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29 06:53최종 업데이트 25.04.29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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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인해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시작한 2025년의 대한민국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기획 '넥스트 대한민국'은 조기 대선 상황에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 남은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해 새 정부 출범을 앞둔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편집자말]
2022년 6월 7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이제는 탄핵당해 내란죄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반도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아직 정계 입문을 선언하기도 전인 2021년 5월, "반도체와 관련한 공부를 하고 싶다"며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를 방문했고,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22년 5월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에 있는 반도체 팹을 찾기도 했습니다.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투자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2023년 3월, 윤 전 대통령은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 자리에서 "30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신규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사라져 버린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의 목표

300조 원을 발표한 지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24년 1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좀 더 큰 걸 가지고 나왔습니다. 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한 민생토론회에서 윤 전 대통령은 "총 622조 원이 넘는 투자로 경기 남부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에 SK하이닉스가 이미 추진 중이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그리고 여타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2047년까지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을 모두 합산한 것입니다. 이 사업을 통해 일자리가 3백만 개 창출될 거라고도 했습니다.


300조 원이든 622조 원이든 윤 전 대통령의 투자 발표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습니다. 불과 3년 만에 세계 1위의 반도체 회사였던 인텔이 몰락하고, 30년 이상 메모리 업계 1위를 지키던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 1위를 내주는 것이 현재 반도체 업계의 상황입니다. 2~3년 앞도 전망하기 힘든 반도체 업계에서 2042년까지 300조 원을 투자해 팹 6개를 짓겠다거나, 2047년까지 622조 원을 들여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이야기는 그때까지 우리나라가 화성에 우주인을 보내겠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호일 뿐입니다.

실례로 2019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133조 원을 투자해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라며 '비전 2030'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7.8% 정도였고, 고객도 다양했습니다. 파운드리 진출 초기에는 애플의 칩을 위탁 생산하기도 했고, 그 후 퀄컴, 구글 같은 굴지의 정보기술(IT) 업체로부터 주문을 받아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삼성전자의 300조 원 규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발표했던 2023년에는 고객사들이 삼성전자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해 5월에는 스냅드래곤8 1세대 모델을 삼성전자에 맡겼던 퀄컴이 2세대 모델부터는 TSMC로 갈아탔습니다. 그 뒤를 이어 구글, 엔비디아, 테슬라 등도 삼성전자를 떠나 TSMC를 선택했고, 그 결과 2024년 4분기에는 삼성 파운드리의 시장 점유율이 8.1%까지 하락했습니다.

2019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비전 2030' 발표 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반토막이 났습니다. (데이터 출처 : 트랜드포스)이봉렬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300조 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팹 여섯 개를 지을 것이 아니라, 기존에 파운드리 팹으로 예정되어 있던 것마저 메모리 팹으로 전환하거나 건설 계획을 무기한 연기해야 할 상황입니다. 실제로 단일 팹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 생산을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었던 삼성전자 평택 P4 팹의 경우 파운드리용 장비 반입이 지연되고 있으며, P5 팹은 터 닦기 공사만 마친 후 추가 공사가 아예 중단된 상태입니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던 파운드리 팹 역시 장비 반입이 늦어지고 완공 목표도 계속 변경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은 지난해 8월 'AI 시대 팹리스 등 시스템반도체 성장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점유율이 2022년 3.3%에서 2025년 2.0%, 2027년에는 1.6%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제품을 미리 만들어 판매하지만, 시스템반도체는 대부분 고객의 요청에 따라 맞춤형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형태입니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건설 중인 파운드리 팹도 중단해야 할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인 12월 26일, 국토교통부는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한 국가산업단지를 최종 승인했습니다. 애초 2025년 1분기 정도로 예상되던 승인 일정이었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 오히려 더 서둘러 진행한 것입니다.

