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24 11:23최종 업데이트 25.04.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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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양천구 해누리타운에서 열린 '2025 양천구 취업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구인광고를 보고 있다.연합뉴스

"급여 추후 협의." 구인 공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이다. 일을 하기로 결정되고 나서야 급여를 알게 되는 일은 부지기수다. 그렇게 정해진 월급에 대해 동료들과 논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임금 협상은 사측과 단둘이서 은밀하게 진행된다. 어떻게 책정한 것인지 모르겠고, 남들은 얼마 받는지 모르니 얼마를 불러야 할지 내적 갈등만 쌓인다.

이처럼 임금 정보가 비공개되는 것이 당연히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임금 정보는 함부로 묻거나 밝히면 안 될 개인정보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임금 정보는 일터의 환경, 조건, 처우와 마찬가지로 일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정보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확실하더라도 취업 정보 회사가 수집한 임금액 추정치를 찾아보고, 내 임금이 적정한 수준인지, 남들은 얼마를 받는지, 이직하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 직장인 익명 사이트에 질문을 올리고 누군가 답해주길 기다린다.


임금을 불투명하게 유지함으로써 득을 보는 것은 '사측'이다. 직원들의 임금을 낮게 유지할 수 있고, 임금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성별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지급하면서도 이러한 사실을 숨길 수 있다. 우리나라는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이러한 임금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차별이 있는지 알 수 없으면 제재를 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험난한 성별임금공시의 길

3.8 한국여성대회에 참여한 정보공개센터 부스 전경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또 기업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불합리한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임금공시제의 전면적 시행이 필요하다.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임금공시제 중 자주 논의되는 것은 성별에 따른 임금 정보와 그 분포를 공개하도록 하는 '성별임금공시제'이다.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에 정보공개센터는 한국여성대회에 부스를 냈다. 차기 대선 후보에게 성별임금공시제 도입을 요구하는 서명 캠페인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남성 대비 여성 임금 비율은 65.3%이다. 평균적으로 남성이 임금으로 1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은 65만 3000원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격차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원년인 1996년부터 2023년까지 27년째 OECD 가입국 중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다.

혹자는 이런 격차가 '여성은 남성과 하는 일이 달라서', '고위직급 여성이 적어서', '재직기간이 남성에 비해 짧아서' 부각되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왜 고위직 및 장기근속 여성 노동자가 적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발간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성별임금격차 원인 진단 및 정책과제'에 따르면 서울시 공공기관의 임금 정보를 비교해 본 결과, 똑같은 직종, 직급, 재직기간 사이에서도 성별 격차가 확인된 바 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시가 지자체 최초로 성별임금공시제(서울시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하여 공공기관들이 고용과 임금 정보를 항목별로 자세히 조사하고 공개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불합리한 임금 격차와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노동자의 일터라면 어디나 임금공시제를 시행해야 마땅하다.

성별임금격차 문제 해결의 기틀이 될 성별임금공시제 시행까지는 갈 길이 멀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으나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2020년 성별뿐 아니라 학력, 직업과 경력, 사업체 규모와 산업별 임금분포현황을 조사하는 '사업체 특성별 임금분포현황'이 공개되었으나, 개별 기업의 임금 정보 공시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뒤이어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성별임금공시제가 아닌 성별'근로'공시제를 국정과제로 삼았다. 그 이름이 시사하듯, 임금 정보는 윤석열 정부에 있어 공시 대상이 아니었다. 성별근로공시제는 채용부터 근로, 퇴직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성비를 자율적으로 공시하는 제도로, 올해 적용 예정이었으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임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세상

9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수원 일자리 박람회'가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에서는 노동자 권익 보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임금투명성을 강화하는 다양한 법·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유럽연합과 미국의 몇몇 주들은 고용주가 구직자에게 공고된 직책의 초봉 또는 급여 범위에 대해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의무화한다. 즉, 채용 공고를 낼 때 '추후 협의' 같은 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임금과 진급 결정 기준을 질문할 수 있다.

독일은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자에게 '임금 정보 청구권'을 보장한다. 이 제도에 따라 200인 이상 사업장에 속한 모든 취업자는 자신의 임금, 임금 확정 기준과 절차에 대한 정보, 자신과 비교 가능한(동일하거나 동등한) 업무의 임금, 임금 구성요소(제수당 등), 그 임금을 결정하는 기준과 관련된 사항의 정보를 청구할 수 있다.

스웨덴은 기업 임금 감사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10인 이상의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며, 고용주는 감사 결과를 문서화하고 보관해야 한다. 이 정보는 노동자가 요구할 경우 제공하게 되어 있다. 평등감사관은 고용주가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 임금 조사를 정확히 수행했는지, 이를 문서화하고 있는지를 감사한다. 만일 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고용주에겐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이러한 법·제도는 임금 정보가 쉬쉬해야 할 비밀이 아니라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공개될 수 있는 정보임을 보여준다. 임금 정보 공개와 청구권 보장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확대될 때, 기업의 책임성도 강화될 수 있다. 기업들은 고용 정책과 임금 체계를 더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되고, 노동자들은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더 주도적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임금을 협상할 수 있다.

누구나 임금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시민들은 임금을 평등하게 지급하는 기업을 알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기업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시민들은 국가에 임금 격차를 해소할 법과 제도의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실효성 있는 감독과 제재 시스템 구축을 촉구함으로써 노동 시장의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러한 임금 정보 공개의 필요성은 특히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별임금공시제의 도입 필요성으로 직결된다. 차기 정부는 더 이상의 지체 없이 성별임금공시제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적극 추진해야 한다. 임금 정보 공개 의무화는 투명하고 책임 있는 일터, 기업, 그리고 나라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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