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일 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칼럼 '한국은 사라지고 있는가'
뉴욕타임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꼽힌다. 한창 아이를 낳아야 할 젊은 세대가 결혼도 아이 낳기도 꺼려서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1명 밑으로 떨어진 게 벌써 2018년(0.98명)이고, 1994년 72만 명이던 출생아 수는 30년이 흐른 지난해 24만 명으로 줄었다. 30년 만에 정확히 3분의 1로 떨어진 것.
2023년 12월 2일 <뉴욕타임스>엔 '한국은 사라지고 있는가'란 섬뜩한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칼럼은 우리나라의 이상하리만치 낮은 출산율이 가져올 가파른 인구 감소를 14세기 유럽 전체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던 흑사병에 빗댔다. 흑사병으로 많게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인구는 앞으로 50년도 채 안 돼 3622만 명(2072년)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통계청, 장래인구추계, 2023.12). 그렇게 되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7.7%를 차지하게 되고, 중위연령은 무려 63.4세가 된다. 전체 인구를 한 줄로 세웠을 때 한 가운데 서게 되는 사람의 나이가 그렇다는 뜻이다. 1994년엔 그 한 가운데에 스물아홉 살 청년이 서 있었다.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먹여 살려야 할 고령인구가 104명으로 늘면서 1명이 1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꼴이 된다. 2000년엔 100명이 10명을, 2022년엔 22명을 먹여 살렸으니, 50년 만에 짊어져야 할 무게가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다.
오죽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한국의 태어나지 않은 미래 : 저출산 추세의 이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이해하기 힘든 나라가 된 지 오래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낮은 출생률의 이유를 높은 주거비와 사교육비 그리고 이중 노동 구조(정규직-비정규직)와 여성의 경력 단절 등에서 찾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서울·수도권으로 사람들이, 특히 젊은 세대가 끊임없이 몰려드는 흐름을 빼놓고선 이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물론 여러 이유가 서로 물고 물리면서 복잡하게 얽혀있다). 전체 국토 너비의 11.8%밖에 안 되는 서울·수도권 인구는 2606만여 명(2025.3)으로 전체 인구의 50.4%다. 정확히 50%를 넘어선 건 2019년 무렵이지만, 절반 가까운 인구가 좁은 땅에서 부대끼며 산 건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러니 모든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연스레 늘 모자란 집의 값어치는 오르고 남아도는 사람의 값어치는 떨어진다. 살아남으려면 더 많은 돈을 써가면서 나를 돋보이게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청년들에게 비슷한 처지의 짝을 만나 아이를 낳는 일은 두고두고 큰돈이 들어가야 하는 아주 값비싼 선택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벌써 몇 년째 전국 평균보다 한참 낮은 0.5명대에 머물고 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를 두고, 만약 '서울'이라는 인간종이 있다면 "멸절의 길"로 들어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서울은 지금 멸절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해묵은 '행정수도론'은 답이 될 수 없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닥치면서 선거에 뛰어들려는 후보들은 굵직한 공약을 내놓기에 바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이 그리는 대한민국의 미래에서 '저출생'과 이른바 '지방 소멸'이라는 절망의 그림자를 걷어낼 고심의 흔적을 찾아보긴 어렵다. 해묵은 '행정수도론'이나 '혁신도시론'을 다시 꺼내 드는 건 결코 좋은 답이 될 수 없다.
노무현 정부(2003~2008)는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을 고르게 키워야 한다며 곳곳에 '성장 거점'을 마련하는 전략을 폈다. 안타깝게도 위헌으로 결론이 났지만, 세종시를 만들어 행정수도를 옮기려고도 했다. 최근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재명 후보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들이 앞다퉈 이른바 '행정수도론'을 다시 꺼내 들었지만, 어렵게 위헌이라는 벽을 넘어선다고 해도 그런다고 힘을 잃어가는 지역이 되살아날 것 같지는 않다.
153개에 달하는 공공기관을 비롯해 연구소와 대학이 어우러진 지역 거점이 될 거라던 전국 10곳의 '혁신도시'들도 벌써 조성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기대했던 성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2021년 기준으로 이들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기대만큼 인구를 끌어모은 곳은 부산과 전북 두 곳뿐이었다. 그나마 2014~2016년 사이엔 수도권에서 혁신도시들로 인구 순유입이 있었지만 얼마 못 가 2018년부턴 다시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순유출이 더 커졌다(한국개발연구원,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효과 및 정책방향, 2021).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만든 거점들이 정말 '거점'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가다. 다시 말해, 서울·수도권에서 데려온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과 10조 원 넘게 들여 만든 여러 도시 자원들이 새로운 동력이 되고 그렇게 뿜어 올린 힘이 거점 밖으로 흘러넘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선 '메가시티' 구상도 크게 다를 게 없다.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등 여러 광역권을 하나로 묶어 서울·수도권에 견줄 만큼 덩치를 키우고, 하나의 생활권·경제권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교통망을 촘촘하게 깔자는 건데, 역시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힘이 어디까지 퍼져나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거점 그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거점이 이익을 독식하게 방치하는 시스템이 나쁜 것이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거점의 이익이 주변 지역으로 퍼질 수 있는 시스템이다." - 마강래,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 2018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 - 지방분권의 함정, 균형발전의 역설
개마고원
더 작은 거점들과 지역만의 브랜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서울·수도권 밖에 자리한 곳이 170개, 여기서 다시 대전·대구·광주·부산·울산시 등 광역시 밖의 기초자치단체는 121개다. 읍·면·동으로 따지면 전체 3524개 가운데 1794개다.