국토교통부는 당초 목표보다 3개월이나 빨리 국가산단을 지정해서, 시스템반도체 단지 조성을 한다고 발표했다.국토교통부 보도자료

탈중국 선언으로 중국의 추격을 허용한 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산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안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2020년,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나라는 중국으로 그 비중이 54.2%나 됐습니다. 중국으로 우회 수출하는 홍콩(26.1%)을 포함하면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80.3%가 중국으로 판매되었습니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탈중국 정책이 발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2024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35.8%로 18.4%포인트 감소했습니다. 홍콩을 포함해도 61.2%에 불과합니다. 대신 대만이 같은 기간 4.8%에서 20.1%로 네 배 이상 증가했고, 베트남 역시 10.3%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최대 수요처는 중국이었는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그 비중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 자리를 중국 회사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으로의 직접적인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1% 미만입니다. (데이터 출처 : 무역협회)이봉렬

그 기간에 중국은 한국에서 수입하던 메모리 반도체를 자국 기업을 통해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0년에만 해도 D램 시장에서 0%대의 점유율로 존재감이 미미했던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지난해 점유율을 5%까지 끌어올렸고, 올해는 1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생산하는 제품군은 아직 구형 D램인 DDR4 위주이지만, 최근 최신 D램인 DDR5의 양산에도 성공하면서 한국 메모리 업체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1995년만 해도 전 세계 20여 곳에 달했던 D램 업체는 2010년 전후로 독일의 키몬다와 일본의 엘피다가 차례로 무너진 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빅3로 재편되었고, 이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산업 특성상 후발 주자의 추격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세 회사가 안정적으로 영업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탈중국 정책과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통해 중국의 신생 D램 회사들이 시장을 흔들고 이제는 4강 체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AI 가속기에 쓰이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같은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가 아니라면, 오래전 한국 회사들이 일본 회사들을 넘어섰던 것처럼 머지않아 중국 회사들이 한국 회사들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시스템반도체는 선두 업체들을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고,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이라는 후발 주자의 맹렬한 추격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위해 차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차기 정부가 해야 할 일 1]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잊어라

2024년 5월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부지 모습.연합뉴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300조 원' 짜리 세계 최대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계획부터 깔끔하게 철회하는 것입니다. 애초 계획 자체가 삼성전자의 역량이나 반도체 산업의 미래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조차 없이 세워진 것이라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반도체 업황이 개선되고 삼성전자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품질 문제를 모두 해결하여 추가로 반도체 팹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수도권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는 여전히 불가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수도권에 팹을 건설하면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하는 'RE100'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 중 하나인 미국의 애플은 자사 공급업체들에게 2030년까지 RE100 달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HP 등 IT 업계에서 RE100을 약속하지 않은 기업을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용인 국가산업단지에 필요한 전기를 3기의 LNG 발전소를 새로 건설하여 해결하고, 부족한 전기는 호남 지역에서 용인까지 송전선로를 설치하여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LNG 발전은 재생에너지가 아니며, 호남에서 용인까지 송전선로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전력 낭비는 물론 환경 파괴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호남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가 필요하다면 호남에 반도체 팹을 건설하면 될 일입니다. RE100을 충족하지 못하면 반도체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판매할 곳이 없습니다.

둘째, 수도권에 공장 총량제까지 위반하며 건설하려는 반도체 클러스터는 지역 균형 발전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반도체 팹 건설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언론들은 전문가 분석이라며 수십조 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수십만 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효과들은 이미 과포화된 수도권이 아니라 청년들이 떠나 소멸을 걱정하는 지방에 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지방에 반도체 팹을 지으면 인력 유치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건 수도권에 공장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핑계일 뿐입니다. 해외 반도체 회사들을 보면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이탈리아 시칠리아, 미국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에도 반도체 팹을 짓습니다. 팹을 어디에 지어도 좋은 회사라면 필요한 인재들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울산의 자동차 회사, 여수의 화학 회사, 거제의 조선 회사에도 이미 훌륭한 인재들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지방에 팹을 건설하더라도 삼성전자 또는 SK하이닉스 직원이 되려는 인재는 충분할 것입니다.

