안 일본 맥주의 빈틈을 채웠던 하이네켄과 칭다오 같은 맥주들이 힘을 잃고 있다. 유럽에서 수입된 맥주들은 가격 상승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다.

하이네켄 코리아는 가격을 올렸지만 전년에 비해 100억 원 정도 줄어든 1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나마 당기순손실이 280억 원으로 70억 원 준 게 위안이다. 칭다오는 아직도 구설수의 여파를 겪고 있다. 매출이 무려 450억 원이나 감소했다. 인력과 비용을 감축하는 등 자구책을 통해 영업손실을 줄였지만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유럽과 중국 맥주가 주춤한 사이 아사히가 수입 맥주 1위를 탈환했다. 롯데아사히는 16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아사히의 매출 판도를 보면 한국에서 일본 맥주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2023년에 비해 300억 원이 증가했고, 2022년에 비하면 무려 1300억 원이 늘었다. 비록 판관비가 늘어 당기순이익은 386억에서 289억 원으로 줄었지만 직원들은 자신들의 맥주로 축배를 들지 않았을까?

또 한 군데 눈에 띄는 곳은 엠즈베버리지다. 매일유업 계열의 이 회사는 삿포로와 에비스를 수입하고 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당시에는 체코의 2위 브랜드 부데요비체 부드바르를 수입하며 연명해 왔다. 작년 성장세는 삿포로 덕분이다. 2023년 240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작년 390억 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마케팅에 힘을 쏟는다면 더 순위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오비맥주에서 수입하는 선토리 프리미엄 몰츠와 하이트진로에서 수입하는 기린도 삿포로와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수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으로 가는 한국 여행객이 한 해에 800만 명이 넘어선다는 것을 감안하면 일본 맥주가 원래 위치로 빠르게 돌아가는 게 이상하지 않다. 앞으로 또 다른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구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맥주를 버린 제주 맥주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맥주 등이 진열되어 있다.연합뉴스

수제 맥주 업계 최초로 코스피에 상장한 제주 맥주가 맥주를 버렸다. 올해 제주 맥주는 사명을 한울앤제주로 변경했다. 맥주와 관계없는 한울반도체가 24%의 지분을 획득하며 사업 종목에 반도체 제조업과 폐기물 처리업을 추가했다. 2024년 매출은 180억 원이지만 앞으로 제주 맥주는 맥주 업계 리스트에서 보기 힘들 것 같다.

한때 편의점을 가득 채웠던 수제 맥주는 여전히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곰표 밀맥주로 코스피 상장의 꿈을 꾸었던 세븐 브로이는 2022년 320억 원, 2023년 120억 원에서 작년 84억 원으로 매출이 계속 하락하는 중이다. 영업손실은 90억 원, 당기순손실은 170억 원에 달해 회사의 존립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밖에 스퀴즈가 59억 원, 어메이징 브루잉이 39억 원 정도의 매출을 달성했지만 손실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스퀴즈는 매출이 전년에 비해 30억 원 정도 줄었다. 상대적으로 당기순손실도 큰 폭으로 늘었다. 그나마 카브루와 플래티넘의 성과가 눈에 띈다.

카브루는 2023년 56억 원에서 작년 110억 원으로 반전을 이끌었다. 덕분에 22억 원의 당기순이익 흑자도 기록했다. 3~4년 전부터 공장 매각 등 자구책을 진행한 결과로 보인다. 플래티넘도 32억 원에서 74억 원으로 매출이 두 배 뛰었다. 영업 외 비용 때문에 아직 순이익 전환을 못 했지만 10억 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거두었다. 회사를 이전하며 발생한 손실이 정리되고 신규 라인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자리를 잡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년에 예상한 대로 플래티넘과 카브루 정도가 이 시장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생존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카브루가 브랜드 리뉴얼을 통해 자신만의 맥주를 판매하는 방식이라면 플래티넘은 콜라보레이션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맥주로 생존을 도모할 것이다. 대기업을 제외하면 플래티넘과 세븐 브로이 정도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재무적 해결책이 보이는 플래티넘이 세븐 브로이보다 조금 나아 보인다.

제자리걸음 중인 프리미엄 맥주 시장

소규모 맥주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크래프트 맥주와 프리미엄 수입 맥주 시장은 확실한 규모를 판단할 자료가 부족하다. 운영 중인 소규모 맥주 양조장을 100여 개로 추산하면 대략 500~600억 원 규모의 시장을 그려볼 수 있다. 프리미엄 수입 맥주 회사도 30개 내외로 본다면 2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크래프트 맥주 영역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맥주 문화 속에서 자신들만의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프리미엄 정체성 구축이 핵심 키워드다. 고객들이 비싼 맥주를 기꺼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예전처럼 맥주를 먹지 않는 젊은 층이 타깃인 이 시장에서 문화적 힘이 구매력의 원천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요즘은 어려운 소비 경제를 버틸 수 있는 자금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 내란 이후 힘들어하는 크래프트 양조장들의 하소연이 여기저기 들려온다.

가장 돋보이는 시장은 무알코올 맥주다. 2022년 200억 원 정도에서 2024년 거의 700억 원 규모까지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이네켄, 에딩거, 기네스, 버드와이저 같은 유명 브랜드부터 카스와 하이트 같은 국산 기업은 물론 벨기에 브랜드와 크래프트 맥주까지 모두 무알코올 맥주를 출시하고 있다.

예전에는 무알코올 맥주가 보리 향이 나는 음료수와 비슷했다면 최근 것들은 알코올이 들어간 맥주와 거의 흡사한 향미를 지니고 있다. 회식 자리에서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다. 쿠팡이나 네이버 스토어에서 인터넷 주문이 가능하다는 것도 매출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알코올은 부담스럽지만 맥주를 마시는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좋은 대안으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

2025년 맥주 시장 괜찮을까

맥주양조장의 맥주잔연합=OGQ

내란 이후 내수 시장 침체가 심각하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관세 전쟁은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유흥용 시장이 주요 채널인 크래프트 맥주다. 사람들이 지갑을 닫으면 프리미엄 맥주가 먼저 타격을 입는다. 회식은 사라진 지 오래고 늦게까지 이어지는 모임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산 맥주도 영향을 받겠지만 대형마트와 편의점 같은 가정용 채널이 존재하기에 그나마 타격이 덜 할 것이다. 가격이 싼 국산 맥주는 불황에 더 선택을 받을 여지가 있다. 여름 시즌이 다가오면 기본적인 매출은 달성하리라 예상한다. 어쨌든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독과점 시장의 혜택을 누릴 것이다.

경기 침체가 계속된다면 일본 맥주의 성장세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4캔 1만 원을 유지할 수 있는 가정용 시장과 달리 프리미엄 가격으로 판매되는 유흥용 시장의 침체는 불 보듯 뻔하다. 최근 몇 년간 성장한 일본 맥주도 이 흐름에는 예외일 수 없다. 하이네켄이나 칭다오 같은 맥주들도 유흥용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당분간 반전을 모색할 방법이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2.8%로 예상한 반면, 한국은 1%로 내다봤다. 안타깝지만 외부 요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맥주 업계는 당분간 고난의 길을 걸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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