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김경수·김동연 예비후보가 19일 충북 청주시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남소연
프란치스코 교황, 리처드 헤이스, 윤여정.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행보에 대한 비판과 반발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그걸 두려워하기는커녕 절망하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하고자 했던 '용기'였습니다. 그런데 정훈님, 정작 조기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에는 이런 '용기'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무지개 깃발을 든 퀴어들이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나와 '윤석열 파면'을 이끌어냈음에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김광진 전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동성애 차별을 반대하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언론에 밝혔다가, 전남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 개신교 세력의 표적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당시 지역구(순천) 경선 탈락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는
"패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정치꾼이 아니라 정치인으로 살겠다"라고 밝히면서 말입니다.
사실 김 전 의원 정도의 소신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른 법안들은 사회적인 논란이 있더라도, '추진하겠다' '통과시키겠다' 확언하는 국회의원들도 유독 차별금지법 앞에서는 말을 아낍니다. 그래서인지 22대 국회에선 단 하나의 차별금지법 법안도 발의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서는 예비후보들의 태도는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김동연 예비후보는 "모든 차별은 없애야 하지만 '법'으로까지 가는 것은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김경수 예비후보는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도 합의 없이 만들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차별금지법도 그렇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제정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한겨레)라고 밝혔습니다. 이재명 예비후보는 경선 기간에 내놓은 입장은 없으나, 지난해 10월 차별금지법이 우선 과제가 아니라고 말하며 "사회적 대화나 타협이 성숙된 다음에 논의해도 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셋 다 대동소이합니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인종, 출신 지역, 종교, 사상,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일어나는 차별을 금지·예방하는 법입니다. '고용, 재화 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공공서비스의 제공·이용 영역'에 적용됩니다(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시안 기준). 법안에 명시된 '차별'의 항목 중 '성적 지향'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보수기독교 단체에서는 오랫동안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이는 완전한 왜곡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사각지대가 생기기 때문에, 다양한 혐오·차별에 대응하기 위해선 차별금지법에 더해 부문별로 별도의 법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윤석열 탄핵 과정에서 위력을 떨친 극우 세력을 보면, '반동성애' '반이슬람' '차별금지법 반대', 좌파척결'이라는 구호 아래 보수 개신교가 주도하는 모양새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극우리포트- 성소수자 혐오에서 내란옹호까지' 참고).여기에 최근에는 '반중'이라는 구호까지 더해졌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양꼬치 거리'의 반중 시위는, 소수자·약자를 향한 극우들의 공격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합니다.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극우와 손을 잡은 정치 세력에게는 기대할 수 있는 바가 없더라도, 헌법을 수호하는 상식적인 정당이라면 극우세력을 향해 단호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조치가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해치는 '혐오할 자유'는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선언하고 법제화하지 않는다면, 극우는 결코 겁먹거나 움츠러들지 않을 겁니다.
다시 한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라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사회적 합의나 '시기상조' 같은 말은 지금 이 순간도 차별을 마주하고 있는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빈민, 비정규직 노동자 등을 생각하면 참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외면하는 정치, 사회의 올바른 변화를 따라잡지도 못하는 정치가 무슨 수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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