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22 12:04최종 업데이트 25.04.2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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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했던 최종수 신부입니다.[기자말]
지난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자료사진).AFP=연합뉴스

'가난한 이들의 성자'로서 늘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을 보듬는데 힘쓰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 수많은 별들의 제 자리를 잡아주는 북극성처럼, 인류가 나갈 생명과 사랑, 정의와 평화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부활절 미사에서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라면서 "전쟁 당사자들에게 휴전을 촉구하고 인질을 석방해 평화의 미래를 열망하는 굶주린 이를 도와줄 것을 호소한다" "타인에 대한 존중 없이 평화는 없다"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2021년 8월에 유흥식 추기경님을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하셨습니다. 교황님 곁에서 평양 방문을 추진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모색하기 위한 뜻깊은 배려였습니다. 이처럼 누구보다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원하셨습니다.


한국인보다 더 간절히 기도하시며 평양 방문을 희망하셨는데, 끝내 이루지 못하고 선종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국에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것입니다.

공소 어르신들과 함께 노래 부르며 교황 사칭(?)한 까닭

일명 '교황 사칭 영상'의 일부분최종수

2014년 한국 방문 때 교황님을 기적적으로 알현했습니다. 그 당시 6년째 진안 골짜기에서 자급자족 '만나생태마을' 공동체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생태사도직의 길이 맞는 길인지', 매일 마을 앞 개울가에서 흐르는 물에게 물었습니다. 생태적인 삶, 자급자족 공동체, 유기농업. 세 개의 십자가가 버거워서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그 시기에 교황님의 한국 방문이 결정 나고 교황님을 위한 노래 가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공소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동영상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명 '교황 사칭 동영상'이었습니다. 저는 교황님 가면을 쓰고 트럭을 타고 교황님이 공소(전주교구 진안성당 부귀공소)를 방문하신 것처럼 연출했습니다. 공소 신자들과 '프란치스코 빠빠'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동영상이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교황님을 알현하는 작은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교황님의 극찬... 결국 알현으로 이어져

교황님은 한국 방문 4박 5일 동안 저로 인해 네 번을 웃으셨습니다.

첫 번째는 2014년 8월 15일 대전 유성으로 가는 고속열차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 사칭 동영상'을 보시고 박장대소하신 것입니다. 기상조건이 좋지 않아 헬기로 가지 않고 고속열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헬기를 타셨다면 동영상을 더 늦게 보시게 되고, 극적인 교황님 알현도 어렵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때 '무이 심파띠꼬'(너무 자연스럽고 친근하다)라는 극찬을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교황청 대사관에서 알현할 때, 교황님이 상체를 뒤로 젖히시면서 웃으셨습니다. 전북 종교인 협의회 활동을 함께 했던 지원 스님이 '교황 사칭 동영상'을 교황님이 보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후 스님이 통역을 했던 정제천 신부님께 전화를 해서 알현하게 해 달라고 생떼를 부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스님이 교황님을 알현하게 되고 기적적으로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교황님 알현을 준비하면서 '교황 사칭 동영상' 때 썼던 가면을 챙겨 갔습니다. 빡빡한 일정으로 방한 중이신 교황님을 한 번 웃겨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허리 뒤에 숨기고 있던 가면을 얼굴에 대자, 상체를 젖히시며 "아~ 그 동영상" 하시며 폭소를 터트리셨습니다.

교황님을 감동 시킨 교황 사칭 동영상 가면최종수

교황님이 가면을 보시고 그 동영상의 주인공이냐며 활짝 웃으신다. 오른쪽 검은 옷이 필자최종수

세 번째는 유머의 달인이신 교황님께서 제 책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와 음반 <어느 신부의 사랑고백>을 드리자, 그 즉시 "신부님은 책과 음반을 선물했고, 나는 내 얼굴을 선물했다"고 말씀하시며 활짝 웃으셨습니다. 제 손에 들린 교황님 가면을 보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 순간 받은 느낌은 교황님 자신도 '내가 이런 말을 순간적으로 하다니' 놀라시며 웃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네 번째는 교황청 대사관에서 명동성당으로 이동하는 전용차 안에서 웃으셨습니다. 갈등이 첨예했던 쌍용차 해고자·제주 강정마을 주민·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 주민을 초청해 한국 종교 지도자들과 평화와 화해의 미사를 드린 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동 중이셨습니다. 통역하는 정제천 신부 옆구리를 건드리시면서 "정 신부님, 최 신부님에게 나를 알선해 주고 얼마 받았습니까? 반절 나누어 가집시다." 뜻밖의 농담에 당황한 정 신부를 보고 서로 한바탕 웃으셨다고 합니다. 후일담으로 그때 "예, 동전 한 푼 안 받았고요. 나중에 막걸리 한잔하기로 했습니다"라는 맞장구를 치지 못해 아쉬웠다고 합니다.

"천국에 가서 교황님 만나면..."

공소 어르신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한 할머니가 '교황 사칭 동영상'을 교황님께서 보셨다는 소식을 듣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천국에 가서 교황님을 만나면, '교황님, 제가 '교황 사칭 동영상'에 출연한 할머니입니다.'라고 말씀드릴 겁니다." 지금도 껄껄껄 웃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가난한 이들의 성자'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알현한 계기는 아마도 사제서품 때 사명으로 주신 말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루가 4,18)는 말씀을 살아보기 위해, 가난한 농민과 가난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살았던 공동체의 삶이 '교황님 알현'의 작은 기적을 선물했던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아버지의 나라 본향으로 돌아가셨지만, 말씀과 행적은 길이 남아 우리를 생명과 사랑, 정의와 평화의 길로 안내할 것입니다. 깊은 존경과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희망 빠빠, 우리 사랑 빠빠, 우리 평화 빠빠.

아래는 '교황 사칭 동영상' 노래 가사입니다.

프란치스코 빠빠

우주의 춤으로 시작된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사랑
하늘이 열리고 쏟아진 평화 영원한 사랑 영원한 행복
구유에서 피어난 이천 년 전 그 사랑
새들과 꽃들에게 희망을
가난한 영혼으로 살다간 성 프란치스코
지금 여기에서 타오르는 평화
오― 아름다운 사랑

사랑은 주는 것 평화는 사는 것
당신은 사랑 당신은 평화
사랑은 주는 것 평화는 사는 것
당신은 사랑 당신은 평화 우리 희망 빠빠 우리 평화 빠빠 우리 사랑 빠빠 빠빠 빠빠
당신과 손잡고 천국으로 향하리
빠빠 우리 평화 빠빠 우리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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