결국, 행정수도든 혁신도시든, 또는 메가시티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울·수도권 그리고 광역시 밖에 놓인 121개 기초자치단체와 1794개 읍·면·동으로 어떻게 새로운 힘을 전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려면 대동맥이 지나는 거점에서 주변 중소도시와 농어촌으로까지 실핏줄을 촘촘하게 이어야 하고, 나아가 작은 지역도 스스로 살아갈 그 지역만의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라는 책에서 거점을 중심으로 '대도시-중소도시-농어촌지역' 사이 연계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 (사업성과 공익성 있는) 두 지역 사업을 결합하는 방법 ▲ 여러 지역의 돈을 모아 재분배하는 방법 ▲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공공서비스를 공급하는 방법 등 크게 세 가지를 제안했다.
<골목길 자본론>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 등을 쓴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역마다 오랜 시간 행정과 경제, 문화의 중심으로 기능해 온 '군' 단위 원도심을 로컬 생태계의 새로운 거점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의 여러 자원과 잠재력을 엮어낼 역사성과 기반을 갖춘 이들 군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비롯한 정주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그 지역만의 독특한 자원에 뿌리를 둔 이른바 '로컬 브랜드'가 필요하다.
모종린 교수는 "탄탄한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기반으로 지역의 매력도를 높이고 창조산업을 이끌 인재를 유치하는 것이 자생적인 지역발전의 지속가능한 전략"이라고 말한다. 개성과 다양성, 삶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탈산업화 시대로 접어든 한국에서 "로컬만큼 다름의 소재를 풍부하게 공급할 수 있는 자원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가산업 모델이 탈산업화 시대를 맞아 더 이상 지역경제를 견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역산업을 다양화하고 지역 중심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신도시 건설과 도시화로 낙후된 원도심과 소멸 지역을 재생해야 하는 숙제도 창의적인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지점이다." - 모종린,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2021
'로컬 브랜드 생태계'는 정말 가능한가

▲장수트레일레이스
락앤런
윤석열 정부는 '지역사회 자생적 창조 능력 강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워 이른바 로컬 크리에이터 육성과 로컬 브랜드 지원, 골목상권 활성화와 지역 특화 재생 등에 힘썼다. 그렇게 만들어진 '로컬 브랜드'들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단연 전북 장수군의 '락앤런(장수 트레일레이스)'을 꼽을 수 있다.
장수군은 높은 산들이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는 데다 면적의 80%가 산악지형으로 이뤄져 있다. 인구는 2만 명을 조금 넘는데,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무려 40%에 달한다. 이런 장수군이 최근 트레일러닝(산악마라톤)의 성지로 떠올랐다. 경기도 시흥에서 나고 자란 김영록이라는 청년이 몇 년 전 장수에 뿌리를 내리면서 새로운 로컬 브랜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달리기를 좋아해 전 세계 산과 사막을 누비던 그는 낯선 시골인 장수에 살게 되면서, 처음엔 작은 달리기모임을 꾸려 장수의 산길을 달리다 어느새 장수의 산과 숲이 지닌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결국 트레일러닝 대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2022년 9월, 어렵게 연 첫 대회엔 겨우 150명이 모였지만, 3년이 지나 이번 달 4일 열린 다섯 번째 대회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3개 나라에서 무려 2700여 명이 모여들었다. 2023년 행정안전부 '생활권단위 로컬 브랜딩 활성화 지원사업'에 뽑힌 게 큰 힘이 되었다. 이쯤 되자 장수군도 팔을 걷어붙였다. 장수읍에 '트레일 빌리지'를 조성하겠다며 트레일러닝을 테마로 한 어울림센터와 거리, 광장 등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 락앤런은 최근 다시 행안부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에 뽑혀 앞으로 3년간 6억 원을 더 지원 받게 된다. 앞으로 장수군이 얼마나 더 젊어질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50년 뒤, 100년 뒤에 몇 명의 아이가 태어날지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당연히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해진 미래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통계청이 내놓은 '장래인구추계'보다 훨씬 더 어두운 미래가 닥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거창하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정작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낡은 담론에 매달리기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없다. 그러니 더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척 시늉만 하지 말고,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제대로 된 답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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