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국민의힘 사무실 앞에 당 관계자가 대선 경선 후보자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희생을 바탕으로 개헌을 선도해야 한다
최근 국민 여론을 보면 대통령의 권한을 나누고 국민의 뜻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통령제가 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극단적 지역 정치를 해소하고, 타협 없는 양당제를 극복해야 하는 일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 자치분권과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더 높은 국가적 책무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5.18 정신과 인권신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헌안 각론이 쉽게 합의에 이르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총론에는 찬성하지만 각론에서는 반대하는 교착상태가 계속되고, 신임 대통령이 개헌 추진보다는 자신의 국가개혁에 집중하려 하면 또다시 시기를 놓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우리 사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을 각오로 대연정을 제안했던 일을 뒤늦게 칭송하고 있다. 새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를 재건해야 한다는 소명을 생각하면, 권한 축소 등의 선제적 희생을 약속하고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검찰을 정치 보복에 동원하지 않아야 검찰을 개혁할 수 있다
국가의 형벌권은 엄정하지만 공정하게 행사해야 한다. 나는 우리 검찰 권한의 99%는 바르게 행사하고 있다고 본다. 다른 권력기관들의 처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극소수 사건들로 국가 권력기관의 공정성이 심하게 의심받고 있다. 승복하라고 할 수도 없다. 이른바 정치적 사건의 무죄율이 일반 형사사건보다 최하 다섯 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검찰이나 감사원이 정적을 탄압하고 괴롭히는 수단으로 동원한 것이다.
검찰 개혁은 검찰을 이용해 정치 보복하려 하지 않아야 완성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 때의 장기화된 적폐 청산이 결국 정치검찰을 살려냈고, 그로 인해 검찰 개혁도 좌절되었다. 새 정부는 검찰을 시켜 하고 싶은 일이 줄을 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소청이든 뭐든 검찰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검찰권을 써서 정치 보복할 마음을 먹지 않아야 한다. 감사원,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감사원 개혁, 검찰 개혁을 위해서라도 이들을 이용해 정치 보복하려 하지 말자. 유혹에 빠지지 않게 취임 즉시 개혁을 마쳐야 한다.
대통령도 직장인처럼 일하고, 협업해야 한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라는 직장의 최고 책임자다. 공도, 과도 그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통령은 고독한 결단만 하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 측근이나 비선이 아니라, '직장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이라고 정해진 회의체계와 의사결정 시스템의 바깥에서 일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도 직장인처럼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해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보고서를 읽고 의견을 주며 회의에서 논의하지 않을 경우, 국무회의는 물론이고 대통령실의 각급 관리체계가 긴장감 있게 돌아갈 리 없다. 가장 높은 사람부터 시스템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그러지 않았던 대통령들이 탄핵당했다.
내각을 믿고 역할을 나눠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결국 대통령과 대통령실로 책임이 돌아오게 된다. 그럴수록 대통령실은 작은 문제까지도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대통령 어젠다와 내각의 어젠다를 나누는 일은 말만큼 쉽지 않다. 그래도 길은 그것밖에 없다. 제도적으로 책임총리, 책임 장관이 가능한가, 아닌가가 핵심이 아니다. 대통령이 총리와 장관에게 그만한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집권당의 적극적인 참여가 총리와 장관의 책임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각과 집권당이 열심히 뛰게 부추기자. 대신 대통령은 국가적 어젠다에 집중하자. 무엇보다 민주주의 재건과 인권 국가, 평화 국가를 위한 방향 정립을 이끌어야 한다. 경제성장의 토대를 재구축하는 일도 대통령의 핵심과제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내란청산 사회대개혁 비상행동·8개 정당 공동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먹고사는 문제 해결해야 극단주의를 고립시킬 수 있다
누군들 성장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 역할에 대해 완전히 왜곡된,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에 집착했다. 코로나19 시기에 국가부채가 늘어난 것을 두고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었다. 그때 우리는 전 세계에서 재정을 가장 적게 푼 축에 들고, 대신 이를 각 가정의 부채로 떠넘기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건전 재정으로 나라에는 돈이 넘치는데 가정은 빚에 파탄 나는 것이 옳은 국가 운영인가?
윤석열 정부가 인기 없었던 본질적 이유는 서민의 삶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과 미래가 불안하면 극단주의가 발호한다. 이 어려움을 잊게 하는 공동의 적을 내세우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 중국, 북한, 페미니스트, 노조, 야당이 단골이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정치적 극단주의를 막을 수 있다. 국가가 안전망을 더 튼튼하게 만들고, 서민 생계에 온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재정은 그럴 때 역할 하라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국의 자살률은 부동의 세계 최고지만 남성 자살률이 다시 올라가고 있다. 재정이 희망 마중물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이와 함께 트럼프가 만들어 내려는 세계 경제질서 속에서 우리의 성장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거기에는 전통적 성장전략을 넘어선 새로운 가치와 지향이 답을 줄 것이다. 균형발전, 문화, 생태, 포용 등이 성장동력이 되는 시대이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 신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근무자나 앞서가던 공무원들을 부역자 취급할 것인가? 역대 그런 정부들치고 제대로 평가받은 정부를 보지 못했다. 국정과제는 어려우니 국정과제다. 새 대통령이 꿈꾸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려운 국정과제 실현을 위해 공무원들이 헌신하게 해야 한다. 그 규범을 무너뜨린 것이 윤석열 정부다. 유능한 공무원 다수가 냉소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변해버렸다. 직권남용죄는 더 이상 남용하지 말자.
정치 보복도 그렇지만 정책 보복도 일부러 할 필요가 없다. 정권 교체와 정책 방향 전환으로 이미 완성되었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런 식으로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며 발전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통령실을 유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구성 속에서 떠들썩해야 한다. 내부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해야 진정한 국정 컨트롤타워가 될 수 있다. 정부 기능을 존중하는, 겸손하며 유능한 대통령실을 기대한다.
* 이 글은 필자가 최근 발간한 책 <한국 대통령의 숙명: 대통령과 정부가 일하는 법>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김수현 / 세종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김수현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수현 세종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과 정책실장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와 박원순 시정에도 참여했습니다. 민간에서는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을 지내는 등 한국 사회의 가난과 주택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부동산과 정치>(2023), <가난이 사는 집: 판자촌의 삶과 죽음>(2022), <집에 갇힌 나라: 동아시아와 중국>(2020), <한국의 가난>(2016)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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