[차기 정부가 해야 할 일 2] 반도체 특별법은 필요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제외 어떻게?'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 디베이트를 주재하고 있다.남소연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반도체 특별법 제정 중단입니다. 4월 17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반도체산업 생태계 강화 및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내용을 보면 반도체 기술 확보 및 제조 능력 확충과 관련하여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되어 있고, 반도체 특구에 필요한 기반 시설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설치하거나 그에 따른 비용을 전액 지원하여야 하며, 반도체 특구를 '입지규제최소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끝까지 요구했던 '주 52시간 예외' 조항만 빼면 기업들이 원하는 내용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늘 대립하던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특별법까지 제정해서 지원해야 할 만큼 반도체 산업이 특별하고 중요한 산업일까요? 세제 혜택, 제정 지원, 규제 축소 등 기업의 요구를 다 들어줘서라도 발전시켜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 경제에 꼭 필요한 황금알을 낳은 거위일까요? 반도체 산업이 흥할수록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혹시 없을까요?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전기와 물을 필요로 합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발전소를 세우고, 댐을 만들며, 송전선로를 설치하기 위해 땅을 파헤칩니다. 2021년 대만에 가뭄이 들었을 때 농업용수까지 끌어다 TSMC에 공급한 일이 우리나라 언론을 통해서는 대만의 반도체 사랑으로 포장됐지만, 현지에서는 주민들이 반도체 팹의 위해성을 파악하고 이후 추가 팹 건설 반대를 위한 시민운동을 벌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팹에서 사용되고 남은 가스나 화학 물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공기 중으로 퍼지거나, 폐수가 되어 강을 오염시키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먼지 하나 없는 청정 이미지를 가진 반도체 팹이지만, 실상은 온갖 유해 물질이 사소한 실수에도 사람과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3D 작업 현장입니다.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도 심각합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팹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을 때 회사는 개인 질병일 뿐 작업 환경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오랜 싸움 끝에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사용되는 각종 유해 화학 물질이 노동자 건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황씨 외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24시간 운영되는 반도체 팹 안에서 교대 근무를 하는 동안 유해 물질에 노출되어 질병을 얻었습니다. 규제를 풀어야 할 곳이 아니라 더 정밀한 규제가 필요한 곳이 바로 반도체 팹입니다.

반도체 특별법은 이런 곳을 두고 규제를 최소화 하겠다며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팹의 거대한 규모를 보면서 사람들은 팹 하나가 들어설 때마다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과연 그런지 확인해 볼까요? 투자액 대비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취업자 수를 나타내는 취업 유발 계수가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취업 유발 계수는 2.1로 전체 제조업 6.2의 3분의 1 수준이고, 우리나라 전 산업의 10.1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반도체 산업이 다른 산업에 미치는 부가가치 유발 계수 역시 0.09에 불과하여 자동차(0.49), 선박(0.45) 등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관련 기사: 윤석열 대통령, 또 틀렸다... 제발 공부 좀 https://omn.kr/28tle)

반도체 산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로 높고,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전략 자산이라는 점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가 반도체를 자동차, 제약, 화학, 에너지, 농업, 관광 등 다른 산업과 차별을 두고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할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면서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산업이 있다면 오히려 그쪽을 지원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반도체 특별법은 재벌에게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하고, 세금과 비용을 감면해 주며, 환경을 비롯한 우리 사회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는 역할을 할 뿐 우리 사회 공동체에 주는 긍정적 효과는 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당장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중단해야 합니다.

물론 반도체 산업은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산업을 압도할만큼 중요하거나 반도체 산업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부작용들을 무시해도 될만큼 절대적인 산업은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인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우리 기업이 대중국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기존에 운영 중인 시설들의 활용에 제약을 받는다면 정부가 나서서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RE100 충족을 위해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을 다시 수립하고,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메모리 반도체 제조에 치우친 국내 반도체 산업 구조를 시스템 반도체 쪽으로 넓혀 가고, 그 중에서도 반도체 제조가 아닌 설계 위주의 팹리스 사업에 대한 지원 방안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반도체 특별법보다 훨씬 더 반도체 산업에 도움이 될 겁니다.

무엇보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재벌 회장들을 우르르 데리고 다니며 방진복 입은 채 사진이나 찍고, 수십 년에 걸친 수백조 단위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도록 강요하는 일만 하지 않아도 그 시간에 기업들은 알아서 미래를 개척할 것입니다.

차기 정부는 윤석열 정부에서 아무렇게나 뱉어낸 수백조 단위의 반도체 공사 계획도 접고, 재벌 기업의 이익에만 복무하고 말 반도체 특별법도 접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 수준과 규모의 반도체 산업이 적정한지,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 국토균형발전을 어떻게 조율할 건지 등을 고민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하지 않았던 수준의 고민을 새 정부는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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