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제외 어떻게?'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 디베이트를 주재하고 있다.
남소연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반도체 특별법 제정 중단입니다. 4월 17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반도체산업 생태계 강화 및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내용을 보면 반도체 기술 확보 및 제조 능력 확충과 관련하여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되어 있고, 반도체 특구에 필요한 기반 시설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설치하거나 그에 따른 비용을 전액 지원하여야 하며, 반도체 특구를 '입지규제최소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끝까지 요구했던 '주 52시간 예외' 조항만 빼면 기업들이 원하는 내용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늘 대립하던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특별법까지 제정해서 지원해야 할 만큼 반도체 산업이 특별하고 중요한 산업일까요? 세제 혜택, 제정 지원, 규제 축소 등 기업의 요구를 다 들어줘서라도 발전시켜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 경제에 꼭 필요한 황금알을 낳은 거위일까요? 반도체 산업이 흥할수록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혹시 없을까요?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전기와 물을 필요로 합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발전소를 세우고, 댐을 만들며, 송전선로를 설치하기 위해 땅을 파헤칩니다. 2021년 대만에 가뭄이 들었을 때 농업용수까지 끌어다 TSMC에 공급한 일이 우리나라 언론을 통해서는 대만의 반도체 사랑으로 포장됐지만, 현지에서는 주민들이 반도체 팹의 위해성을 파악하고 이후 추가 팹 건설 반대를 위한 시민운동을 벌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팹에서 사용되고 남은 가스나 화학 물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공기 중으로 퍼지거나, 폐수가 되어 강을 오염시키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먼지 하나 없는 청정 이미지를 가진 반도체 팹이지만, 실상은 온갖 유해 물질이 사소한 실수에도 사람과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3D 작업 현장입니다.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도 심각합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팹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을 때 회사는 개인 질병일 뿐 작업 환경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오랜 싸움 끝에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사용되는 각종 유해 화학 물질이 노동자 건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황씨 외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24시간 운영되는 반도체 팹 안에서 교대 근무를 하는 동안 유해 물질에 노출되어 질병을 얻었습니다. 규제를 풀어야 할 곳이 아니라 더 정밀한 규제가 필요한 곳이 바로 반도체 팹입니다.
반도체 특별법은 이런 곳을 두고 규제를 최소화 하겠다며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팹의 거대한 규모를 보면서 사람들은 팹 하나가 들어설 때마다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과연 그런지 확인해 볼까요? 투자액 대비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취업자 수를 나타내는 취업 유발 계수가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취업 유발 계수는 2.1로 전체 제조업 6.2의 3분의 1 수준이고, 우리나라 전 산업의 10.1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반도체 산업이 다른 산업에 미치는 부가가치 유발 계수 역시 0.09에 불과하여 자동차(0.49), 선박(0.45) 등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관련 기사:
윤석열 대통령, 또 틀렸다... 제발 공부 좀 https://omn.kr/28tle)
반도체 산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로 높고,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전략 자산이라는 점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가 반도체를 자동차, 제약, 화학, 에너지, 농업, 관광 등 다른 산업과 차별을 두고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할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면서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산업이 있다면 오히려 그쪽을 지원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반도체 특별법은 재벌에게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하고, 세금과 비용을 감면해 주며, 환경을 비롯한 우리 사회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는 역할을 할 뿐 우리 사회 공동체에 주는 긍정적 효과는 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당장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중단해야 합니다.
물론 반도체 산업은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산업을 압도할만큼 중요하거나 반도체 산업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부작용들을 무시해도 될만큼 절대적인 산업은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인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우리 기업이 대중국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기존에 운영 중인 시설들의 활용에 제약을 받는다면 정부가 나서서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RE100 충족을 위해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을 다시 수립하고,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메모리 반도체 제조에 치우친 국내 반도체 산업 구조를 시스템 반도체 쪽으로 넓혀 가고, 그 중에서도 반도체 제조가 아닌 설계 위주의 팹리스 사업에 대한 지원 방안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반도체 특별법보다 훨씬 더 반도체 산업에 도움이 될 겁니다.
무엇보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재벌 회장들을 우르르 데리고 다니며 방진복 입은 채 사진이나 찍고, 수십 년에 걸친 수백조 단위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도록 강요하는 일만 하지 않아도 그 시간에 기업들은 알아서 미래를 개척할 것입니다.
차기 정부는 윤석열 정부에서 아무렇게나 뱉어낸 수백조 단위의 반도체 공사 계획도 접고, 재벌 기업의 이익에만 복무하고 말 반도체 특별법도 접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 수준과 규모의 반도체 산업이 적정한지,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 국토균형발전을 어떻게 조율할 건지 등을 고민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하지 않았던 수준의 고민을 새 정부는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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